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부

[한국심리학신문=편집부 ]
고 이선균의 수사 기밀을 언론에 유출한 검찰 수사관 A씨는 법정에서 이렇게 말했다. "연예인 관련 이야기를 가볍게 받아들였던 것 같다." 직무상 비밀을 흘린 이유치고는 너무 평범하게 들린다. 그런데 바로 그 평범함이 핵심이다.
비밀을 지켜야 한다는 걸 알면서도 누군가에게 털어놓고 싶은 충동, 한 번쯤 느껴본 적 있지 않은가. '이 정도는 괜찮겠지'라는 생각이 드는 순간, 우리 뇌에서는 무슨 일이 일어나는 걸까.
타인에 대한 정보를 공유하는 행위, 즉 가십은 단순한 수다가 아니다. 로빈 던바 영국 옥스퍼드대 실험심리학과 명예교수는 인간 대화의 약 65%가 사회적 정보, 즉 다른 사람에 대한 이야기로 채워진다는 연구 결과를 발표했다. 그는 가십이 원시 인류의 사회적 유대를 유지하는 핵심 도구였다고 설명한다.
비밀 정보를 공유할 때 뇌의 보상 회로가 활성화된다는 사실도 밝혀졌다. 미국 하버드대 심리학과 다이애나 타미르 교수 연구팀이 2012년 성인 195명을 대상으로 진행한 실험에서, 자기 자신이나 타인에 대한 정보를 공유할 때 중뇌의 도파민 분비와 관련된 보상 영역이 활성화됐다. 특히 '특별한 정보'를 먼저 알고 전달하는 상황에서 이 반응은 더욱 강해졌다.
A씨가 수사 문건을 유출한 맥락도 이와 무관하지 않다. '이미 소문이 퍼져 있었다'는 그의 진술은, 정보가 이미 다른 사람들에게도 알려졌다는 인식이 비밀이라는 경계를 스스로 허물어버렸음을 보여준다. 이미 퍼진 정보라면 내가 말해도 괜찮다는 논리다.
A씨의 말 중 가장 주목해야 할 부분은 '연예인 이야기'라는 표현이다. 심리학에서는 이를 '사회적 거리감(social distance)'으로 설명한다. 사람들은 자신과 물리적, 사회적으로 멀리 떨어진 대상에 대해 도덕적 판단 기준을 느슨하게 적용하는 경향이 있다.
미국 예일대 심리학과 폴 블룸 교수는 저서에서 인간이 자신과 가까운 사람에게는 공감을 강하게 느끼지만, 모르는 유명인이나 통계 속 인물에게는 그 감각이 현저히 줄어든다고 설명한다. 연예인은 TV와 미디어를 통해 익숙하게 느껴지지만, 실제로는 한 번도 만나본 적 없는 타인이다. 그 '아는 것 같은 낯섦'이 오히려 그 사람의 비밀을 가볍게 다루게 만드는 심리적 함정이 된다.
실제로 2019년 미국 심리학회 학술지에 실린 연구에서, 참가자들은 유명인에 관한 사생활 정보를 일반인에 관한 것보다 약 38% 더 자주 제3자와 공유하려는 의향을 보였다. 해당 유명인을 전혀 모르는 상황에서도 마찬가지였다.
A씨는 '주변에 소문이 이미 퍼져 있었다'는 사실을 자신의 행동을 정당화하는 근거로 삼았다. 심리학에서는 이를 '사회적 증거(social proof)' 효과와 연결 짓는다. 많은 사람이 이미 알고 있다고 느끼면, 내가 정보를 공유하는 행위의 죄책감이 희석된다.
캐나다 워털루대 심리학과 이고르 그로스만 교수 연구팀이 2021년 발표한 연구에 따르면, 사람들은 자신의 비윤리적 행동을 설명할 때 '상황이 그랬다', '다른 사람들도 마찬가지였다'는 외부 귀인을 활용하는 경향이 51.8%에 달했다. 반면 타인의 동일한 행동에 대해서는 75.3%가 내부 귀인, 즉 그 사람의 품성 문제로 해석했다. 나에게는 관대하고 타인에게는 엄격한 잣대를 들이대는 것이다.
이 연구는 '나는 나쁜 사람이 아닌데 나쁜 일을 하게 되는' 메커니즘을 설명한다. A씨의 경우도 자신이 공직자로서 비밀을 유출한다는 인식보다, '이미 다들 아는 연예인 얘기를 한 번 더 전달하는 것'으로 상황을 재구성했을 가능성이 높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할까. 마이클 슬레피언 미국 컬럼비아대 경영심리학과 교수는 2019년 비밀 유지에 관한 연구에서 흥미로운 결과를 발표했다. 비밀을 지키는 것 자체보다, 비밀을 혼자 품고 있으면서 끊임없이 그 내용을 반추하는 행위가 정신적 부담을 키운다고 밝혔다. 1000명 이상의 참가자를 대상으로 한 이 연구에서, 비밀을 자주 떠올리는 사람일수록 그것을 누군가에게 털어놓고 싶은 충동을 강하게 느꼈다.
결국 비밀을 지키는 것은 의지력만의 문제가 아니다. '이 정보는 내가 전달할 성격의 것인가'를 습관처럼 묻는 인지적 훈련이 필요하다. 특히 상대가 유명인이거나, 이미 소문이 돌고 있거나, 가벼운 잡담처럼 느껴지는 상황일수록 더욱 의식적으로 멈춰 서야 한다. 나의 작은 말 한마디가 누군가의 삶을 뒤흔들 수 있다는 사실을 기억하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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