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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심리학신문=편집부 ]
스캔들이 터진다. SNS가 달아오른다. 그리고 어느 날, 그 연예인은 동남아 무대에 서 있다. 국내에서 퇴출 수순을 밟던 이름이 방콕이나 자카르타의 조명 아래 다시 등장하는 장면, 이제는 낯설지 않다.
배우 승리는 2019년 마약 및 성 스캔들로 국내 연예계를 떠난 뒤 태국을 통해 재기를 노렸다. 최근에는 배우 김수현이 논란 이후 동남아 팬미팅으로 활동을 이어가며 같은 패턴을 반복하고 있다. 티브이데일리 등 복수 매체가 이 흐름을 주목했다. 왜 이들은 하필 동남아인가. 심리학은 꽤 명쾌한 답을 내놓는다.
사람은 자신의 이미지가 심각하게 훼손됐을 때 '공간적 이동'으로 심리적 재설정을 시도한다. 이를 심리학에서는 '오염된 정체성 관리(stigma management)'라고 부른다. 어빙 고프만 미국 사회학자가 처음 체계화한 개념으로, 낙인이 찍힌 개인이 그 낙인을 인식하지 못하는 새로운 청중 앞에 서려는 본능적 전략이다.
국내에서 형성된 부정적 이미지는 한국어 기사, 한국 SNS, 한국 언론 생태계 안에서만 강력하게 작동한다. 동남아 팬들은 그 맥락을 충분히 공유하지 못한다. 스캔들의 무게가 언어의 장벽 너머로 희석되는 것이다. 논란의 연예인에게 동남아는 단순한 해외 시장이 아니라, 오염된 자아를 일시적으로 세탁할 수 있는 '심리적 피난처'인 셈이다.
조나단 브라운 미국 워싱턴대 심리학과 교수의 자기 고양 이론(self-enhancement theory)에 따르면, 인간은 자아 이미지가 위협받을수록 그것을 회복하려는 동기가 강해진다. 논란 연예인의 동남아행은 충동적 도피가 아니라, 자아 회복을 향한 강력한 심리적 추동력의 결과다.
찰스 쿨리 미국 사회학자가 제시한 '거울 자아(looking-glass self)' 개념은 이 현상을 더 깊이 설명한다. 사람은 타인의 시선을 통해 자신을 정의한다. 국내 팬과 언론이 보내는 시선이 '비난과 실망'으로 가득 차 있을 때, 그 거울 앞에 서는 것은 심리적으로 극도로 고통스럽다. 반면 동남아 팬들이 보내는 환호는 전혀 다른 거울을 제공한다.
실제로 승리는 태국 팬미팅에서 국내에서는 상상하기 어려운 열광적인 환영을 받았다고 현지 매체들이 전했다. 그 순간만큼은 '스캔들의 중심인물'이 아닌 'K팝 스타'로서의 자아가 재활성화된다. 심리학에서 이를 '역할 정체성 현저성(role identity salience)'이라 한다. 어떤 청중 앞에 서느냐에 따라 활성화되는 자아의 측면이 달라지는 것이다.
2023년 미국 스탠퍼드대 사회심리학 연구팀이 성인 847명을 대상으로 진행한 연구에서, 부정적 평판을 가진 개인은 자신을 모르는 새로운 집단 앞에서 자존감 지표가 평균 31.4% 회복되는 것으로 나타났다. 낯선 청중이 심리적 회복의 강력한 자원이 된다는 것을 수치로 보여준 셈이다.
동남아 팬들의 반응이 국내와 다른 데는 단순한 '모름' 이상의 심리가 작동한다. 인지심리학의 '정보 비대칭 효과'가 핵심이다. 어떤 정보를 갖느냐에 따라 동일한 대상에 대한 평가가 완전히 달라진다. 국내 팬은 수년간 언론 보도, SNS 논란, 법정 공방 과정을 실시간으로 지켜봤다. 반면 동남아 팬들은 그 스캔들보다 먼저 접한 음악과 퍼포먼스의 인상이 더 강하게 각인돼 있다.
이는 '초두 효과(primacy effect)'와 연결된다. 처음 형성된 인상이 이후 정보 처리에 강력한 필터로 작동한다는 심리 법칙이다. 동남아 팬에게 그 연예인의 첫인상은 매력적인 K팝 스타였고, 스캔들은 그 이후에 들어온 정보다. 국내 팬에게는 정반대의 순서로 정보가 쌓인 경우도 많다.
물론 이 전략에는 한계가 있다. SNS와 유튜브 알고리즘이 국경을 무너뜨리면서, 동남아 팬들도 점점 더 빠르게 국내 논란 정보를 접하게 됐다. 동남아행이 완전한 해법이 될 수 없는 이유다. 2023년 디지털 미디어 연구소 '파퓰러소셜'의 분석에 따르면, 한국 연예인 관련 부정적 콘텐츠가 동남아 주요 SNS 계정에 도달하는 시간은 평균 18시간 이내로 나타났다.
결국 논란 연예인의 동남아행은 단순한 시장 개척이 아니다. 그 안에는 인간의 가장 근원적인 욕구인 '인정받고 싶은 마음'이 담겨 있다. 에이브러햄 매슬로의 욕구 위계에서 존중 욕구와 자아실현 욕구는 생존 욕구만큼이나 강렬하다. 국내 무대를 잃은 연예인에게 동남아의 환호는 그 욕구를 채울 수 있는 마지막 창구처럼 느껴지는 것이다.
심리치료 관점에서 보면 이 패턴은 '회피적 대처(avoidant coping)'에 가깝다. 문제의 핵심, 즉 국내 팬과 사회에 대한 진정한 책임과 화해를 미루고 새로운 환경에서 고통을 잠시 덮는 방식이다. 캘리포니아대 버클리캠퍼스 심리학과의 수잔 놀렌-혹스마 교수의 연구에 따르면, 회피적 대처는 단기적으로 심리적 안정을 주지만 장기적으로는 자기 통찰을 방해하고 재발 가능성을 높인다.
당신이 만약 어떤 관계나 공동체에서 상처를 받았을 때, 그 공간을 피해 전혀 새로운 곳에서 인정을 찾으려 했던 경험이 있다면, 논란 연예인들의 동남아행이 그리 낯설게 느껴지지 않을지도 모른다. 우리 모두 어느 정도는, 새로운 청중 앞에서 다시 시작하고 싶다는 욕망을 품고 살아가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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