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딥페이크 피해 53%가 한국 아이돌…제작자는 철퇴, 구매자는 ‘무죄‘인 모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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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딥페이크 피해 53%가 한국 아이돌…제작자는 철퇴, 구매자는 '무죄'인 모순


[한국심리학신문=편집부 ]


세계 딥페이크 피해 53%가 한국 아이돌…제작자는 철퇴, 구매자는 '무죄'인 모순


지난 6월 18일, 걸그룹 에스파 멤버들의 딥페이크 성착취물을 제작·유포한 20대 남성이 징역 2년 6개월을 선고받았다. 피해자가 유명 연예인이라는 이유로 세간의 이목을 끌었지만, 판결 이후 쏟아진 반응은 처벌의 적정성을 두고 둘로 갈렸다.


그런데 이 사건에는 정작 더 불편한 진실이 숨어 있다. 제작자는 실형을 받았지만, 그 영상을 돈을 내고 구매한 사람들은 아무런 처벌을 받지 않았다. 왜 우리는 '만든 사람'에게만 분노하고, '소비한 사람'에 대해서는 침묵하는 걸까.



피해의 53%가 한국에서: 왜 유독 K팝 아이돌이 표적이 되는가


사이버보안 업체 홈 시큐리티 히어로즈의 2023년 보고서에 따르면, 전 세계 딥페이크 성착취물 피해자 중 무려 53%가 한국 아이돌인 것으로 집계됐다. 할리우드 배우나 서구권 셀러브리티를 모두 합쳐도 이 수치를 넘지 못한다. 왜 유독 K팝 스타들인가.


심리학자들은 이를 '파라소셜 관계의 병리적 왜곡'으로 설명한다. 파라소셜 관계란 미디어 속 인물에게 실제 관계처럼 친밀감을 느끼는 현상을 말하는데, K팝 산업은 구조적으로 이 감정을 극대화하도록 설계되어 있다. 팬 사인회, 개인 직캠, 브이로그식 일상 콘텐츠가 팬으로 하여금 '나는 저 사람을 잘 안다'는 착각을 심화시키는 것이다.


이화여대 심리학과 이수정 교수는 '파라소셜 관계가 깊어질수록 상대를 실제 인격체가 아닌 자신의 판타지를 투영하는 대상으로 인식하는 경향이 강해진다'고 설명한다. 딥페이크 제작은 바로 그 판타지를 강제로 현실화하려는 충동의 산물이라는 것이다.



소비자의 침묵: '사기만 했는데'라는 위험한 착각


현행법의 가장 큰 맹점은 바로 여기에 있다. 성폭력처벌법은 딥페이크 성착취물의 제작과 유포에 대해서는 처벌 규정을 두고 있지만, 단순 구매·소지에 대한 처벌 조항은 사실상 공백 상태다. 실제로 에스파 사건에서 수십 명의 구매자가 파악됐음에도 기소된 인원은 제작·유포자뿐이었다.


이 법적 공백은 심리적으로도 매우 위험한 메시지를 사회에 보낸다. 미국 노스웨스턴대 심리학과 다나 카니 교수는 2021년 연구에서 '구매 행위에 법적·사회적 제재가 없을 때 소비자는 자신의 행동을 도덕적으로 중립화하는 인지 왜곡을 일으킨다'고 밝혔다. 즉 '나는 만들지 않았으니 괜찮다'는 생각 자체가 하나의 심리적 방어기제로 작동한다는 것이다.


이를 심리학에서는 '도덕적 이탈'이라고 부른다. 앨버트 반두라 미국 스탠퍼드대 심리학과 교수가 제시한 이 개념은, 사람들이 자신의 행동이 해롭다는 것을 알면서도 책임을 분산시키거나 피해를 축소함으로써 양심의 가책을 피해가는 과정을 설명한다. '나는 그냥 봤을 뿐이야', '어차피 이미 퍼진 거잖아'라는 생각이 전형적인 도덕적 이탈의 언어다.



피해자의 뇌에서 일어나는 일: 지워지지 않는 디지털 낙인


피해를 입은 당사자들의 심리적 고통은 상상을 초월한다. 영국 사우샘프턴대 심리학과 루시 하퍼 박사 연구팀이 2022년 딥페이크 성착취물 피해 여성 84명을 대상으로 진행한 연구에서, 피해자의 91.7%가 심각한 불안 증상을 호소했고, 78.6%는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 증상을 보고했다.


특히 실존 인물을 대상으로 한 딥페이크 피해는 기존 성범죄와 다른 독특한 공포를 유발한다. '내 얼굴이 붙어있지만 내가 아닌 영상'이 존재한다는 사실이 자아 정체성 자체를 위협하는 것이다. 하퍼 박사는 이를 '정체성 침탈감'이라고 명명하며, 피해자들이 자신의 몸과 이미지에 대한 통제력을 완전히 상실했다는 감각을 지속적으로 경험한다고 설명했다.


유명인 피해자의 경우 상황은 더 복잡해진다. 팬덤의 옹호와 사회적 시선이 뒤섞이면서, 피해 사실 자체를 공개적으로 표현하기 어려운 구조 속에 갇히게 된다. '연예인이니까 어느 정도 감수해야 한다'는 인식이 피해자를 두 번 다치게 만드는 것이다.



법은 뒤처지고 기술은 앞서간다: 우리가 지금 할 수 있는 것


딥페이크 기술은 지금 이 순간에도 무서운 속도로 발전하고 있다. 2024년 기준 딥페이크 탐지 오류율은 평균 23%에 달한다는 MIT 미디어랩 연구 결과가 있다. 기술이 법과 인식을 압도적으로 앞질러 가는 상황에서, 제도 개선을 기다리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다.


심리학은 이 문제의 해법 중 하나가 '소비자 책임 인식의 전환'에 있다고 말한다. 딥페이크 성착취물을 클릭하고 공유하고 구매하는 행위가 실제 피해자의 정신건강에 직결된 폭력임을 인식하는 것, 그리고 '보는 것도 가담이다'라는 사회적 합의를 형성하는 것이 법 개정만큼이나 중요하다. 연예인이든 일반인이든, 화면 속 얼굴에도 온전한 인격이 있다는 사실을 오늘 한 번쯤 되새겨 보는 건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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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사등록 2026-06-20 07:11: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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