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부

[한국심리학신문=편집부 ]
지난 4월 대전 오월드에서 늑대 '늑구'가 탈출했다는 소식이 퍼지던 날, 인터넷에는 늑대가 학교 앞 교차로를 지나가는 사진이 순식간에 확산됐다. 많은 시민이 불안에 떨며 그 사진을 퍼 날랐다. 그런데 그 사진은 AI가 만들어낸 가짜였다.
당신도 그 사진을 봤다면 믿었을까? 아마 '나는 안 속는다'고 생각할 것이다. 하지만 심리학자들은 말한다. 우리 뇌는 구조적으로 AI가 만든 가짜 콘텐츠에 취약하도록 설계되어 있다고.
인간의 뇌는 정보를 두 가지 방식으로 처리한다. 심리학자 대니얼 카너먼 미국 프린스턴대 심리학과 명예교수가 제시한 '이중처리이론'에 따르면, 뇌는 빠르고 직관적인 '시스템 1'과 느리고 논리적인 '시스템 2'로 나뉜다. 문제는 우리가 정보를 접할 때 대부분 시스템 1이 먼저 작동한다는 것이다.
AI가 생성한 이미지나 텍스트는 바로 이 시스템 1의 허점을 파고든다. 사진이 실제처럼 보이고, 문장이 그럴듯하게 읽히면 뇌는 즉각 '진짜'라고 판정해버린다. 그 뒤 시스템 2가 '잠깐, 이거 맞아?'라고 나서기도 전에 우리는 이미 공유 버튼을 누르고 있는 것이다.
더 큰 문제는 감정이 개입될 때다. 늑대 탈출처럼 공포와 불안을 자극하는 정보는 시스템 1의 작동 속도를 더욱 빠르게 만든다. 위협적인 상황일수록 뇌는 천천히 생각하는 대신 빠르게 반응하도록 진화해 왔기 때문이다.
AI 가짜 콘텐츠가 특히 위험한 이유는 '처리 유창성(processing fluency)' 때문이다. 크리스티나 리거 독일 쾰른대 심리학과 교수의 연구에 따르면, 사람들은 정보를 읽거나 볼 때 처리가 매끄럽게 느껴질수록 그것을 더 진실하다고 판단한다. AI가 만든 콘텐츠는 문법이 완벽하고 이미지가 깔끔하다. 뇌 입장에서는 '이해하기 쉽다 = 믿을 만하다'라는 등식이 자동으로 성립하는 셈이다.
반복 노출도 문제다. 같은 가짜 정보를 여러 번 접하면 친숙함이 생기고, 뇌는 그 친숙함을 진실의 증거로 오해한다. 이를 심리학에서는 '환상적 진실 효과(illusory truth effect)'라고 부른다. 2022년 미국 인디애나대 심리학팀이 성인 1200명을 대상으로 진행한 실험에서 허위 정보를 세 번 이상 반복 노출한 집단은 처음 본 집단보다 해당 정보를 사실이라고 믿는 비율이 28.4% 더 높았다.
SNS 알고리즘은 이 메커니즘을 더욱 가속화한다. 한 번 클릭한 콘텐츠와 유사한 정보가 계속 노출되면서, 가짜 정보도 진짜처럼 익숙해지는 악순환이 반복된다.
혼자였다면 의심했을 정보도 '1만 명이 공유한 게시물'이라는 딱지가 붙으면 믿음이 생긴다. 심리학에서 말하는 '사회적 증거(social proof)' 효과다. 로버트 치알디니 미국 애리조나주립대 심리마케팅학과 명예교수는 사람들이 불확실한 상황에서 타인의 행동을 정답으로 삼는 경향이 있다고 설명한다. AI 슬롭이 빠르게 확산될수록 더 많은 사람이 그것을 진실로 받아들이는 구조가 만들어지는 것이다.
여기에 '확증 편향(confirmation bias)'까지 더해지면 상황은 걷잡을 수 없어진다. 내가 이미 믿고 싶은 내용과 일치하는 AI 생성 정보는 검증 없이 받아들이고, 반대되는 정보는 자연스럽게 걸러낸다. 특히 정치적 사안이나 사회 갈등 이슈에서 AI 가짜 콘텐츠가 맹렬하게 퍼지는 것도 이 때문이다.
결국 AI 슬롭 문제는 단순한 기술의 문제가 아니다. 인간 뇌의 기본 작동 방식이 가짜 정보에 유리한 토양을 만들고 있다는 것, 그게 핵심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속수무책으로 당할 수밖에 없을까. 다행히 심리학은 해법도 제시한다. 샘 윈버그 미국 스탠퍼드대 교육학과 교수 연구팀이 2023년 발표한 연구에 따르면, '측면 읽기(lateral reading)' 훈련을 받은 그룹은 그렇지 않은 그룹보다 가짜 정보를 판별하는 정확도가 51.8% 높았다. 측면 읽기란 하나의 정보를 깊이 파고드는 대신 다른 창을 열어 출처와 맥락을 먼저 확인하는 방식이다.
콘텐츠를 접할 때 딱 3초만 멈추는 습관도 효과적이다. 뇌의 시스템 2를 작동시키기 위한 최소한의 시간이 바로 그 3초다. 이미지가 자연스럽게 느껴질수록, 감정이 강하게 올라올수록 오히려 한 박자 쉬어야 한다는 뜻이기도 하다.
오늘 SNS를 스크롤하다 분노하거나 불안해지는 게시물을 만났다면, 공유 버튼 위에서 잠시 손을 멈춰보자. 그 3초가 당신의 뇌를 지키는 가장 작은 용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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