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르는 물가, 가라앉는 마음... 경제 불안이 무기력으로 바뀌는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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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르는 물가, 가라앉는 마음... 경제 불안이 무기력으로 바뀌는 이유 - 끝이 안 보이는 고물가 시대, 심리학이 말하는 무기력의 조건
  • 기사등록 2026-07-04 22:27: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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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심리학신문=임언지(alice6472@naver.com)]



편의점 커피 한 잔 값이 슬금슬금 오르고, 주유소 계기판 숫자가 부담스러워지는 요즘이다. 최근 중동발 긴장이 다시 불거지면서 국제유가가 배럴당 100달러 선에 다가섰고, 그 여파는 곧바로 국내 기름값과 생활물가, 대출이자로 옮겨붙었다. 한국개발연구원(KDI)이 집계한 경제심리지수 역시 88.4까지 떨어졌는데, 이는 정치적 불확실성과 물가 부담이 동시에 소비자의 마음을 짓누르고 있다는 신호로 해석된다.

여기서 주목할 부분은 숫자 자체가 아니다. 사람들을 지치게 만드는 건 '얼마나 올랐는가'보다 '내가 이걸 어떻게 할 수 없다는 사실'이다. 개인이 아무리 씀씀이를 줄이고 계획을 세워도, 유가나 환율처럼 자신의 힘이 미치지 않는 변수 앞에서 생활은 계속 흔들린다. 이런 경험이 한두 번이 아니라 몇 달, 몇 년째 반복될 때 사람 마음에는 단순한 짜증이나 걱정을 넘어선 무언가가 자리 잡는다.


"해봤자 소용없다"는 마음이 학습되는 과정


심리학에서는 이 상태를 학습된 무기력(learned helplessness)이라 부른다. 핵심은 간단하다. 벗어날 수 없는 불쾌한 상황을 반복적으로 겪은 유기체는, 나중에 실제로 상황을 바꿀 기회가 주어져도 시도 자체를 포기해버린다는 것이다. 처음에는 "이번 달만 아끼면 되겠지" 하다가도, 아껴봤자 물가와 이자가 그보다 더 빠르게 오르는 경험이 쌓이면 어느 순간 "어차피 내가 뭘 해도 똑같다"는 체념으로 굳어진다. 국내에서도 신기명(1990)이 개발한 학습된 무력감 진단척도가 오랫동안 여러 연구에 활용돼 왔는데, 이 척도가 측정하는 핵심 역시 '통제 불가능성에 대한 반복된 경험이 무기력이라는 안정된 태도로 굳어지는 정도'다.


생계를 책임진 사람일수록 크게 흔들린다


이 무기력이 누구에게나 같은 무게로 다가오는 건 아니다. 김재원, 이태진(2018)은 한국복지패널 자료를 다수준패널분석으로 살펴본 결과, 경제적 불안정이 한국 중년 남성의 우울에 유의미한 영향을 준다는 사실을 밝혔다. 흥미로운 지점은 소득이 얼마나 오르내렸는지보다, 필요한 만큼의 경제적 자원을 확보하지 못하는 상태 자체가 우울감과 더 강하게 연결됐다는 결과다. 즉 '돈이 부족해서'보다 '필요한 걸 스스로 마련할 수 없다는 무력감'이 더 아프게 작용한다는 뜻이다. 대체로 생계를 책임지는 위치에 놓인 사람일수록 이 통제 불가능성 앞에 더 쉽게 노출되며, 이런 부담은 흔히 잠 못 이루는 밤, 만성적인 피로감, 사소한 일에도 예민해지는 반응처럼 몸으로 먼저 신호를 보내는 경우가 많다.


왜 유독 요즘 더 크게 느껴질까


과거의 경제 위기가 특정 사건 하나로 폭발했다가 가라앉는 형태였다면, 지금의 고물가·고유가 국면은 좀 다르다. 중동 정세, 국제 금리, 환율이 서로 얽혀 원인을 하나로 짚기 어렵고, 언제 끝날지도 가늠하기 힘들다. 끝이 보이지 않는 불확실성은 그 자체로 무기력을 키우는 조건이 된다. 통제할 수 없는 상황이 얼마나 오래 지속될지 예측조차 안 될 때, 사람은 아예 예측하고 대비하려는 노력 자체를 줄이게 된다.


개인의 소진이 다시 경기 둔화로 돌아온다


이렇게 쌓인 무기력은 개인의 문제로만 끝나지 않는다. KDI는 위축된 경제 심리가 가계의 지갑을 닫게 만들고, 그 여파가 기업 매출 감소와 경기 둔화로 이어진다고 지적한다. 결국 개인의 심리적 소진과 거시경제의 흐름은 서로를 강화하는 순환 고리를 이룬다. 한 사람 한 사람의 무력감이 모여 경기 전체를 흔드는 요인이 될 수도 있다는 뜻이다.


바꿀 수 없는 것과 바꿀 수 있는 것을 가르는 일


그렇다면 무엇을 할 수 있을까. 완벽한 해법은 없지만, 통제할 수 없는 거시 변수(유가, 환율, 기준금리)와 개인이 실제로 조정 가능한 영역(지출 우선순위, 정보 탐색, 대출 상환 계획)을 의식적으로 구분하는 것부터가 시작이다. 바꿀 수 없는 것에 계속 에너지를 쏟으며 좌절하기보다, 좁더라도 실제로 손댈 수 있는 영역에서 작은 통제감을 회복하는 경험이 무기력이 굳어지는 속도를 늦춰준다. 아주 작은 단위의 성공 경험—이번 달 지출 계획을 하나라도 지켜냈다는 감각—조차 무력감의 악순환을 끊는 데 의미 있는 역할을 한다. 물가와 유가는 개인이 멈출 수 없지만, 그 앞에서 무너지지 않는 마음의 습관은 어느 정도 스스로 만들어갈 수 있다.


* 참고 문헌

1) 김재원, 이태진. (2018). 경제적 불안정과 중년 남성의 정신건강. 보건경제와 정책연구, 24(1), 142-166.

2) 신기명. (1990). 학습된 무력감 척도 개발 연구. [학위논문].

3) 한국개발연구원(KDI). (2026). 위축된 경제 심리의 경고음이 들리는가. KDI 언론기고. https://kdi.re.kr/share/pressContriView?bd_no=5136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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