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부

[한국심리학신문=편집부 ]
응원석에서 함께 구호를 외칠 때, 혼자라면 절대 하지 않을 말을 하게 된 경험이 있는가. 지난 6월 29일 서울 목동야구장에서 열린 제81회 청룡기 전국고교야구선수권대회에서 배재고 야구부 학생들이 광주제일고를 향해 '스타벅스 가야지', '탱크데이' 같은 구호를 외쳐 논란이 됐다. 5·18 민주화운동을 희화화했다는 비판이 쏟아졌고, 해당 사건은 스포츠공정위원회까지 회부됐다.
많은 사람들이 공통적으로 묻는다. '저 아이들은 왜 그런 말을 했을까.' 나쁜 아이들이라서? 아니다. 심리학은 전혀 다른 답을 내놓는다.
심리학에는 '몰개성화(deindividuation)'라는 개념이 있다. 집단 속에 섞였을 때 개인의 정체성과 자기 감시 능력이 약해지면서 평소라면 하지 않을 행동을 서슴없이 하게 되는 현상이다. 필립 짐바르도 미국 스탠퍼드대 심리학과 명예교수는 1969년 실험을 통해 익명성이 보장된 집단에서 개인은 훨씬 공격적이고 충동적인 행동을 보인다는 사실을 입증했다.
응원석은 몰개성화가 일어나기 딱 좋은 환경이다. 같은 유니폼을 입고, 같은 구호를 외치고, 수십 명이 하나처럼 움직인다. 이 순간 '나'는 흐릿해지고 '우리'만 남는다. 개인이 책임을 느끼는 자아의 목소리가 집단의 흥분 속에 묻혀버리는 것이다.
실제로 런던정치경제대학교(LSE) 사회심리학과 클리퍼드 스토트 교수의 연구에 따르면, 집단 행동의 일탈은 구성원 개개인의 도덕성과 무관하게 집단 역학 구조 자체에서 비롯되는 경우가 전체의 70% 이상에 달한다고 밝혔다.
스포츠 응원에는 강력한 '내집단 편향(in-group bias)'이 작동한다. 내집단 편향이란 자신이 속한 집단을 과도하게 긍정적으로 평가하고, 상대 집단에 대해서는 적대감을 정당화하는 심리적 메커니즘이다. 앙리 타쥐펠 영국 브리스톨대 사회심리학과 교수가 정립한 사회 정체성 이론(Social Identity Theory)에 따르면, 사람은 집단에 소속되는 순간 자동으로 '우리 대 그들'의 구도를 형성한다.
이 구도가 강해질수록 상대방은 점점 사람이 아닌 '적'이나 '대상'으로 여겨지기 시작한다. 경쟁 스포츠 상황에서는 이 편향이 더욱 증폭된다. 이기고 싶다는 욕구가 상대를 향한 조롱을 '정당한 응원'으로 포장하게 만든다. 배재고 학생들이 5·18을 희화화한 구호를 외칠 때, 그 순간 그들 눈에는 역사적 비극의 무게보다 '상대를 흔들어야 한다'는 즉각적인 집단 목표가 훨씬 크게 보였을 것이다.
문제는 그 순간 아무도 멈추지 않았다는 점이다. 집단이 특정 행동을 시작하면 '다수가 하니까 괜찮다'는 다원적 무지(pluralistic ignorance)가 작동해 개인의 이의 제기를 억누른다. 혼자였다면 망설였을 학생도 옆 친구가 같이 외치는 순간 침묵하게 된다.
청소년기에 이런 집단 일탈이 더 자주 일어나는 데는 신경과학적인 이유가 있다. 사라 존슨 미국 코넬대 인간발달학과 교수 연구팀이 2022년 발표한 논문에 따르면, 충동 조절과 결과 예측을 담당하는 전두엽(prefrontal cortex)은 만 25세 전후까지 완전히 발달하지 않는다. 반면 보상과 흥분을 처리하는 변연계는 이미 성인 수준으로 활성화되어 있다.
쉽게 말해, 10대의 뇌는 흥분하는 기능은 완성됐지만 그 흥분에 브레이크를 거는 기능은 아직 공사 중인 셈이다. 집단 응원이라는 고흥분 상황에서 청소년은 성인보다 훨씬 빠르게 충동적 행동으로 이어질 수 있다. 이것이 이번 사건을 단순히 '못된 아이들의 일탈'로만 볼 수 없는 이유이기도 하다.
그렇다고 이 사실이 행동을 면죄해주지는 않는다. 다만 비판의 화살을 개인에게만 돌리기보다, 이러한 집단 역학이 작동하기 쉬운 환경을 어떻게 설계하고 예방할 것인지를 함께 고민해야 한다는 점을 시사한다.
배재고 측은 사과문을 통해 야구부 전원을 대상으로 스포츠맨십, 인권 감수성, 공동체 의식에 관한 특별 교육을 실시하겠다고 밝혔다. 의미 있는 조치다. 하지만 심리학적으로 보면, 사건 이후 개인의 도덕성을 가르치는 것만으로는 근본적인 해결이 어렵다. 집단 역학 자체를 이해하는 교육이 필요하다.
'내가 집단 속에 있을 때 나는 어떻게 달라지는가'를 직접 경험하고 성찰하게 하는 교육이 훨씬 효과적이다. 실제로 미국 캘리포니아대 버클리 캠퍼스(UC버클리) 교육심리학과 연구팀이 청소년 대상 집단 행동 인식 교육 프로그램을 진행한 결과, 집단 내 일탈 행동이 6개월 후 평균 42% 감소했다는 결과가 나오기도 했다.
오늘 당신이 응원석에 앉든, 단체 카톡방에 있든, 회사 회식 자리에 있든 한번쯤 스스로에게 물어보는 것은 어떨까. '지금 이 말, 나 혼자였어도 했을까?' 그 한 가지 질문이 집단 속에서도 나를 잃지 않게 지켜주는 가장 작지만 강력한 방패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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