"자기경영에 빠진 청년들"… ‘풍요로운 고립‘에 갇혔다는 게 무슨 말일까?
기사 메일전송
기사수정


[한국심리학신문=편집부 ]


"자기경영에 빠진 청년들"… '풍요로운 고립'에 갇혔다는 게 무슨 말일까?


오늘도 퇴근 후 혼자 헬스장에 가고, 유튜브로 자기계발 강의를 듣고, 독서 앱에 독서 기록을 남겼다. 바쁘고 알찬 하루였다. 그런데 잠들기 전 문득 이런 생각이 스쳤다. '나 요즘 누군가와 제대로 얘기한 게 언제지?'


혼자서도 충분히 풍요로운 삶처럼 보이는데, 어딘가 허전하다. 노컷뉴스가 보도한 김수영 경희대 사회학과 교수 인터뷰에서 이 감각에 이름이 붙었다. '풍요로운 고립'이다. 오늘날 청년들이 자기경영에 집중하는 사이 조용히 빠져드는 심리적 함정이다.



'풍요로운 고립'이란 무엇인가: 연결이 없어도 바쁜 삶의 역설


김수영 경희대 사회학과 교수는 요즘 청년들의 생활 방식을 가리켜 '풍요로운 고립'이라고 명명했다. 콘텐츠, 자기계발, 루틴 관리 등으로 혼자서도 삶이 충분히 채워지는 것처럼 느껴지지만, 실제 타인과의 진짜 연결은 점점 희박해지는 상태다.


문제는 이 고립이 눈에 띄지 않는다는 점이다. 가난하거나 실패한 고립이 아니라, 성취감과 자기만족으로 포장되어 있기 때문이다. 스스로 '선택한 혼자'라고 여기기 때문에 외로움을 외로움으로 인식하지 못한다.


심리학에서는 이를 '자발적 고립의 인지 왜곡'과 연결해 설명한다. 자신이 원해서 혼자 있는 것과 사회적 연결이 실제로 약해지는 것을 구분하지 못할 때, 고립은 더 깊어진다.



자기경영 열풍의 심리학적 이면: 통제감이 인간관계를 밀어낸다


존 카치오포 미국 시카고대 심리학과 교수(작고)는 외로움이 단순한 감정이 아닌 생물학적 경보 신호라는 연구를 발표했다. 그는 사회적 연결이 단절될 때 뇌의 위협 감지 시스템이 활성화되고, 장기적으로 면역 기능 저하, 수면 장애, 우울감으로 이어진다는 사실을 밝혔다. 혼자라는 느낌이 몸에도 상처를 낸다는 뜻이다.


그렇다면 왜 청년들은 점점 자기 자신에게만 집중하게 됐을까. 심리학에서는 '통제 욕구'가 핵심 열쇠라고 본다. 불확실한 사회 속에서 유일하게 예측 가능하고 통제할 수 있는 대상이 '나 자신'이기 때문이다. 인간관계는 예측 불가능하고 상처도 주지만, 혼자만의 루틴은 언제나 내 뜻대로 된다.


셰리 터클 미국 매사추세츠공과대(MIT) 사회학과 명예교수는 저서 '혼자이지만 함께'에서 디지털 기기와 자기계발 콘텐츠가 인간관계의 불편함을 우회하는 방패가 된다고 지적했다. 관계를 맺는 능력 자체가 점점 약해지고, 그 빈자리를 콘텐츠 소비와 자기관리로 채우는 패턴이 반복된다는 것이다.



고립이 뇌에 남기는 흔적: 외로움은 통증과 같은 신호다


나오미 아이젠버거 미국 캘리포니아대(UCLA) 심리학과 교수가 2003년 발표한 연구는 충격적이었다. fMRI(기능적 자기공명영상) 실험에서 사회적 배제를 경험한 피험자의 뇌에서는 신체적 통증을 처리하는 부위인 전방 대상피질이 동일하게 활성화됐다. 외로움이 단지 기분의 문제가 아니라 뇌가 실제 고통으로 등록하는 신호라는 것이다.


더 심각한 것은 이 감각이 무뎌진다는 점이다. 오랫동안 혼자 지낸 사람일수록 외로움을 외로움으로 느끼는 감도가 낮아진다는 연구 결과도 있다. 풍요로운 고립 상태의 청년들이 스스로를 '나는 혼자가 좋아'라고 느끼는 것이 이 무감각과 관련 있을 수 있다.


국내에서도 통계로 확인된다.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이 2023년 성인 5000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사회적 고립 실태조사에서 20대의 사회적 고립도 점수는 전 연령대 중 가장 높았다. 65세 이상 노년층보다도 높은 수치였다.



연결 근육을 되살리는 법: 작고 불편한 것부터 시작하면 된다


로빈 던바 옥스퍼드대 실험심리학과 명예교수는 인간이 안정적으로 유지할 수 있는 친밀한 관계의 수를 약 5명으로 제시했다. 수백 명의 SNS 팔로워나 구독자 수와는 별개의 이야기다. 진짜 연결은 숫자가 아니라 깊이에서 온다.


전문가들은 관계 회복의 출발점이 거창할 필요가 없다고 말한다. 매일 5분이라도 스마트폰을 내려놓고 주변 사람과 눈을 맞추는 것, 메시지 대신 전화 한 통을 거는 것처럼 아주 작은 불편함을 감수하는 행동이 '연결 근육'을 다시 키운다.


오늘 하루 루틴을 점검하다가 문득 얼굴이 떠오르는 사람이 있다면, '요즘 어때, 생각났어'라는 메시지 한 줄을 보내보는 건 어떨까. 그 짧은 연결이 당신의 뇌가 가장 필요로 하는 것일 수 있다.


TAG
0
기사수정

다른 곳에 퍼가실 때는 아래 고유 링크 주소를 출처로 사용해주세요.

http://www.psytimes.co.kr/news/view.php?idx=12578
  • 기사등록 2026-06-14 07:05:49
기자프로필
프로필이미지
나도 한마디
※ 로그인 후 의견을 등록하시면, 자신의 의견을 관리하실 수 있습니다. 0/1000
모바일 버전 바로가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