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원한 현재를 살아가던 H.M: 기억의 위대한 아버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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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심리학신문=함형진(zzxxiop123@naver.com)]


이동진 평론가를 통해 알게 된 문장 중에 선명한 기억보다 흐릿한 기록이 낫다는 말이 있다. 인간의 기억력이 온전하지 않아 때론 잘못된 정보를 선명하게 기억하기도 한다. 대표적인 예시가 목격자의 진술이다. 목격자이기에 해당 사건을 완전히 기억하여 증언한다고 생각하겠지만, 사실 목격자의 기억이 그렇게까지 신뢰할 수 있는 부분이 아님은 오랫동안 증명되어왔다. 또한 인간은 흐릿한 기록일지라도 그 기록을 통해 그날의 이야기를 두 번씩 경험할 수 있게 된다. 기록을 한 날, 기록을 다시 마주한 날을 통해 우리는 또다시 기억을 통해 살아가는 존재다. 이렇게 기억은 우리 인간에게 굉장히 중요한 요소로 작용한다. 이에 심리학에서도 뇌과학, 그 중 기억에 대해서 수많은 연구를 진행하고 있다. 기억의 큰 진보가 누구의 덕이냐고 묻는다면 필자는 무조건 H.M(헨리 몰레이슨)이라고 말하고 싶다. 영원한 현재를 살아간 그에 대해서 이야기함으로써 기억에 대해서 더욱 알아보는 시간을 가지고자 한다. 

 

1.  HM의 간질, 그리고 수술


HM(본명은 '헨리 몰레이슨'이지만 그에 대한 사적인 정보를 보호하고자 그의 생전에는 HM이라는 이름으로 논문에 올라갔다.)는 10살부터 간질발작을 하기 시작했다. 자전거 사고로 생겼을 수도, 혹은 가족력으로 생겼을 수도 있는데 아무튼 이것이 HM의 삶을 괴롭히기 시작했다. 소발작(실신발작)이 시작되면 HM은 잠시 몇 초 동안 멍때리는 것으로 보였다. 그러나 대발작이 일어나면 사지가 굳으며 온몸에 경련이 일어난다. 약물로도 오랫동안 치료가 안 되던 HM의 간질은 결국 최후의 수단에 도달했다. 당시에 유명했던 측두엽절제술이다. 모든 간질발작이 뇌의 과도한 전기 활동이 야기하는 행동 현상으로 보는데, 이를 위해서 측두엽 부위가 원인이 되는 발작을 억제하고자 왼쪽 혹은 오른쪽의 측두엽을 자르는 것이다.


2. 해마의 중요성_해마가 장기기억에 중대한 역할을 한다. 


수술 이후의 HM은 그 무엇도 기억해낼 수 없었다. 이때부터 우리는 HM을 통하여 기억에 있어서의 모험을 시작할 수 있었다. HM덕분에 뇌 양쪽 해마가 손상되면 기억상실증이 생긴다는 것을 최초로 밝힐 수 있었다. 이에 대해서 부가설명을 하자면, 왼쪽 측두엽은 시각 정보 처리를 하고, 오른쪽 측두엽은 시공간 정보 처리를 담당한다. 뇌는 좌뇌에서 우뇌로, 우뇌에서 좌뇌로 연결해주는 구조물이 있어서 좌우 측두엽이 서로 정보를 교환할 수 있다. 이 덕분에 한 쪽 해마가 사라져도 남은 해마가 언어 정보든 비언어 정보든 상관없이 다양한 정보를 활발하게 처리함으로써 학습 기능과 기억 기능을 수행할 수 있다. HM은 최근기억(recent memory) 능력이 거의 상실했으나 성격이나 지능에는 큰 변화가 없었다. 이후 HM과 같은 환자들을 추가 연구하여 해마, 그리고 해마에 인접 부위가 장기기억 형성에 절대적으로 중요하다는 것을 최초로 발견했다. 기억은 감각기관을 통해 들어온 정보가 해마로 들어오면서 기억으로 형성되기 시작한다. 이후 감각정보와 해마가 신호를 주고 받는 동안 해마가 단기간 저장하고 있던 기억이 대뇌피질로 보내진다. H.M의 경우 감각기관은 괜찮았으나 양쪽 해마 전면, 연결된 부위(내후뇌피질, 후각주위피질, 부해마피질), 그리고 감정을 관장하는 편도체가 없기에 장기기억 형성을 못하였다. 그에게 나타난 순행성 기억상실증은 일화지식과 의미지식을 기억하지 못하게 만들었다. 또한 우측 부해마피질이 손상된 그는 공간기억도 할 수 없었다. 


