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족의 상처는 어떻게 대물림되는가 — 영화 〈에브리씽 에브리웨어 올 앳 원스〉로 보는 다세대 전수과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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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족의 상처는 어떻게 대물림되는가 — 영화 〈에브리씽 에브리웨어 올 앳 원스〉로 보는 다세대 전수과정
  • 기사등록 2026-06-28 11:17: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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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심리학신문=강미소 kmsan0407@naver.com]

멀티버스를 배경으로 한 SF 액션 영화가 가족의 의미와 심리학적 통찰을 담을 수 있을까. 2022년 아카데미 시상식을 7개 부문을 석권한 영화 〈에브리씽 에브리웨어 올 앳 원스〉는 그 물음에 "그렇다"고 답한다. 화려한 우주적 배경 속에는 한 가족의 상처와 화해, 그리고 세대를 넘어 반복되는 갈등의 심리학이 촘촘히 담겨 있다.


세탁소에서 시작되는 갈등

영화는 총 3부로 구성된다. 1부 'Everything', 2부 'Everywhere', 3부 'All At Once'가 그것이다. 1부는 중국계 이민자 에블린이 미국에서 운영하는 세탁소에 세무 조사에 제출할 수많은 영수증 더미를 정리하는 장면에서 시작된다. 이미 팍팍한 현실 속에서 남편 웨이먼드의 이혼 요구와 딸 조이와의 오랜 갈등이 겹치며 에블린은 대혼란에 빠지게 된다.

 

그런 그녀 앞에 다른 멀티버스(다중우주)에서 온 웨이먼드가 나타나 충격적인 사실을 전한다. 수천, 수만의 에블린이 저마다 다른 삶을 살아가고 있으며, 세계를 멸망시키려는 강력한 악당 '조부 투파키'에 맞서기 위해 그 모든 에블린의 능력을 빌려와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영화의 가장 강렬한 반전은 조부 투파키의 정체에 있다. 그녀는 다름 아닌 에블린의 딸, 조이였다. 에블린이 멀티버스의 가능성을 처음 깨달았을 때 그 감각을 딸에게 무리하게 강요했고, 결국 조이는 무한한 가능성 속에서 오히려 모든 것의 허무함을 먼저 깨달아버린 것이다. 에블린은 차마 딸을 적으로 대할 수 없어 그녀를 구하겠다고 다짐하지만, 그로 인해 다중우주의 모든 이를 적으로 돌리게 된다.


허무주의의 소용돌이, 그리고 다정함

2부 'Everywhere'에서 에블린은 조부 투파키가 만들어낸 베이글과 마주한다. 베이글은 세상의 모든 것을 빨아들이는 블랙홀이자 허무주의의 상징으로, 그것을 본 에블린 역시 모든 것이 의미 없다는 절망에 잠식되기 시작한다. 다중우주 속 모든 에블린이 파괴적으로 변해가는 가운데, 조부 투파키는 에블린에게 베이글 속으로 함께 사라지자고 손을 내민다.

 

이때 반전을 만드는 것은 뜻밖의 인물이 등장한다. 에블린이 평소 착하기만 하지, 수동적이고 무능하다고 여겼던 남편 웨이먼드가 홀로 문제들을 하나씩 해결하며 그녀에게 외친다. "다정함을 보여줘." 이 한 마디는 에블린을 어둡고 잠식된 허무주의에서 끌어낸다. 싸움 대신 다정함으로 사람들을 대하기 시작한 에블린은 결국 온 가족과 함께 조이를 베이글의 끝에서 되돌려 놓는다.

 

3부 'All At Once'에서 마침내 에블린은 조이에게 "어떤 우주에서도 나는 너를 선택하겠다"는 마음을 전하며 두 사람은 비로소 화해에 이른다. 가족은 다시 평온한 일상으로 돌아가고, 서로를 인정하고 수용하며 살아간다.


