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은
[한국심리학신문=김영은 ]
A24, Backrooms 공식 포스터 (2026)
왜 갑자기 백룸이 유행했을까?
최근 SNS와 온라인 커뮤니티에서는 ‘백룸(Backrooms)’이나 ‘리미널 스페이스(Liminal Space)’ 이미지가 꾸준히 소비되고 있다. 노란 벽지로 둘러싸인 텅 빈 사무실, 사람 하나 없는 복도, 영업이 끝난 쇼핑몰, 불이 꺼진 학교, 새벽의 지하철역 등이 대표적인 예시다. 이러한 이미지들은 특별한 사건이 일어나지 않음에도 수많은 사람들에게 묘한 불안감과 공포를 불러일으킨다.
흥미로운 점은 백룸 콘텐츠가 기존의 공포물과는 상당히 다르다는 것이다. 일반적인 공포 영화나 괴담에는 귀신, 괴물, 살인마와 같은 명확한 위협이 등장한다. 반면 백룸에는 대부분 아무도 없다. 화면 속에는 그저 텅 빈 공간만 존재할 뿐이다. 그런데도 사람들은 그 공간을 바라보며 불편함을 느끼고, 심지어는 강한 공포를 경험한다.
왜 그럴까?
심리학은 이러한 현상을 단순히 "무서운 분위기"로 설명하지 않는다. 오히려 인간이 익숙함을 인식하는 방식, 불확실성을 처리하는 방식, 그리고 사회적 환경에 적응해 온 진화적 특성과 관련된 현상으로 해석한다. 백룸 열풍은 단순한 인터넷 밈이 아니라 인간의 인지와 감정 체계를 보여주는 흥미로운 사례라고 볼 수 있다.
익숙함이 낯설어질 때: 언캐니(Uncanny) 이론
백룸 현상을 설명하는 가장 대표적인 개념은 바로 ‘언캐니(Uncanny)’이다. 정신분석학자 지그문트 프로이트(Sigmund Freud)는 1919년 발표한 「The Uncanny」에서 언캐니를 "원래 익숙했던 것이 낯설게 느껴질 때 발생하는 불안"이라고 설명했다. 많은 사람들은 공포가 낯선 것에서 비롯된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실제로는 완전히 새로운 대상보다 익숙한 것이 비정상적으로 변했을 때 더 큰 불안을 경험하는 경우가 많다.
대표적인 예가 마네킹이다. 마네킹은 인간과 매우 비슷하게 생겼지만 완전히 인간은 아니다. 움직이지 않아야 할 인형이 갑자기 움직인다면 사람들은 강한 공포를 느낀다. 밀랍인형이나 로봇이 주는 섬뜩함 역시 같은 원리로 설명할 수 있다. 백룸도 마찬가지다. 학교, 사무실, 복도, 쇼핑몰은 모두 우리가 일상적으로 경험하는 공간이다. 문제는 그 공간이 우리가 기대하는 방식으로 존재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학교에는 학생들의 소음이 있어야 한다. 쇼핑몰에는 사람들이 오가야 한다. 사무실에는 직원들이 일하고 있어야 한다. 그러나 백룸 속 공간에는 아무도 없다. 사람도 없고, 대화도 없고, 목적도 없다.
우리의 뇌는 공간을 단순히 시각적으로만 인식하지 않는다. 특정 공간에 대한 기억과 기대를 함께 저장한다. 따라서 익숙한 장소에서 예상되는 요소들이 사라지면 뇌는 즉시 이상 신호를 감지한다.
"이 공간은 분명 학교인데 왜 아무도 없지?"
"쇼핑몰인데 왜 음악도 들리지 않을까?"
"사무실인데 왜 사람이 한 명도 없을까?"
이러한 인지적 충돌이 바로 언캐니한 감정을 만들어낸다.
백룸은 왜 이렇게 불안하게 느껴질까?
백룸의 공포는 단순히 사람이 없다는 사실에서 끝나지 않는다. 심리학적으로는 여러 요인이 동시에 작용한다.
첫 번째는 불확실성 회피이다. 인간은 본능적으로 예측 가능한 환경을 선호한다. 어떤 일이 일어날지 알 수 있을 때 안정감을 느끼고, 반대로 상황을 예측할 수 없을 때 불안을 경험한다. 백룸은 공간의 목적과 상황을 이해하기 어렵게 만든다.
왜 이 공간은 비어 있는가?
여기는 어디인가?
나는 왜 여기에 있는가?
무슨 일이 일어난 것인가?
이 질문들에 대한 답을 찾을 수 없기 때문에 불안이 증폭된다.
두 번째는 사회적 단서의 결핍이다.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다. 우리는 주변 사람들의 표정, 행동, 목소리를 통해 현재 상황이 안전한지 위험한지를 판단한다. 예를 들어 낯선 장소에 가더라도 다른 사람들이 평온하게 행동하면 안심하게 된다.
그러나 백룸에는 사람이 없다. 사회적 단서가 완전히 제거된 공간에서 뇌는 상황을 해석할 기준을 잃어버린다. 그 결과 경계심이 높아지고 긴장 상태가 유지된다.
