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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심리학신문=편집부 ]
팀장에게 육아휴직을 꺼내려다 말을 삼킨 적 있는가. '찬성은 하는데, 나한테는 좀…'이라는 말을 들을까 봐 미리 포기한 적은 없었는가. 81%가 남성 육아휴직에 찬성한다는 조사 결과가 나왔다. 그런데 막상 직장에서 육아휴직을 쓰려면 여전히 눈치가 보인다고 한다.
2025년 한국여성정책연구원이 직장인 2400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조사에서 남성 육아휴직에 대한 찬성률은 81.3%에 달했다. 하지만 같은 조사에서 '동료가 육아휴직을 쓴다면 불편할 것'이라고 답한 비율도 42.7%로 나타났다. 찬성하면서도 불편하다는 이 모순, 대체 어디서 오는 걸까.
심리학에는 '태도-행동 불일치(attitude-behavior gap)'라는 개념이 있다. 어떤 가치에 동의한다고 해서 실제 행동이 그 가치를 따르지는 않는다는 것이다. 데이비드 레이켄 미국 미네소타대 심리학과 교수는 사람들이 사회적으로 바람직하다고 인식되는 방향으로 설문에 답하는 경향이 있으며, 이를 '사회적 바람직성 편향(social desirability bias)'이라 설명한다.
쉽게 말해, '남성 육아휴직에 찬성하느냐'는 질문에는 찬성하는 것이 옳다는 걸 알기 때문에 찬성이라고 답한다. 하지만 내 옆자리 동료가 6개월 휴직을 선언하는 순간, 뇌는 다른 신호를 보내기 시작한다. '내 업무가 늘겠구나', '팀 분위기가 어떻게 되려나', '나는 괜찮나'라는 계산이 즉각적으로 작동하는 것이다.
이 간극이 바로 남성 육아휴직의 실질적 사용을 가로막는 심리적 장벽이다. 제도는 있고, 찬성률도 높고, 정책 예산도 늘었지만 실제 사용률이 여전히 저조한 이유가 여기에 있다.
남성이 육아휴직 앞에서 느끼는 심리적 압박은 단순한 눈치 이상이다. 이는 두 가지 사회적 규범이 정면으로 충돌하는 지점이다. 제니퍼 보슨 미국 사우스플로리다대 심리학과 교수의 연구에 따르면, 남성은 '돌봄 역할을 수행할 때' 직업적 능력에 대한 신뢰가 낮아진다는 평가를 받는다고 밝혔다. 2022년 성인 남녀 1200명을 대상으로 한 이 연구에서, 육아휴직을 사용한 남성 관리자는 그렇지 않은 관리자보다 리더십 역량 점수가 평균 18% 낮게 평가됐다.
한국 사회에서 이 현상은 더욱 두드러진다. '남자는 일로 말해야 한다'는 성역할 규범이 여전히 직장 문화 곳곳에 남아 있고, 육아휴직을 쓴 남성은 승진에서 불이익을 받을 것이라는 불안이 실제보다 과장되게 인식된다. 이를 심리학에서는 '예상되는 낙인 효과(anticipated stigma)'라고 한다. 실제로 불이익이 발생하지 않더라도, 불이익이 생길 것이라는 예상 자체가 행동을 억제한다.
2024년 한국여성정책연구원이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남성 육아휴직 미사용자의 38.5%가 '직장 내 불이익이 걱정돼서'를 주된 이유로 꼽았다. 두 번째 이유는 '동료에게 미안해서'로 35.1%였다. 제도적 지원보다 심리적 환경이 더 큰 변수임을 보여주는 숫자다.
심리학자 솔로몬 애시가 1950년대에 진행한 동조 실험은 지금도 유효하다. 사람들은 명백히 틀린 답이라도 주변 다수가 그 답을 선택하면 자신의 판단을 바꾼다. 직장에서 남성 육아휴직도 마찬가지다. '우리 팀에서 아무도 안 썼으니까', '선배가 안 쓰는데 내가 먼저 쓰기가…'라는 생각이 결국 개인의 선택을 막는다.
이를 '다원적 무지(pluralistic ignorance)'라고 한다. 사실은 팀원 모두가 육아휴직을 쓰고 싶다고 생각하지만, 각자는 자신만 그렇게 생각한다고 착각하는 현상이다. 그 결과 모두가 원하지 않는 침묵이 유지된다. 김재휘 한국심리학회 사회심리분과 전 회장은 '조직 내에서 누군가 먼저 규범을 깨는 행동을 할 때 다른 구성원들도 따라가는 경향이 높다'며 '첫 번째 사람의 심리적 비용이 가장 크다'고 설명한다.
결국 남성 육아휴직 문제는 개인의 용기 부족이 아니다. 구조적으로 '첫 번째 사람'이 되기 어려운 심리적 환경이 만들어져 있는 것이다. 팀장이 먼저 쓰거나, 회사가 의무 사용을 권고하거나, 주변에 사용 사례가 쌓일수록 개인이 느끼는 심리적 문턱은 눈에 띄게 낮아진다는 연구 결과도 여럿 있다.
고무적인 신호도 있다. 고용노동부 통계에 따르면 2024년 남성 육아휴직 사용자는 전년 대비 22.3% 증가했다. 절대적 숫자는 아직 여성에 비해 크게 낮지만, 증가 속도는 분명히 빨라지고 있다. 사용자가 늘수록 다원적 무지는 서서히 무너진다. '나만 이상한 게 아니구나'라는 사회적 확인이 쌓이면, 개인이 느끼는 심리적 비용도 줄어든다.
전문가들은 제도 개선만큼이나 '이야기의 가시화'가 중요하다고 말한다. 육아휴직을 다녀온 남성 선배가 팀 회의에서 경험을 공유하거나, 회사가 사용 후기를 공개적으로 알리는 것만으로도 구성원의 심리적 장벽이 낮아진다는 연구 결과가 있다. 조직 문화는 거창한 선언보다 소소한 이야기들이 쌓여 바뀐다.
오늘 주변에 아이가 있는 남성 동료가 있다면, 육아 이야기를 먼저 꺼내보는 건 어떨까. '우리 팀에서 남성 육아휴직 쓰면 어떨 것 같아?'라는 가벼운 한 마디가, 누군가의 오래된 망설임을 조금 덜어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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