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기꾼 낙인에 공황장애"…억울함을 믿어주지 않는 세상, 어떻게 버텼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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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심리학신문=편집부 ]


"사기꾼 낙인에 공황장애"…억울함을 믿어주지 않는 세상, 어떻게 버텼을까


억울한 일을 당했는데 아무도 믿어주지 않는다면, 당신은 어떻게 할 것인가. 해명할수록 의심은 깊어지고, 침묵하면 인정으로 받아들여지는 상황. 그 안에 갇힌 사람의 마음은 어디로 향할까.


배우 윤지오가 8년간 64건의 법적 대응 끝에 잇따라 승소하며 다시 공개 석상에 나섰다. 그는 인터뷰에서 '사기꾼이라는 낙인에 공황장애가 왔다'고 털어놨다. 한 사람이 8년을 버텨온 방식, 그리고 그 과정에서 심리적으로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심리학은 조용히 설명하고 있다.



낙인이 뇌에 새기는 상처: 단순한 오해가 아니라 정체성 붕괴다


심리학에서 '낙인 효과(stigma effect)'는 단순히 평판이 나빠지는 것 이상을 의미한다. 브루스 링크 미국 컬럼비아대 사회역학과 교수는 1980년대부터 낙인 연구를 이어오며, 사회적 낙인이 당사자의 자아개념을 직접 침식한다는 것을 밝혔다. '나는 사기꾼이 아니다'라고 생각하는 사람도, 주변이 일관되게 사기꾼으로 대할 때 뇌는 그 신호를 반복 처리하며 결국 자기 자신을 의심하기 시작한다.


이 과정에서 공황장애가 발생하는 것은 매우 자연스러운 심리적 반응이다. 공황은 '통제할 수 없는 상황에서 위협을 감지한 뇌가 발동하는 비상경보'이기 때문이다. 아론 벡 미국 펜실베이니아대 정신의학과 명예교수의 인지이론에 따르면, 자신이 아무리 무죄라도 외부 세계 전체가 적으로 느껴질 때 뇌는 실제 물리적 위협과 동일한 수준의 공포 반응을 일으킨다.


윤지오 사례처럼 증언자가 오히려 범죄자로 몰리는 구조는 심리학적으로 '이중 피해화(secondary victimization)'에 해당한다. 처음 상처를 입힌 사건보다 이후 사회적 반응이 더 큰 심리적 외상을 남기는 경우가 많다는 연구 결과가 이를 뒷받침한다.



아무도 믿지 않을 때 사람은 무너지는가: 심리적 회복탄력성의 조건


그렇다면 어떻게 8년을 버틸 수 있었을까. 조지 보나노 미국 컬럼비아대 임상심리학과 교수는 2004년 학술지 '아메리칸 사이콜로지스트'에 발표한 연구에서, 극단적인 역경을 겪은 사람 중 약 35~65%는 외상 후 스트레스 없이 회복하는 '회복탄력성(resilience)'을 보인다고 밝혔다. 핵심 변수는 단 하나, '자신이 옳다는 내적 확신'이었다.


법적 대응 64건이라는 숫자는 단순한 소송 기록이 아니다. 심리학자들은 이것을 '문제 중심 대처(problem-focused coping)'의 극단적 형태로 본다. 리처드 라자루스 미국 버클리 캘리포니아대 심리학과 교수는, 감정을 억누르는 것보다 상황을 직접 바꾸려는 행동이 장기적으로 심리적 소진을 줄인다는 것을 연구로 보여줬다. 싸우는 것 자체가 무너지지 않는 방법이었던 셈이다.


물론 이 과정이 무탈하지는 않다. 공황장애 고백이 보여주듯 신체는 정직하게 고통을 표현했다. 그러나 마틴 셀리그만 미국 펜실베이니아대 긍정심리학 센터장은 외상 이후 성장(post-traumatic growth)이 가능하다는 것을 2600명 이상의 피험자를 대상으로 한 연구에서 입증했다. 고통이 깊을수록 통과한 뒤 자기 확신도 더 단단해진다는 것이다.



여론이 재판관이 되는 사회: 우리의 뇌가 진실보다 이야기를 좋아하는 이유


대중이 어떤 사람에게 한 번 '사기꾼'이라는 프레임을 씌우면 그 이후 어떤 반박도 효과를 발휘하기 어렵다. 이를 심리학에서는 '확증 편향(confirmation bias)'이라 부른다. 대니얼 카너먼 프린스턴대 심리학과 명예교수는 저서 '생각에 관한 생각'에서, 인간의 뇌는 이미 형성된 믿음과 일치하는 정보만 선택적으로 받아들이도록 설계되어 있다고 설명한다. 승소 소식이 나와도 처음 형성된 인상이 바뀌지 않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2021년 미국 스탠퍼드대 커뮤니케이션 연구팀이 성인 1200명을 대상으로 진행한 실험에서, 무죄 판결 이후에도 응답자의 41.3%는 기존의 부정적 인상을 유지했다. '일단 이미지가 손상되면 사실관계는 의미를 잃는다'는 결론이다. 온라인에서 순식간에 여론이 형성되는 지금, 이 편향은 더욱 강력하게 작동한다.


그래서 윤지오의 사례는 단지 한 연예인의 이야기가 아니다. 직장에서 억울한 누명을 쓴 사람, 오해로 관계가 틀어진 사람, SNS에서 사실과 다른 이야기가 퍼진 경험이 있는 모든 이들에게 이 심리적 구조는 낯설지 않을 것이다.



그래도 버텨낸 사람들에게: 억울함을 건강하게 다루는 법


억울한 상황에 처했을 때 가장 위험한 반응은 '아무도 내 말을 듣지 않는다'는 고립감을 혼자 삼키는 것이다. 크리스틴 네프 미국 텍사스대 오스틴캠퍼스 교육심리학과 교수는, 자기 자신에게 친구에게 하듯 말을 건네는 '자기 자비(self-compassion)' 훈련이 억울함과 분노로 인한 심리적 소진을 약 27% 줄인다는 연구 결과를 2016년 발표했다. '나는 지금 힘든 상황에 있고, 그건 내 잘못이 아니다'라고 스스로에게 말해주는 것이 출발점이다.


또한 감정을 언어로 표현하는 것, 즉 일기를 쓰거나 신뢰하는 한 사람에게 털어놓는 것만으로도 뇌의 편도체 활성이 낮아진다는 연구가 있다. 제임스 페네베이커 텍사스대 심리학과 교수는 30년에 걸친 연구에서 감정을 글로 쓴 집단이 그렇지 않은 집단보다 면역 기능과 심리적 안정 지수 모두 유의미하게 높았다는 결과를 보고했다.


오늘 당신이 억울한 감정을 가슴속에만 쌓아두고 있다면, 딱 한 문장만 써보는 건 어떨까. '나는 지금 억울하다. 그리고 그 감정은 충분히 당연하다.' 그 문장이 긴 싸움의 첫 번째 버팀목이 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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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사등록 2026-06-22 11:00: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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