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타벅스 가야지" 한 마디가 남긴 것…왜 우리는 혐오를 응원이라 부를까?
기사 메일전송
기사수정


[한국심리학신문=편집부 ]


"스타벅스 가야지" 한 마디가 남긴 것…왜 우리는 혐오를 응원이라 부를까?


운동장에서 터져 나온 함성이 응원인지 혐오인지, 그 경계는 생각보다 훨씬 흐릿하다. 지난 6월 29일 서울 목동야구장. 배재고 야구선수 일부가 광주제일고 선수들을 향해 '가야지 가야지 스타벅스 가야지'를 외쳤다. 광주·전남 지역 혐오 표현을 야구 응원가에 녹여낸 이 행동은 순식간에 전국적 논란으로 번졌다.


대한야구소프트볼협회 스포츠공정위원회는 배재고에 출전정지 6개월이라는 중징계를 내렸다. 그런데 우리는 여기서 한 가지 불편한 질문을 마주하게 된다. 어떻게 고등학생들은 지역 혐오를 아무렇지 않게 '응원'의 형식으로 소비할 수 있었을까?



집단 속에서 개인은 사라진다: 몰개성화가 만들어낸 함성


심리학에서는 이 현상을 '몰개성화(deindividuation)'로 설명한다. 필립 짐바르도 미국 스탠퍼드대 심리학과 명예교수가 제시한 이 개념은, 집단 속에 속한 개인이 자기 정체성과 도덕적 책임감을 잃고 평소라면 절대 하지 않을 행동을 서슴없이 저지르게 되는 현상을 말한다. 운동장의 함성, 단체 유니폼, 응원 구호라는 요소가 결합되면 개인의 판단력은 현저히 약해진다.


2007년 영국 레스터대 심리학과 스티븐 라이처 교수 연구팀이 성인 240명을 대상으로 진행한 실험에서, 집단 속 개인은 혼자일 때보다 타인을 향한 공격적 언행에 53.7% 더 쉽게 가담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응원단이라는 집단 정체성이 형성되는 순간, '나'는 사라지고 '우리'만 남는다. 그리고 그 '우리'는 종종 도덕의 경계를 넘어선다.


배재고 선수들 역시 개인으로서는 '이 발언이 혐오다'라고 인식했을 가능성이 높다. 하지만 집단의 분위기와 응원이라는 틀 속에서, 그 판단은 한순간 증발해버렸다. 이것이 몰개성화의 무서움이다.



내집단 편애와 외집단 비하: '우리 편'이라는 착각의 심리학


스포츠 경기장에서 지역 혐오가 반복적으로 등장하는 데는 또 다른 심리적 기제가 작동한다. 헨리 타지펠 영국 브리스톨대 사회심리학과 교수가 제시한 '사회 정체성 이론(Social Identity Theory)'에 따르면, 인간은 자신이 속한 집단을 높이 평가하고 외집단을 낮게 보려는 경향을 본능적으로 지닌다. 스포츠는 이 심리를 가장 극적으로 자극하는 무대다.


내집단과 외집단의 경계가 선명해질수록, 상대를 향한 조롱과 비하는 '승리를 위한 당연한 행동'으로 합리화된다. 지역이라는 요소가 더해지면 그 경계는 더욱 공고해진다. 2021년 한국스포츠정책과학원이 고교 운동부 학생 820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조사에서 응답자의 41.2%가 경기 중 상대 팀을 향한 조롱·비하 발언을 '응원의 일부'라고 답했다. 혐오가 문화로 정착되어 가고 있다는 신호다.


문제는 이 과정이 의식적이지 않다는 점이다. 당사자들은 혐오를 저지르면서도 '그냥 이기고 싶어서', '다 같이 하니까'라고 인식한다. 혐오가 습관이 되고 문화가 되는 순간, 개인의 죄책감은 사라진다.



도덕적 이탈: 나쁜 짓을 나쁘지 않다고 느끼게 만드는 심리


앨버트 반두라 미국 스탠퍼드대 심리학과 명예교수는 '도덕적 이탈(Moral Disengagement)' 개념을 통해 이 현상을 더 정밀하게 설명한다. 사람들은 자신의 행동이 비윤리적임을 알면서도 다양한 심리적 기제를 동원해 죄책감을 무력화한다. 가장 흔한 방식은 '유리한 비교'와 '책임 분산'이다. '다른 팀도 이런 응원 하는데 뭐가 문제야', '나 혼자 한 게 아니잖아'라는 생각이 바로 그것이다.


반두라 교수팀이 2002년 발표한 연구에서, 스포츠 환경 내 도덕적 이탈 점수가 높은 청소년일수록 상대 선수를 향한 언어적 공격 행동이 67% 이상 높게 나타났다. 혐오 발언이 단순한 충동이 아니라, 오랜 시간에 걸쳐 형성된 심리적 패턴의 결과라는 뜻이다. 배재고 사태를 단순히 '몇몇 학생의 일탈'로 보면 안 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더 깊이 들여다보면, 이런 도덕적 이탈은 어른들의 문화를 고스란히 흡수한 결과이기도 하다. 지역 혐오 발언이 정치판과 온라인에서 일상적으로 소비되는 사회에서, 아이들은 그것이 잘못된 것임을 배울 기회를 박탈당한 채 자란다.



처벌이 아닌 교육이 필요한 이유: 뇌는 아직 공사 중이다


청소년의 뇌는 성인과 다르게 작동한다. 미국 국립정신건강연구소(NIMH)에 따르면, 충동 조절과 도덕적 판단을 담당하는 전두엽은 25세 전후까지 완전히 성숙하지 않는다. 집단 압력과 흥분 상태에서 스스로 멈추는 능력이 아직 형성 중인 나이라는 뜻이다. 중징계는 분명히 필요하지만, 그것이 교육의 끝이 되어서는 안 된다.


데이비드 글래스 미국 조지타운대 심리학과 교수는 청소년의 반사회적 행동에 대해 '수치(shame)가 아닌 죄책감(guilt)을 느끼게 하는 교육이 행동 변화에 훨씬 효과적'이라고 강조한다. 수치는 자신을 나쁜 사람으로 여기게 해 방어적으로 만들지만, 죄책감은 '내 행동이 잘못됐다'는 인식으로 변화를 이끈다. 출전정지라는 처벌이 수치로 끝나지 않도록, 교육적 개입이 반드시 뒤따라야 한다.


그라운드 위의 아이들에게 필요한 것은 혐오가 왜 혐오인지 스스로 깨닫게 하는 경험이다. 배재고 논란을 바라보며 우리가 진짜 물어야 할 질문은 이것이다. 우리는 아이들에게 이기는 법만 가르치고, 함께 지는 법은 가르치지 않은 건 아닐까. 오늘 당장 주변의 아이에게, 혹은 나 자신에게 물어보는 건 어떨까. '나는 응원과 혐오의 경계를 알고 있는가'라고.


TAG
0
기사수정

다른 곳에 퍼가실 때는 아래 고유 링크 주소를 출처로 사용해주세요.

http://www.psytimes.co.kr/news/view.php?idx=12723
  • 기사등록 2026-07-04 07:12:16
기자프로필
프로필이미지
나도 한마디
※ 로그인 후 의견을 등록하시면, 자신의 의견을 관리하실 수 있습니다. 0/1000
모바일 버전 바로가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