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재] 다이아몬드 위의 심리학자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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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 다이아몬드 위의 심리학자들 - - 4회 - 심판: ABS 시대, ‘전달자’를 넘어 ‘공정함의 보루’로 남는 법
  • 기사등록 2026-07-06 10:46: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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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심리학신문=조찬희(byliner_cho@naver.com)]



야구는 흔히 기록의 스포츠로 불린다.
그러나 기록의 숫자만으로 설명되지 않는 순간이 있다.
흔들리는 투수의 손끝, 무너지는 자신감, 압박 속 선택의 순간들.

이 연재는 다이아몬드 위에서 싸우는 사람들의 마음에 대한 기록이다.


“스트라이크!”

 

주심의 외침이 다이아몬드에 울려 퍼진다. 판정의 근원지는 심판의 눈이 아닌 보이지 않는 알고리즘이다. 2024년 KBO리그가 ABS(Automatic Ball-Strike System)를 도입하며 야구장은 기술의 혁명을 맞이했지만, 포수 뒤 심판의 자리는 그 어느 때보다 위태롭고 고독해졌다. 스트라이크 존이라는 심판의 절대적 권한을 기계에 내어준 시대, 인간 심판은 이제 판관이 아닌 기계의 스피커로 전락할 위기에 처했다.

 

[다이아몬드 위의 심리학자들] 4회는 기계 판정에 허망해하는 그라운드 위에서 인간 심판이 자신의 확신을 어떻게 지켜내는지, 그들의 심리적 생존법을 분석한다.

 

비난의 유발자는 기계, 화풀이의 대상은 인간

 

ABS의 도입은 심판들을 스트라이크 판정이라는 거대한 인지적 부하로부터 해방시켰다. 0.4초 만에 공의 궤적을 쫓아야 했던 ‘수행 불안(Performance Anxiety)’은 줄었을지 모르나, 그 자리를 채운 것은 ‘무력감’이라는 새로운 스트레스다. 기계의 판정에 타자가 고개를 저으며 허망해할 때, 그 분노와 한숨를 정면으로 받아내야 하는 것은 알고리즘이 아닌 인간 심판이다.

 

선수가 시스템에 불만을 품고 심판을 불신 섞인 눈초리로 바라볼 때, 심판은 자신의 ‘자기 효능감(Self-Efficacy)’이 바닥을 치는 경험을 한다. 내가 본 것과 기계의 판정이 다를 때조차 기계의 목소리를 대변해야 하는 상황은 심판을 심리적 고립 상태로 몰아넣는다. 여기서 심판이 선택할 수 있는 유일한 마인드 컨트롤은 자신이 여전히 ‘이 경기를 지배하는 주체’임을 스스로에게, 그리고 선수단에게 증명하는 것뿐이다.

 

‘권위의 배수진’을 치다: 왜 아웃-세이프에 집착하는가

 

선수들이 ABS 판정에 분노하고 있을 때, 심판이 아웃-세이프 판정이나 경기 운영에 사력을 다하는 것은 결코 그들을 달래기 위한 서비스가 아니다. 그것은 인간 심판으로서의 존재 가치를 지키기 위한 권위 사수 전략이다. 판정권의 절반을 기계에 내어준 상황에서, 인간의 영역인 아웃-세이프 판정에서마저 오점을 남긴다면 심판은 다이아몬드 위에서 더 이상 설 자리가 없어진다.

 

스트라이크 판정에 소모되던 인지적 자원을 주루 방해나 체크 스윙 같은 복잡한 상황으로 온전히 전환하는 ‘주의 집중의 재배치’는, 로봇 심판 시대에 심판이 단순한 전달자로 전락하지 않기 위한 가장 지능적인 생존 방식이다. "판정은 기계가 할지언정, 경기의 마지막 질서를 세우고 최종 책임을 지는 판관은 여전히 나다"라는 사실을 현장에 각인시키려는 심리적 사투인 셈이다.

 

‘냉정한 예측 가능성’이 주는 마지막 심리적 안전감

 

선수들이 ABS에 허망함을 느낄 때, 인간 심판이 줄 수 있는 ‘심리적 안전감(Psychological Safety)’은 따뜻한 위로가 아닌 ‘냉정한 예측 가능성’에서 나온다. 기계 판정이라는 통제 불가능한 변수가 그라운드를 휘저을 때, 심판마저 감정적으로 동요하거나 인간적 영역에서 실수를 범한다면 경기는 걷잡을 수 없는 불신과 혼돈으로 빠져든다.

 

이때 심판이 인간의 영역에서만큼은 단 1%의 오차도 허용하지 않는 완벽함을 보여주는 것은, 선수들에게 "적어도 이 경기의 인간적 질서는 무너지지 않았다"는 최소한의 신뢰를 제공한다. 이것이 바로 선수가 다음 플레이에 집중할 수 있게 만드는 ‘정서적 방파제’ 역할이다. 심판은 스스로를 ‘절대 판관’이 아닌 ‘냉정한 경기 운영자’로 ‘인지적 재프레이밍(Reframing)’하며, 기계가 줄 수 없는 ‘공정함의 무게’를 온몸으로 지탱한다.

 

당신 인생의 ‘ABS’ 시대, 당신은 어떻게 존재감을 증명하는가

 

AI와 자동화 기술이 인간의 전문성을 대체하는 흐름은 야구장 밖 우리 삶에서도 거세게 몰아치고 있다. 많은 이들이 "나의 결정권이 사라지면 나의 가치도 사라지는 것 아닌가"라는 실존적인 불안을 느낀다. 하지만 야구장의 심판이 보여주듯, 기술은 판단의 도구일 뿐 삶의 운영 주체는 여전히 인간이다.

 

우리 삶에도 확고한 시스템과 원칙이 도입될 수 있다. 하지만 그 시스템이 내뱉는 결과를 해석하고, 그 과정에서 발생하는 인간적 갈등을 조율하며, 마지막까지 책임의 자리를 지키는 것은 오직 ‘나’라는 인간의 몫이다. 기술이 정확함을 줄 순 있어도, 그 경기에 품격을 부여하고 공정함의 서사를 완성하는 것은 인간만이 할 수 있는 영역이기 때문이다. 로봇 심판 시대에도 인간 심판의 콜이 여전히 묵직하게 들려야 하는 이유는, 그 짧은 외침 속에 시스템의 한계를 넘어서려는 인간의 처절한 고뇌와 확신이 담겨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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