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부

[한국심리학신문=편집부 ]
아무도 없는 방 안에서 목소리가 들린다. '너는 쓸모없어.' '죽어버려.' '불 질러.' 당사자에게 그 목소리는 완벽하게 실재한다. 귀를 막아도, 눈을 감아도 사라지지 않는다.
최근 서울 성북구의 한 다세대주택에서 방화 사건이 발생해 아버지가 숨지고 이웃 주민들이 위험에 처했다. 재판부는 범인이 '환청의 명령'을 따랐다고 밝혔다. 이 사건은 단순한 방화 범죄가 아니다. 환청이라는 증상이 어떻게 한 사람을 범죄자로, 또 피해자를 비극으로 몰아넣는지를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환청은 흔히 '헛소리를 듣는 것'이라고 가볍게 여겨진다. 하지만 신경과학적으로 환청은 실제 소리를 들을 때와 동일한 뇌 영역을 활성화시킨다. 필립 매과이어 영국 유니버시티 칼리지 런던 정신과학연구소 교수팀이 2013년 발표한 연구에 따르면, 환청을 경험하는 환자의 뇌에서 브로카 영역(언어 생성 담당)과 청각 피질이 동시에 활성화됐다. 뇌가 스스로 말을 만들어내면서 동시에 외부에서 들려오는 것처럼 처리하는 것이다.
당사자 입장에서 그 목소리는 전혀 '환각'이 아니다. 옆방에서 누군가 말을 거는 것만큼 선명하고, 권위 있고, 무섭다. 환청 명령이 '행동하라'고 지시할 때 당사자가 느끼는 압박감은 실제 협박을 받는 것과 심리적으로 동일한 수준이다.
특히 조현병 환자의 약 70%가 환청을 경험하며, 그중 명령 환청을 듣는 비율은 절반에 달한다는 연구 결과가 있다. 영국 왕립정신과학회 저널에 게재된 2019년 연구에서는 명령 환청을 경험한 환자의 약 53%가 그 명령에 실제로 복종한 경험이 있다고 보고했다.
왜 어떤 사람은 환청의 명령을 따르고 어떤 사람은 저항할까. 맥스웰 버드 영국 킹스칼리지런던 심리학과 교수팀의 연구는 그 핵심 변수가 '목소리와의 권력 관계'임을 밝혔다. 환청 속 목소리가 자신보다 강하고 통제력이 있다고 믿을수록, 그 명령을 따를 가능성이 높아진다는 것이다.
이 심리를 '목소리 권력 신념'이라고 부른다. 목소리가 자신을 처벌할 수 있다고 느끼거나, 복종하지 않으면 더 나쁜 일이 생긴다고 믿을 때 당사자는 저항하기 극도로 어려운 상태에 놓인다. 마치 협박자 앞에서 선택지가 없다고 느끼는 것과 같은 심리 구조다.
문제는 이런 환청이 가장 극심해지는 시점이 대개 고립과 방치가 심화된 상황이라는 점이다. 가족 갈등, 경제적 어려움, 약물 복용 중단이 겹치면서 증상이 폭발적으로 악화되는 경우가 많다. 이번 성북구 사건 역시 오랜 기간 치료가 단절된 상태였던 것으로 알려졌다.
정신질환자는 위험하다는 인식이 사회 전반에 깔려 있다. 하지만 데이터는 다른 이야기를 한다. 세계보건기구(WHO) 2019년 보고서에 따르면 정신질환을 가진 사람이 타인에게 폭력을 행사할 가능성은 일반인과 통계적으로 유의미한 차이가 없다. 오히려 정신질환자가 범죄의 피해자가 될 확률이 훨씬 높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건이 터질 때마다 '정신질환자 = 잠재적 범죄자'라는 낙인은 강화된다. 이 낙인은 정작 치료를 받아야 할 사람들이 병원 문을 두드리지 못하게 만드는 악순환을 낳는다. 이정하 서울대학교 사회복지학과 교수는 '낙인 효과가 치료 접근성을 떨어뜨리고, 결국 위기 상황을 더 키운다'고 지적한다.
정신건강 위기는 개인의 의지나 도덕성의 문제가 아니다. 뇌의 신경화학적 불균형, 단절된 치료 체계, 가족과 사회의 무관심이 함께 만들어낸 복합적 결과다. 사건이 터진 뒤에야 조명받는 구조 자체가 문제인 셈이다.
환청을 비롯한 정신증의 초기 신호는 생각보다 가까이 있다. 갑작스러운 사회적 철수, 혼잣말이 늘거나 이유 없이 웃고 우는 행동, 수면 패턴의 급격한 변화, 누군가 자신을 감시하거나 해치려 한다는 반복적 언급 등이 대표적이다. 이런 변화를 주변에서 알아채고 정신건강 위기상담 전화(1577-0199)나 지역 정신건강복지센터에 연결해 주는 것이 실제로 비극을 막는 첫걸음이 된다.
내 가족이, 혹은 옆집 이웃이 이상하다는 느낌이 든다면 무서워서 외면하기보다 한 발짝 가까이 다가가 보는 것은 어떨까. '괜찮아요?'라는 짧은 한마디가 누군가에게는 유일한 구명줄이 될 수 있다.
다른 곳에 퍼가실 때는 아래 고유 링크 주소를 출처로 사용해주세요.
http://www.psytimes.co.kr/news/view.php?idx=1268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