3. 단기기억


HM 이전에는 연구자들은 기억이 뇌에 어느 한 공간에 저장되는 것으로 보았다. 그러나 HM을 통하여 기억이 어떤 단독 기능이 아니라 여러 다른 기능이 조합된 것임을 밝혀냈다. HM에 관하여 단기기억에 관한 실험을 많이 진행했다. 참고로 단기기억은 최근의 일을 기억하는 것이 아닌 눈앞의 현재와 관련한 것, 다시 말해서 지금 현재 우리에게 들어오는 정보를 기억하는 일이다. HM는 단기기억과 관련한 과제를 잘 수행했다. 즉, 단기기억력은 손상되지 않았으나, 단기기억을 장기기억으로 전환하는 기능이 손상된 것이다. 우리는 단기기억과 장기기억에 관해서 이것이 일련의 과정을거치는 것인지, 아니면 각각의 신경회로를 통하여 각각의 단기기억과 장기기억을 저장하는 것인지 궁금했다. 연구결과, 캔들 연구진은 단기기억과 장기기억의 활동 메커니즘이 서로 다르다는 것을 발견했다. 단기기억이 시냅스의 기능 변화와 연관은 있으나 구조 변화와는 연관이 없음을 보여준다. 학습 과정에서 기존 시냅스가 강화 혹은 약화될 수는 있으나 표면상으로 구조 변화가 일어나지 않는다. 그러나 장기기억의 경우 시냅스에 물리적 변화가 일어난다. 장기기억에는 단백질 합성이 필요하나 단기기억은 그렇지 않다. 더불어서 단기기억은 가능하지만 장기기억이 가능한 HM의 케이스를 볼 때에 단기기억과 장기기억은 별개의 과정으로 처리될 뿐만 아니라 뇌에서도 두 유형의 기억을 관장하는 영역(단기기억을 처리하는 것은 피질, 장기기억을 처리하는 것은 내측두엽)이 각각 다르다는 것을 시사한다. 아무튼 간에, 헨리의 단기기억 과제 수행결과는 그가 약 30~60초 정도 기억할 수 있으며 기억에 대한 간섭이 들어올 경우 15초 미만 정도였다. 그는 최대한 오래 기억하기 위해서 인지제어처리를 해야 했다. 이는 어떤 목표를 위하여 생각을 제어하는 능력의 토대가 되는 기능으로, 기억에 대한 간섭을 억제하기 위해 도움을 주는 기능이다. 하지만 슬프게도 HM은 약 1분이 지나면 그 모든 기억이 사라진다. 그의 기억력 정도는 방금 자신이 무엇을 했는지도 까먹는 수준인 것이다. 


4. 작업기억


작업기억은 정보를 일시적으로 보유하고 각종 인지적 과정을 수행하는 일종의 정신적 작업장이다. 작업기억과 단기기억(다른 말로 즉시기억)에는 차이가 있다. 단기기억이 소량의 정보를 반복하는 것(숫자 3, 6, 9를 말로 반복하기)이라면, 작업기억은 소량의 정보를 이용하여 복잡한 과제를 수행하는 것(3 X 6 X 9를 암산하기)이다. 작업기억은 필요한 정보를 검토하고 조작하는데, 이처럼 특정한 단기적인 목표를 성취하는 데 필요한 인지 및 신경 처리 과정을 조직한다. 작업기억은 전두엽과 상당한 관련이 있다. 계획과 사고의 유연성은 전두엽이 정상적으로 기능하는지 여부에 달려 있다. HM은 전두엽 기능은 아주 훌륭했고, 3대 핵심 인지기능인 정보 보유, 정보 갱신, 반응 억제도 온전했다. 그러나 작업기억에서 HM의 수행점수는 대조군보다 낮았는데, 이는 빨리 답해야 하는 상황이나 장기기억을 순간적으로 동원해야 하는 과제에서 불리한 모습을 보였다. 단기기억의 용량을 넘는 과제이면 우리는 장기기억을 불러일으켜 과제를 수행하는데, HM은 불러올 장기기억이 없기 때문이다. 2012년 UC샌디에이고의 기억 연구자들이 이 주제를 다룬 신경학 학술지의 논문 90편을 분석하고 다음의 결론을 내렸다. "과제에 요구되는 것을 작업기억으로 수용할 수 없을 때는 서술적 장기기억이 과제 수행을 지원한다."


결론


기억은 단편적인 사진이 아닌 끊임없이 역동하는 영상과도 같다. 우리는 그 영상을 다시 돌아보며 현재를 살아가고, 그 현재를 통해 미래를 그려나간다. 기억을 공부할 때, 그리고 심리학을 공부할 때 본인의 아픔조차 헌신하여 우리에게 큰 지식과 지혜를 전달해준 헨리 몰레이슨을 우리가 영원히 기억했으면 좋겠다.


출처
1) Corkin, S. (2019). 영원한 현재 H.M. (이민아 역). 알마. (원저 2013 출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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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사등록 2026-06-28 11:17: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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