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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심리학신문=편집부 ]
퇴근 후 지친 몸으로 소파에 앉아 무심코 책상 위 말랑이를 집어 든다. 꾹꾹 눌렀다 놓고, 또 눌렀다 놓는다. 별것도 아닌데 이상하게 손이 멈추질 않는다. '나 지금 이게 뭐 하는 건가' 싶으면서도, 계속하게 된다.
만두 모양, 치즈 모양, 햄버거 모양. 정교하게 만들어진 촉감 완구, 이른바 '말랑이'가 어른들 사이에서 불티나게 팔리고 있다. 아이들 장난감이라고 여겼던 물건이 어느새 직장인의 책상 위를 점령했다. 대체 왜일까?
손으로 무언가를 만지는 행위는 단순한 습관이 아니다. 트리샤 스트레스만 미국 마이애미대 심리학과 교수는 2023년 진행한 연구에서, 부드럽고 말랑한 질감의 물체를 반복적으로 만질 때 뇌의 편도체 활성화가 유의미하게 감소한다는 결과를 발표했다. 편도체는 불안과 공포 반응을 담당하는 뇌 부위다. 쉽게 말해, 말랑이를 꾹꾹 누르는 행위 자체가 뇌에게 '지금은 안전하다'는 신호를 보내는 셈이다.
촉각은 오감 중에서도 가장 원초적인 감각으로 꼽힌다. 인간은 태어나자마자 시각보다 촉각을 먼저 사용한다. 어머니 품에 안겨 피부로 느끼는 따뜻함이 아이에게 안정감을 주듯, 성인도 특정 질감을 반복적으로 만질 때 유사한 안도감을 경험한다. 심리학에서는 이를 '촉각적 자기조절(tactile self-regulation)'이라 부른다.
특히 요즘처럼 디지털 기기 중심의 생활이 일상화된 환경에서는 물리적 촉감의 결핍이 만성적인 긴장감으로 이어지기 쉽다. 스마트폰 화면을 하루 종일 두드리는 손은 '만진다'는 감각보다 '조작한다'는 기능만 수행하기 때문이다.
말랑이를 누르는 동작의 핵심은 '반복성'과 '예측 가능성'에 있다. 누르면 찌그러지고, 손을 떼면 돌아온다. 이 단순한 반복이 뇌에 강력한 진정 효과를 낸다. 마크 베르가스 미국 코넬대 인지신경과학과 교수 연구팀은 2021년 성인 240명을 대상으로 한 실험에서, 예측 가능한 반복 동작을 10분간 수행한 집단이 그렇지 않은 집단보다 주관적 스트레스 수치가 평균 34.7% 낮게 나타났다고 밝혔다. 반복 동작이 일종의 '미니 명상' 역할을 한다는 것이다.
이는 불안이 심할 때 머리카락을 만지거나 볼펜을 딸깍거리는 행동과 같은 맥락이다. 심리학에서는 이를 '자기 자극 행동(self-stimulatory behavior)'이라 하며, 과도하지 않은 범위에서는 오히려 인지 기능과 집중력을 높이는 효과가 있다고 알려져 있다. 말랑이는 그 욕구를 사회적으로 수용 가능한 방식으로 충족시켜 주는 도구인 셈이다.
실제로 말랑이는 미국과 유럽에서 먼저 'fidget toy(피젯 토이)'라는 이름으로 주의력결핍 과잉행동장애(ADHD) 아동의 집중력 보조 도구로 활용돼왔다. 국내에서는 성인 소비자들이 이를 자연스럽게 받아들이면서 일반 스트레스 해소 아이템으로 자리잡았다.
만두 모양, 사과 모양처럼 먹음직스러운 형태의 말랑이가 특히 인기를 끄는 데는 이유가 있다. 귀엽고 작고 무해하게 생긴 물체를 볼 때 뇌는 도파민을 분비한다. 일본 히로시마대 히로시 니타 심리학과 교수팀이 2012년 발표한 연구에 따르면, 귀여운 이미지나 물체를 접한 뒤 사람들의 집중력과 과제 수행 능력이 평균 44% 향상됐다. 귀여움은 단순한 감성 반응이 아니라 뇌의 각성 수준을 끌어올리는 자극이라는 것이다.
성인이 아이 같은 물건에 끌리는 현상을 두고 심리학에서는 '퇴행(regression)'이라고 부르기도 하지만, 모든 퇴행이 부정적인 것은 아니다. 정신분석학적 관점에서 일시적이고 자발적인 퇴행은 긴장을 풀고 창의성을 회복하는 데 도움을 주는 '건강한 퇴행'으로 분류된다. 심한 책임과 압박 속에 살아가는 현대인이 말랑이를 찾는 건 나약함이 아니라, 스스로를 돌보는 본능적 반응에 가깝다.
최근 국내에서는 이른바 '키덜트(kidult)' 문화가 빠르게 확산되고 있다. 시장조사 전문기업 마크로밀엠브레인 트렌드모니터의 2024년 조사에 따르면, 성인 10명 중 7명이 '어린 시절 즐기던 것을 다시 즐기고 싶다'고 응답했다. 말랑이 열풍은 그 흐름의 연장선에 있다.
말랑이에 손이 자꾸 간다면, 그건 몸이 먼저 보내는 신호일 수 있다. 뇌가 과부하 상태일 때 손은 자동으로 무언가를 찾는다. 꼭 말랑이가 아니어도 좋다. 따뜻한 머그컵을 두 손으로 감싸쥐거나, 점토를 조물조물 만지거나, 마른 콩을 손가락 사이로 흘리는 것도 같은 효과를 낸다. 중요한 것은 손끝에 온전히 감각을 집중하는 것이다.
바쁜 하루 속에서 단 5분이라도 손에 무언가를 쥐고 그 촉감에만 집중해보는 건 어떨까. 거창한 명상도, 값비싼 힐링 프로그램도 아니다. 책상 서랍 속 작은 말랑이 하나가, 오늘 당신의 편도체를 살며시 달래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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