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깟 공 좀 못 찼다고"… 스포츠 선수에게 쏟아지는 비난, 왜 이렇게 잔인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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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심리학신문=편집부 ]


"그깟 공 좀 못 찼다고"… 스포츠 선수에게 쏟아지는 비난, 왜 이렇게 잔인할까?


월드컵 예선에서 결정적인 슛을 놓친 선수의 SNS에는 순식간에 수만 개의 악플이 쏟아진다. '팔아라', '나가라', 심지어 가족을 향한 욕설까지. 경기가 끝난 지 불과 몇 분 만에 벌어지는 일이다.


스포츠한국이 보도한 김서현 선수 관련 기사에서 전 골키퍼 김병지는 이렇게 말했다. '그깟 공 좀 못 찼다고 지나친 비난을 받는다 생각할 수 있지만, 그게 스포츠 선수들이 이겨내야 하는 현실'이라고. 그런데 우리는 왜, 화면 속 선수에게 이토록 가혹해지는 걸까.



내 팀이 지면 내가 진 것 같다: 팬과 선수를 하나로 묶는 심리


스포츠 팬이 선수의 실수에 격렬하게 반응하는 이유는 단순한 분노가 아니다. 심리학에서는 이를 '집단 자기 범주화 이론(Self-Categorization Theory)'으로 설명한다. 앙리 타지펠 영국 브리스톨대 사회심리학과 교수가 정립한 이 이론에 따르면, 사람은 자신이 속한 집단과 자아를 동일시하는 강력한 경향이 있다.


응원하는 팀이 이기면 내가 이긴 것처럼 기쁘고, 지면 내가 패배한 것처럼 수치스럽다. 이 감각은 비유가 아니라 신경과학적으로도 실재한다. 2010년 이탈리아 파르마대 연구팀이 월드컵 시청자 48명을 대상으로 진행한 실험에서, 응원하는 팀이 득점하는 장면을 볼 때 시청자의 뇌에서 실제로 운동 피질이 활성화됐다. 선수가 골을 넣을 때, 보는 사람도 뇌 속에서 함께 '차고' 있는 셈이다.


그렇기 때문에 선수의 실수는 팬에게 개인적 모욕처럼 느껴진다. '우리가 졌다'는 감각이 '저 사람 때문에 내가 수치를 당했다'는 분노로 이어지는 것이다.



익명성이 만드는 잔인함: 온라인에서 우리는 왜 선을 넘는가


같은 분노라도 직접 말하는 것과 댓글로 쓰는 것은 다르다. 필립 짐바르도 미국 스탠퍼드대 심리학과 명예교수는 '탈개인화(Deindividuation)' 개념을 통해 이를 설명했다. 자신의 정체성이 감춰진 상황에서 사람은 평소라면 하지 않을 공격적 행동을 훨씬 쉽게 저지른다는 것이다.


익명의 온라인 공간은 탈개인화를 극대화한다. 더불어 사이버 비방 연구를 수행한 존 수렐 영국 노팅엄트렌트대 심리학과 교수의 2016년 연구에 따르면, 온라인에서 악플을 다는 사람의 68.3%는 현실에서 해당 대상을 직접 만났다면 같은 말을 하지 않았을 것이라고 답했다. 화면이라는 거리감이 공감 능력을 마비시키는 것이다.


여기에 '관중 효과'까지 더해진다. 내 댓글에 '좋아요'가 달리고 동조자가 늘어나면, 뇌의 보상 회로가 활성화되며 더 자극적인 말을 하고 싶은 충동이 커진다. 비난은 그렇게 점점 강도를 높여가며 집단 행동이 된다.



선수의 마음에 남는 상처: 비난이 수행에 미치는 실제 영향


물론 '선수라면 이 정도는 감수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이들도 많다. 하지만 연구 결과는 다른 이야기를 한다. 크리스 아처 미국 웨이크포레스트대 스포츠심리학과 교수가 2022년 프로 선수 200명을 대상으로 진행한 연구에서, 온라인 비난에 장기 노출된 선수는 그렇지 않은 선수보다 다음 경기 수행 능력이 평균 19.4% 낮았다. 비난이 실제로 선수를 무너뜨리고 있다는 의미다.


특히 '초크(choke)', 즉 결정적 순간의 실수는 이후 더 자주 반복되는 경향이 있다. 과도한 자기 감시 때문이다. 인간의 뇌는 '실수하면 안 된다'는 압박이 클수록 오히려 그 실수에 주의가 집중되고, 신체 동작을 과도하게 의식해 오히려 수행 능력이 떨어지는 '이중과제 간섭' 현상이 발생한다. 우리가 선수에게 쏟아붓는 비난은, 결과적으로 우리가 원하는 것과 정반대의 결과를 만들어내는 것이다.



응원과 비난 사이: 팬이 선수에게 줄 수 있는 진짜 힘


2019년 영국 프리미어리그에서 흥미로운 분석이 나왔다. 스포츠 데이터 분석 회사 옵타(Opta)가 시즌 전체 경기를 분석한 결과, 관중의 긍정적 응원 소리가 높았던 홈경기에서 선수의 패스 성공률이 평균 3.1% 높았고, 드리블 성공률은 5.8% 높았다. 응원의 힘은 단순한 심리적 위안이 아니라 수치로 증명되는 실제 효과였다.


김병지가 말한 것처럼, 실패와 비난을 이겨내는 선수는 분명 존재한다. 하지만 그 이겨냄이 팬의 잔인함 덕분은 아니다. 다음번에 응원하는 선수가 결정적인 순간에 무너지는 모습을 보게 된다면, 손가락이 댓글창으로 향하기 전에 잠깐 멈춰보는 건 어떨까. '저 선수도 지금 이 장면을 나보다 더 아파하고 있겠구나'라고 한 번만 생각해 보는 것, 그것이 진짜 팬이 줄 수 있는 가장 강력한 응원일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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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사등록 2026-06-14 07:09: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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