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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심리학신문=편집부 ]
극심한 고통 속에서도 관중을 향해 손을 흔들었다. 치명적인 부상으로 들것에 실려 나가던 캐나다 선수 코네는 옅은 미소까지 지어 보였다. 경기장을 가득 채운 수만 명의 관중이 한순간 숨을 삼켰다. '저 사람은 왜 저럴 수 있지?'라는 질문이 머릿속을 스쳤을 것이다.
이런 장면은 단순한 스포츠 미담으로 끝나지 않는다. 심리학자들은 이 순간에서 인간의 가장 깊은 층위에 자리한 이타적 본능과 자기초월적 태도를 읽어낸다. 극한의 상황에서 오히려 타인을 배려하는 행동, 도대체 우리 뇌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는 걸까?
제임스 그로스 미국 스탠퍼드대 심리학과 교수는 극도의 스트레스 상황에서 인간이 보여주는 '정서 조절(emotion regulation)' 능력에 주목한다. 2021년 성인 800명을 대상으로 한 연구에서 그로스 교수팀은 극한 신체 고통을 경험한 사람의 약 43%가 주변인을 안심시키려는 행동을 자발적으로 취한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이는 무의식적으로 작동하는 사회적 뇌의 반응이라는 설명이다.
뇌과학적으로도 이 현상은 설명된다. 신체 고통 신호를 처리하는 전대상피질(anterior cingulate cortex)은 타인의 감정을 읽는 공감 회로와 해부학적으로 맞닿아 있다. 즉, 내가 아픈 바로 그 순간, 뇌의 일부는 동시에 '저 관중들이 걱정하고 있구나'를 감지하고 반응한다는 것이다.
코네의 손짓 한 번이 관중석 전체를 뒤흔든 이유도 여기에 있다. 인간은 자신의 취약한 순간을 드러내면서도 타인을 위로하는 사람에게서 본능적으로 경외감을 느낀다. 이를 심리학에서는 '도덕적 고양(moral elevation)'이라고 부른다.
조너선 하이트 미국 뉴욕대 스턴경영대학원 심리학 교수가 처음 개념화한 도덕적 고양이란, 타인의 덕스러운 행동을 목격했을 때 가슴이 따뜻해지고 눈물이 나며 선한 행동을 하고 싶어지는 감정 반응이다. 하이트 교수팀의 2003년 연구에 따르면 도덕적 고양을 경험한 피험자의 65%가 이후 24시간 내에 자발적 봉사나 친사회적 행동을 실천했다.
코네의 장면을 본 수많은 관중이 SNS에 '이것이 진짜 스포츠 정신이다'라고 쓰고, 낯선 이의 용기에 눈물을 흘린 이유가 바로 이것이다. 우리는 남의 이야기를 보면서 우리 자신의 내면에 잠든 선함을 자극받는다.
특히 스포츠 경기장이라는 공간은 이 효과를 증폭시킨다. 수만 명이 한 방향을 바라보며 동일한 감정을 공유하는 상황에서는 집단적 도덕 고양이 발생하고, 개인이 혼자 경험할 때보다 훨씬 강렬한 인상을 남긴다는 연구 결과도 있다.
심리학자 에이브러햄 매슬로가 말년에 추가한 '자기초월(self-transcendence)' 개념은 코네의 행동을 이해하는 핵심 열쇠다. 매슬로는 욕구 5단계 위에 한 단계를 더 얹었는데, 그것이 바로 자신의 이익이나 생존 본능을 넘어 더 큰 의미와 타인을 위해 행동하는 상태다. 엘리엇 소노우 미국 펜실베이니아주립대 심리학과 교수의 2019년 연구에서는 자기초월 경험을 한 운동선수들의 경기 후 회복력이 그렇지 않은 선수들보다 평균 31% 높았다.
코네는 아마도 의식적으로 '위로해야겠다'고 생각하지 않았을 것이다. 수년간 팀을 위해, 팬을 위해 훈련해온 운동선수의 몸과 마음에는 이미 타인 지향적 태도가 깊이 새겨져 있다. 극한의 순간에 그것이 반사적으로 튀어나온 셈이다.
상대팀 선수들이 코네를 몰아부치기보다 위로했다는 사실도 같은 맥락이다. 경쟁 상황에서도 인간 본연의 공감 능력은 사라지지 않는다. 오히려 생사가 걸린 듯한 긴박한 순간일수록, 인간은 서로가 '같은 편'임을 본능적으로 깨닫는다.
거창한 부상이나 극한의 상황이 아니어도 된다. 심리학자들은 일상 속 작은 자기초월의 순간들이 쌓여 코네 같은 반응을 가능하게 한다고 말한다. 미국 심리학회(APA)에 따르면 하루 10분씩 타인의 입장에서 생각하는 습관만으로도 공감 능력과 친사회적 행동이 6주 안에 유의미하게 향상된다.
힘들 때 먼저 손 내밀기, 고통 속에서도 미소 한 번 건네기. 코네가 들것에 실린 채 관중을 향해 흔든 그 손처럼, 우리의 작은 제스처 하나가 누군가에게는 오랫동안 잊히지 않는 장면이 될 수 있다. 오늘 주변을 한번 둘러보자. 지금 당신의 손을 기다리는 누군가가 분명 있을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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