세 번째는 진화심리학적 요인이다. 인류는 오랜 시간 집단 생활을 하며 생존해 왔다. 주변에 아무도 없는 환경은 과거 생존 환경에서 위험 신호일 가능성이 높았다. 따라서 완전히 고립된 공간은 현대인에게도 무의식적인 불안을 유발할 수 있다.
경계에 선 공간: 리미널 스페이스의 특징
백룸을 이야기할 때 빠지지 않는 개념이 바로 ‘리미널 스페이스(Liminal Space)’이다. 리미널(liminal)은 라틴어 limen에서 유래한 단어로 ‘문턱’, ‘경계’를 의미한다. 즉 리미널 스페이스는 어떤 상태에서 다른 상태로 넘어가는 중간 단계의 공간을 뜻한다. 대표적인 예시는 다음과 같다.
이 공간들의 공통점은 원래의 기능은 존재하지만 현재는 그 기능이 일시적으로 멈춰 있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강의실은 학생들이 공부하는 공간이다. 그러나 종강 후에는 학생도 없고 수업도 없다. 백화점 역시 소비 활동이 이루어져야 하지만 폐점 직전에는 그 역할이 중단된다. 즉, 리미널 스페이스는 "원래의 역할을 잃었지만 새로운 역할도 얻지 못한 상태"에 놓여 있는 공간이다.
인류학자 빅터 터너(Victor Turner)는 이러한 리미널 상태를 사회적·심리적 전환 과정의 핵심 단계로 설명했다. 흥미롭게도 이러한 개념은 공간뿐 아니라 인간의 삶에도 적용된다. 고등학교를 졸업했지만 아직 대학생은 아닌 시기. 졸업은 했지만 취업하지 못한 시기. 이별 후 새로운 관계를 시작하기 전의 시기. 이처럼 인간은 삶의 과도기에서도 불안을 경험한다. 현재의 정체성은 사라졌지만 새로운 정체성은 아직 형성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백룸이 주는 불편함은 어쩌면 이러한 심리적 과도기의 감정과 매우 닮아 있다.
우리는 왜 계속 찾아볼까?
그렇다면 사람들은 왜 무서워하면서도 백룸 콘텐츠를 계속 소비하는 것일까?
첫 번째 이유는 통제 가능한 공포때문이다. 공포 영화나 롤러코스터를 즐기는 이유와 비슷하다. 실제 위험은 없지만 위험한 상황을 경험하는 듯한 긴장감을 느낄 수 있다. 인간은 적절한 수준의 공포와 자극에서 오히려 흥미와 쾌감을 경험하기도 한다. 백룸 역시 현실에서는 안전하지만 심리적으로는 불안을 자극한다. 사람들은 이러한 감정을 안전한 환경에서 체험하며 일종의 스릴을 느낀다.
두 번째 이유는 향수이다. 백룸 이미지에는 많은 사람들의 어린 시절 기억이 담겨 있다.
방과 후 텅 빈 학교.
문 닫기 직전의 동네 상가.
어릴 적 자주 가던 키즈카페.
오래된 놀이시설.
이러한 공간들은 과거의 기억을 떠올리게 한다. 그러나 동시에 지금은 사라졌거나 변해버린 장소들이기도 하다. 그래서 백룸 이미지는 공포와 향수를 동시에 자극한다. 익숙하지만 돌아갈 수 없는 공간. 그 감정이 사람들에게 강한 인상을 남긴다.
백룸 열풍이 보여주는 현대인의 심리
백룸이 단순한 공포 콘텐츠를 넘어 하나의 문화 현상이 된 이유는 현대인의 심리와도 관련이 있다.
오늘날 많은 청년들은 불확실한 미래 속에서 살아간다. 취업, 진로, 인간관계, 경제적 문제 등 다양한 영역에서 안정감을 얻기 어렵다. 사회는 끊임없이 앞으로 나아가라고 요구하지만 정작 어디로 가야 하는지는 명확하게 알려주지 않는다. 그 결과 많은 사람들이 자신을 마치 리미널 스페이스 속에 있는 존재처럼 느낀다.
어딘가에 속하지 못한 느낌.
혼자 남겨진 느낌.
멈춰버린 느낌.
방향을 잃은 느낌.
백룸 속 공간은 이러한 감정을 시각적으로 표현한다. 그래서 사람들은 백룸에서 괴물을 보는 것이 아니라 어쩌면 자기 자신의 불안을 발견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공포는 괴물이 아니라 불확실성에서 온다
백룸이 무서운 이유는 단순히 음산한 분위기 때문이 아니다. 언캐니 이론은 익숙한 것이 낯설어질 때 왜 불안이 발생하는지를 설명하며, 리미널 스페이스 개념은 경계와 과도기의 공간이 왜 특별한 감정을 불러일으키는지를 보여준다. 여기에 불확실성 회피 성향과 사회적 단서의 결핍이 더해지면서 백룸은 독특한 형태의 공포를 만들어낸다.
결국 백룸은 괴물이 등장하는 공포물이 아니다. 오히려 인간이 가장 두려워하는 감정 중 하나인 불확실성과 고립감을 시각화한 공간에 가깝다.
백룸이 무서운 이유는 그곳에 괴물이 있기 때문이 아니라, 어쩌면 그 공간이 우리 자신의 불안과 너무 닮아 있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출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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