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인간은 달리는가"…숨이 끊어질 것 같아도 멈추지 못하는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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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심리학신문=편집부 ]


"왜 인간은 달리는가"…숨이 끊어질 것 같아도 멈추지 못하는 이유


숨이 턱까지 차오르고, 다리는 무겁고, 심장은 터질 것 같다. 그런데도 발은 멈추지 않는다. 마라톤을 완주한 사람들이 공통적으로 하는 말이 있다. '다시는 안 뛴다'고 했다가 다음 해에 또 참가 신청을 한다는 것이다.


서울대 스포츠과학부 김기한 교수는 최근 강연에서 '인간은 왜 달리는가'라는 질문을 화두로 꺼냈다. 단순한 운동 이야기가 아니었다. 인간의 욕망, 한계, 그리고 자기 자신을 이해하는 방식에 대한 이야기였다.



달리기가 뇌에 주는 것: 마약보다 강력한 쾌감 회로


달리기를 지속하면 뇌에서 엔도르핀이 분비된다는 사실은 널리 알려져 있다. 그런데 2021년 독일 하이델베르크대학교 신경과학과 헨닝 보에커 교수 연구팀이 발표한 논문에 따르면, 2시간 이상 달린 뒤 측정된 주자들의 뇌에서 오피오이드 수용체 활성화 수준이 모르핀을 투여한 집단과 유사한 수준으로 나타났다. 고통을 억제하고 쾌감을 유발하는 바로 그 경로다.


더 흥미로운 건 엔도카나비노이드 시스템이다. 달리기 중 분비되는 아난다마이드라는 물질은 대마초의 유효성분과 동일한 수용체에 결합한다. 몸이 스스로 만들어내는 천연 '러너스 하이'인 셈이다. 실제로 2021년 미국 아이오와주립대 심리학과 연구팀이 성인 230명을 대상으로 진행한 실험에서 30분 유산소 달리기 이후 불안 지수가 평균 41% 감소했고, 기분 점수는 23% 상승한 것으로 확인됐다.


이 쾌감이 한 번이라도 각인되면 뇌는 달리기를 '보상'으로 기억하기 시작한다. 스트레스를 받을 때마다 몸이 먼저 운동화를 찾는 이유가 여기 있다. 달리기는 취미가 아니라 일종의 자기 치유 메커니즘이 되는 것이다.



1시간 59분 30초의 심리학: 한계는 뇌가 만들어낸 허구


2019년 엘리우드 킵초게가 마라톤 2시간의 벽을 깬 순간, 스포츠 과학계는 술렁였다. 그때까지 전문가들은 인간의 생리적 한계상 마라톤 2시간 완주는 불가능하다고 봤다. 그런데 킵초게는 1시간 59분 40초를 기록했다. 사우스 아프리카 출신 선수 엘리야 키예트가 2025년 1시간 59분 30초로 이를 다시 갱신했다.


팀 노아케스 남아프리카공화국 케이프타운대학교 스포츠과학과 교수는 이를 '중앙 조절자 이론'으로 설명한다. 우리가 '한계'라고 느끼는 순간은 실제 신체 기능이 멈추는 순간이 아니라, 뇌가 위험 신호를 보내며 미리 브레이크를 거는 순간이라는 것이다. 즉, 한계의 상당 부분은 신체가 아닌 심리가 만들어낸다.


이 이론은 일상에도 그대로 적용된다. '나는 이 이상 못 해'라는 생각이 드는 순간, 실제로는 아직 여력이 남아 있을 가능성이 높다. 달리기를 통해 인간은 자신이 설정한 심리적 한계를 반복적으로 부수는 경험을 쌓는다.



완주 후 눈물이 나는 이유: 자기효능감과 정체성의 재편


마라톤 결승선을 통과한 뒤 많은 사람들이 이유 없이 눈물을 흘린다. 심리학에서는 이를 자기효능감의 폭발적 상승과 연결해 설명한다. 자기효능감은 앨버트 반두라 미국 스탠퍼드대학교 심리학과 교수가 정립한 개념으로, '나는 할 수 있다'는 내면의 확신을 뜻한다. 반두라 교수의 연구에 따르면 자기효능감은 말로 듣는 것보다 직접 해내는 경험, 즉 성취 경험을 통해 가장 강력하게 강화된다.


42.195킬로미터를 완주한 사람의 뇌는 이전과 같지 않다. '나는 마라토너'라는 새로운 정체성이 생긴다. 미국 하버드대학교 경영대학원 아이엘릿 피시바흐 교수의 연구에 따르면, 사람들은 특정 목표를 달성했을 때 행동 변화보다 정체성 변화를 먼저 경험한다. 달리기를 지속하는 사람들이 '운동을 한다'가 아니라 '나는 러너'라고 말하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자기 자신을 다시 정의하는 경험, 그것이 수많은 사람이 고통스럽다면서도 계속 달리는 핵심 이유다. 달리기는 몸을 단련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이 누구인지를 확인하는 행위가 된다.



나만 이렇게 힘들게 달리는 건가: 달리기와 사회적 연결


요즘 마라톤 대회 참가자 수는 해마다 늘고 있다. 대한육상연맹에 따르면 국내 마라톤 대회 참가 신청 건수는 2023년 기준 약 47만 건으로 10년 전 대비 2.3배 증가했다. 혼자 달리는 스포츠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가장 강력한 공동체 경험 중 하나다.


로빈 던바 영국 옥스퍼드대학교 실험심리학과 명예교수는 함께 움직이는 집단 활동이 엔도르핀 분비를 혼자 운동할 때보다 최대 2배 높인다는 연구 결과를 발표했다. 같은 페이스로 달리고, 같은 고통을 나누고, 같은 결승선을 통과하는 경험이 언어 없이도 깊은 유대감을 만들어낸다는 것이다. 달리기 크루와 러닝 클럽이 빠르게 늘어나는 이유가 단순한 운동 열풍만은 아닌 셈이다.


연결과 소속감을 갈망하는 현대인에게 달리기는 가장 원초적인 방식의 공동체 경험이 될 수 있다. 오늘 저녁, 혼자라도 10분만 달려보는 건 어떨까. 뇌는 이미 보상을 기억하고 있을 테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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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사등록 2026-06-21 07:14: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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