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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심리학신문=편집부 ]
SNS 팔로워 수가 곧 능력인 시대다. 연예계는 더 말할 것도 없다. 인맥이 넓을수록 다음 작품도, 다음 광고도 따라온다. 그런데 배우 차인표(60)는 최근 정반대의 선택을 했다. 그는 '조건이 바뀌면 멀어지는 인연에는 더 이상 에너지를 쓰지 않겠다'고 공개적으로 밝혔다.
수백 명과 연결되어 있으면서도 정작 힘든 날 전화 한 통 걸 사람이 없다는 느낌, 혹시 낯설지 않은가. 차인표의 고백은 단순한 연예인의 신변잡기가 아니다. 심리학이 오래전부터 경고해온 '관계의 질'에 대한 이야기다.
로빈 던바 영국 옥스퍼드대 실험심리학과 명예교수는 인간이 안정적으로 유지할 수 있는 진짜 친밀한 관계는 평균 5명에 불과하다고 밝혔다. 이른바 '던바의 수(Dunbar's Number)' 이론이다. 150명 정도를 아는 사람으로 구분할 수 있지만, 감정적 지지를 주고받는 핵심 관계는 그 중 극소수에 그친다.
그런데 현대인은 스마트폰 하나에 수백, 수천 명과 '연결'돼 있다. 문제는 뇌가 이 연결들을 진짜 친밀감으로 착각하도록 설계되어 있지 않다는 점이다. 많은 관계를 유지하려 에너지를 소모하다 보면, 정작 깊은 관계에 써야 할 감정 자원이 고갈된다. 심리학에서는 이를 '관계 과부하(relationship overload)'라고 부른다.
차인표가 선택한 것은 바로 이 과부하에서 벗어나는 일이었다. 그는 '조건이 사라지면 연락이 끊기는 사람들'에게 더 이상 마음을 쓰지 않겠다고 했다. 심리학적으로 보면 이는 매우 건강한 자기보호 행동이다.
심리학에서는 관계를 크게 두 유형으로 나눈다. 상호 이익을 기반으로 한 '교환적 관계(exchange relationship)'와 순수한 돌봄을 기반으로 한 '공동체적 관계(communal relationship)'다. 마가렛 클라크 미국 예일대 심리학과 교수는 1982년 연구에서, 교환적 관계에 지나치게 의존하는 사람일수록 외로움과 불안감이 높다는 것을 밝혔다.
연예계는 교환적 관계의 밀도가 유난히 높은 세계다. 인기 있을 때 몰려들었다가 하락기에 사라지는 인연을 반복적으로 경험하면 뇌의 사회적 보상 회로가 둔화된다. 신뢰를 쌓는 과정 자체를 위험하게 느끼게 되는 것이다. 차인표가 60세에 이르러 관계를 재편하겠다고 결심한 것은, 오랜 시간 이 패턴을 몸소 겪은 뒤 도달한 결론일 가능성이 높다.
실제로 미국 하버드대가 1938년부터 80년 넘게 진행한 '성인 발달 연구(Harvard Study of Adult Development)'는 노년의 건강과 행복을 가장 강하게 예측하는 변수가 관계의 수가 아닌 '관계의 질'임을 일관되게 보여준다. 로버트 월딩어 하버드 의과대학 정신의학과 교수는 이 연구를 이끌며 '외로운 관계는 없는 것보다 해롭다'고 강조했다.
로라 카스텐슨 미국 스탠퍼드대 심리학과 교수가 제안한 '사회정서적 선택이론(Socioemotional Selectivity Theory)'에 따르면, 사람은 나이가 들수록 자연스럽게 남은 시간을 의식하고 의미 있는 관계에 집중하려는 경향이 강해진다. 넓게 관계를 확장하려는 욕구는 줄고, 깊고 따뜻한 소수의 관계를 선호하게 된다는 것이다.
카스텐슨 교수 팀이 18세부터 94세까지 연령대를 망라해 진행한 연구에서, 나이 든 참가자들은 감정적으로 의미 있는 목표를 젊은 참가자들보다 51.8% 더 높게 평가했다. 차인표의 선택은 이 이론에 정확히 부합한다. 나이 듦이 관계를 줄이는 것이 아니라, 관계를 정화하는 과정임을 보여주는 셈이다.
흥미로운 점은 이 선택이 오히려 정신 건강에 긍정적이라는 사실이다. 2021년 독일 막스 플랑크 인간발달연구소가 성인 1,054명을 대상으로 진행한 연구에서, 관계의 수를 줄이고 질 높은 소수 관계에 집중한 사람들은 정서적 안정감과 삶의 만족도가 유의미하게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차인표의 이야기를 들으며 문득 자신의 연락처 목록을 떠올려 본 사람이 있을 것이다. 수백 명의 이름이 저장돼 있지만, 오늘 밤 힘들다고 솔직하게 말을 걸 수 있는 사람이 몇 명이나 되는지 세어보면 손가락을 다 채우지 못할 수도 있다. 그 숫자가 작다고 해서 당신의 관계가 실패한 것이 아니다. 오히려 그것이 인간 관계의 자연스러운 모습이다.
심리학자들은 '관계의 다이어트'를 두려워하지 말라고 말한다. 억지로 유지하는 관계는 에너지를 빼앗고, 그 자리에 진짜 관계가 들어설 공간을 막는다. 33.1%의 현대인이 의미 없는 관계를 유지하느라 정작 가까운 사람에게 소홀했던 경험이 있다고 응답했다는 엠브레인 트렌드모니터의 2024년 조사 결과는 이 문제가 차인표만의 고민이 아님을 말해준다.
오늘 잠깐 멈추고, 지금 당신에게 진짜 힘이 되는 사람이 누구인지 생각해보는 것은 어떨까. 그 사람에게 짧은 메시지 하나, '요즘 어때? 생각나서'라는 한 줄이면 충분하다. 관계의 깊이는 연락 빈도가 아니라 그 진심에서 만들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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