가계도로 읽는 에블린 가족의 심리

영화를 심리학적 시각으로 보면 가족들의 갈등을 한눈에 볼 수 있다. 에블린은 중국계 미국인으로, 배우를 꿈꿨지만 아버지의 강한 반대를 무릅쓰고 웨이먼드를 따라 미국으로 이민해 세탁소를 운영하고 있는 인물이다. 그녀는 착하고 아내의 말만 따르는 남편 웨이먼드에게 답답함을 느끼고, 대학을 중퇴하고 동성 연인 벡키와 교제하며 타투를 새기는 딸 조이의 선택들에 깊은 실망을 감추지 못한다. 반면 조이는 엄마에게 인정받고 싶어 하지만, 에블린이 외할아버지에게 조이의 여자친구인 벡키를 그저 ‘친한 친구’라고 소개하자 크게 상처를 받는다. 인정받지 못한 딸의 아픔이 드러나는 장면이다. 그런데 영화는 이 갈등이 어디서 비롯됐는지를 조용히 드러낸다. 에블린 역시 미국행을 선언했을 때 아버지에게 모진 말과 무시만 들어야 했다. 인정받지 못한 채 자란 에블린이 이제 자신의 딸에게 같은 상처를 되풀이하고 있는 것이다.


다세대 전수과정: 상처는 어떻게 세대를 거쳐가는가

이 반복의 구조는 가족치료 이론으로 명확히 설명할 수 있다. 가계도 분석 기법을 창시한 Murray Bowen의 다세대 가족치료에서는 이를 '다세대 전수과정(Multigenerational Transmission Process)'이라는 개념으로 설명한다. 다세대 전수과정이란 유전적 특성만이 아니라 가족의 심리적 문제, 미해결 정서, 자기분화 수준이 여러 세대에 걸쳐 전달되는 현상을 의미한다. 관계 방식, 정서 반응 패턴, 심지어 갈등의 양상까지도 세대를 넘어 예측 가능한 방식으로 반복된다는 것이다.

 

이를 영화 속 에블린과 조이에게 대입해보자면, 에블린의 아버지는 딸의 선택을 인정하지 않았고, 에블린은 그 상처를 안은 채 자랐다. 그리고 정작 자신은 딸에게 같은 방식으로 반응했다. 딸을 통제하고 인정하지 않음으로써 오히려 상처를 주지 않으려 했다는 역설적인 설명도 영화 안에 담겨 있지만, 결과적으로 조이는 에블린이 받은 것과 동일한 상처를 받았다. 이처럼 영화 속 3대 할아버지, 에블린, 조이의 갈등 구조는 다세대 전수과정의 사례로 해석할 수 있다.


 다정함이라는 개입

그렇다면 이 반복은 어떻게 끊을 수 있을까. 영화는 그 해답을 웨이먼드의 입을 통해 건넨다. "다정함을 보여줘." 이는 단순한 감성적 메시지가 아니다. Bowen의 이론에서 변화는 자기분화 수준을 높이는 데서 시작된다. 자신의 감정과 타인의 감정을 분리하여 인식하고, 불안에 휩쓸리지 않은 채 관계에 머무를 수 있는 능력이 높아질 때, 비로소 대물림의 고리를 끊을 수 있다. 에블린이 이제껏 싸워온 방식 대신 다정함을 선택하고, 아버지인 공공에게 에블린이 당당히 당신은 내가 자랑스럽지 않을 수 있지만, 나는 내가 자랑스럽다고 말하며 자신을 수용하자 동시에 자신의 딸 조이도 수용할 수 있게 되었다. 이 지점들이 바로 그 분화의 시작점과 맞닿아 있다. 〈에브리씽 에브리웨어 올 앳 원스〉는 멀티버스라는 SF적 상상력을 빌려 결국 가장 보편적인 이야기를 한다. 상처는 대물림되고, 인정은 치유한다. 그리고 그 치유는 언제나 다정함에서 시작된다는 것을.


[참고문헌]

1) Reiter, M. D. (2021). 가족치료의 길잡이 (정혜정, 역). 학지사. 

2) 권석만. (2025). 현대 심리치료와 상담 이론: 마음의 치유와 성장으로 가는 길 (2판). 학지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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