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소은
[한국심리학신문=심소은(zzzz7435@naver.com)]

'오랜 친구인데 요즘은 왜 이렇게 어색하지?' 나이가 들수록 친구 관계가 흐릿해지는 데는 이유가 있다. 어린 시절에 친구란 그냥 곁에 있는 존재이다. 같은 강의실, 같은 동네, 비슷한 시간표. 그 안에서 우정은 별다른 노력 없이도 자랄 수 있었다. 하지만 나이를 먹으면서 어느 순간 많은 사람들이 분명히 친구가 있는데, 막상 힘들 때 연락할 사람이 없다는 느낌을 받는 비슷한 경험을 한다. 카카오톡 친구는 수백 명인데 진심으로 속을 털어놓을 사람은 한 명도 떠오르지 않는 막막함. 이것은 개인의 문제가 아니다. 심리학자들은 이를 '관계 희박화(relationship thinning)' 현상이라고 부른다. 성인이 되면 친밀한 관계를 유지하기 위한 구조적 조건이 사라지고, 우정은 점점 유지하기 어려운 것이 된다.
심리학자 제프리 홀(Jeffrey Hall)의 연구에 따르면, 두 사람이 진정한 친구가 되려면 최소 50시간 이상의 함께하는 시간이 필요하다. 막역한 친구 사이가 되려면 200시간 이상이 필요하다는 연구 결과도 있다. 학창 시절엔 이 시간이 자연스럽게 채워졌다. 하지만 성인이 되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직장, 육아, 이사, 결혼과 같은 삶의 조건이 달라질수록 함께하는 시간은 줄어들고, 우정은 조용히 옅어진다. 문제는 이것을 많은 사람들이 '관계가 소원해진 것'으로 받아들이지, '관계에 투자가 부족한 것'으로 인식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친구 관계는 연인 관계처럼 적극적으로 노력해야 한다는 개념 자체가 낯설기 때문이다.
친구 관계의 질이 정신건강에 미치는 영향은 생각보다 훨씬 크다. 하버드 의과대학의 80년 장기 연구 '하버드 성인발달 연구(Harvard Study of Adult Development)'는 수천 명의 삶을 추적한 끝에 이런 결론을 내렸다. "행복하고 건강한 삶을 예측하는 가장 강력한 변수는 재산도, 명예도 아니었다. 바로 관계의 질이었다." 외로움은 단순한 감정이 아니다. 연구들은 만성적인 외로움이 흡연만큼이나 수명을 단축시킬 수 있다고 말한다. 사회적 고립은 우울증, 불안 장애, 인지 기능 저하와 강한 상관관계를 보인다. 특히 성인기 이후의 친밀한 우정은 스트레스 완충제 역할을 한다. 힘든 일이 생겼을 때 털어놓을 수 있는 친구가 있는 사람은 그렇지 않은 사람보다 스트레스 호르몬인 코르티솔 수치가 더 낮게 유지된다는 연구 결과도 있다.
모든 사람과 깊이 연결될 수는 없다. 영국의 진화심리학자 로빈 던바(Robin Dunbar)는 인간이 안정적으로 유지할 수 있는 사회적 관계의 층위를 연구했다. 그에 따르면 인간은 다음과 같은 관계 구조를 갖는다.
중요한 것은 핵심 층이다. 이 안에 단 2~3명이라도 진심으로 연결된 친구가 있다면, 그것으로 충분하다는 게 심리학자들의 견해다. 숫자보다 질이 중요하다.
그렇다면 성인기의 우정은 어떻게 유지해야 할까? 심리학자들은 몇 가지 실천을 제안한다.
첫째, 정기적인 접촉을 '의도적으로' 만들어라. 바쁘다는 건 서로 마찬가지다. "언제 한번 보자."는 말은 결국 만나지 않겠다는 말과 같다. 한 달에 한 번, 혹은 분기마다 한 번이라도 구체적인 날짜를 잡는 것이 중요하다. 혹여나 친구에게 "우리 한 달에 한 번은 꼭 보자."라고 말하는 게 상대방에게 부담이 될까 봐 두렵다면 그냥 시간이 될 때 친구들을 찾자. 꼭 만나지는 못하더라도 계속해서 상대방과 만나고자 하는 나의 노력이 있다면 우정은 유지될 수 있을 거라 본다.
둘째, 깊이 있는 대화를 두려워하지 마라. 성인 관계에서 우정이 얕아지는 이유 중 하나는 대화가 날씨, 직장, 가족 같은 안전한 주제에만 머물기 때문이다. 심리학 연구들은 자기 노출(self-disclosure), 즉 자신의 감정과 내면을 솔직하게 드러내는 것이 친밀감의 핵심임을 보여준다. 친구들에게 자신을 보여주는 걸 극도로 두려워하거나 거부한다면, 상대방 입장에서는 나에게 거리감을 느낄 수밖에 없으니 노력할 필요가 있다.
셋째, 관계에 투자하는 것을 '부담'이 아닌 '선택'으로 보라. 친구에게 먼저 연락하고, 힘들다는 친구의 말에 시간을 내고, 불편하더라도 솔직한 피드백을 주는 것. 이 모든 것이 우정을 유지하는 적극적인 행위다. 이러한 행위들을 부담으로 여기지 말자. 우정의 힘은 정말 크다. 내가 친구들로부터 에너지를 많이 얻고 있고, 그들과 함께하기를 자발적으로 선택하는 것임을 알아둬야 한다.
나이가 들수록 우정은 자연스럽게 줄어드는 것이 아니라, 충분한 관심과 노력을 기울이지 않아서 줄어드는 것이다. 연인 관계에 공을 들이듯, 오랜 친구에게도 의도적인 에너지를 쏟을 필요가 있다. 오늘, 오랫동안 연락하지 못한 친구에게 짧은 메시지 하나를 보내는 것. 그게 시작이다.
1) Dunbar, R. I. M. (1996). Grooming, gossip, and the evolution of language. Harvard University Press.
2) Hall, J. A. (2019). How many hours does it take to make a friend? Journal of Social and Personal Relationships, 36(4), 1–19. https://doi.org/10.1177/0265407518761225
3) Waldinger, R. J., & Schulz, M. S. (2023). The good life: Lessons from the world's longest scientific study of happiness. Simon & Schust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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