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도 지역 비하 당했다"… 배재고 사태가 드러낸 혐오의 심리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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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심리학신문=편집부 ]


"나도 지역 비하 당했다"… 배재고 사태가 드러낸 혐오의 심리학


택시를 탔을 뿐인데, 사투리 한 마디에 분위기가 달라진 경험이 있는가. 어느 지역 출신이라는 것만으로 눈빛이 바뀌고, 말끝이 달라지는 순간을 겪어본 이라면 이번 배재고 야구부 사태가 남 일 같지 않았을 것이다.


배재고 야구부가 경기 중 5·18 민주화운동을 희화화하는 응원 구호를 외친 사건이 알려지면서, SNS에는 '나도 비슷한 지역 비하를 겪었다'는 경험담이 쏟아졌다. 연합뉴스 보도에 따르면, 이 사태를 계기로 택시, 직장, 인터넷 댓글에서 반복되어 온 지역 차별의 민낯이 수면 위로 떠올랐다.



내집단 편애의 함정: '우리'를 위해 '그들'을 깎아내리는 뇌


왜 사람들은 특정 지역을 조롱하는가. 심리학에서는 이를 '내집단 편애(in-group favoritism)'와 '외집단 비하(out-group derogation)'로 설명한다. 앙리 타즈펠 영국 브리스톨대 심리학과 교수가 1970년대에 제안한 사회정체성 이론에 따르면, 인간은 자신이 속한 집단의 가치를 높이기 위해 외부 집단을 의도적으로 낮게 평가하려는 본능적 경향을 가지고 있다.


문제는 이 편향이 아주 사소한 계기만으로도 작동한다는 점이다. 타즈펠 교수의 실험에서는 참가자들을 임의로 두 집단으로 나누기만 해도 자기 집단에 유리한 자원 배분을 선택했다. 출신 지역처럼 오랜 시간 쌓인 고정관념이 있을 경우, 그 편향은 훨씬 강하게 작동한다.


여기에 '집단 동조 효과'가 더해지면 상황은 걷잡을 수 없어진다. 응원석에서 함께 구호를 외치는 행위는 개인의 도덕적 판단력을 흐리고, '모두 하니까 괜찮다'는 착각을 강화시킨다. 배재고 사태에서 학생들이 개별적으로는 하지 않았을 행동을 집단 속에서 했을 가능성이 높은 이유다.



혐오는 왜 놀이가 되는가: 청소년기 뇌와 또래 압력의 위험한 조합


특히 이번 사태에서 주목할 점은 피해자가 청소년이라는 것이다. 임희진 한국청소년정책연구원 연구원은 "청소년 사이에서 혐오 표현이 놀이 문화처럼 스며들고 있다"고 경고한다. 실제로 연합뉴스 보도에 따르면 지역 비하 발언을 포함한 혐오 밈이 이미 청소년들 사이에서 광범위하게 유통되고 있다.


청소년기는 전두엽 발달이 완성되지 않아 충동 억제와 장기적 결과 예측 능력이 성인보다 현저히 낮다. 이 시기에는 또래 집단의 승인이 뇌의 보상 회로를 강하게 자극하기 때문에, 친구들이 웃으면 그 행동이 옳은지 그른지보다 '함께 웃는 것' 자체가 더 강력한 동기가 된다. 나쁜 의도 없이도 혐오 표현이 '재미있는 것'으로 학습되는 메커니즘이다.


2023년 한국청소년정책연구원이 청소년 2400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에서는 응답자의 41.3%가 온라인에서 혐오 표현을 접한 경험이 있다고 답했다. 그중 29.8%는 자신도 사용한 적이 있다고 인정했다. 혐오 표현이 이미 일상 언어로 깊숙이 들어온 현실을 보여주는 수치다.



도덕적 배제: '그들은 우리의 공감 범위 밖'이라는 착각


지역 혐오가 오래 지속되는 데는 '도덕적 배제(moral exclusion)'라는 심리 기제도 작용한다. 미국 캘리포니아대 사회심리학과 수전 옵타우 교수가 제안한 이 개념은, 특정 집단을 도덕적 고려의 대상에서 제외시키면 그 집단에 대한 불공정한 대우를 정당화하기 쉬워진다는 이론이다. 특정 지역 사람들을 오랫동안 특정 방식으로 묘사하는 고정관념이 반복되면, 그 집단에 대한 공감 능력 자체가 둔화될 수 있다.


이번 사태가 단순한 '해프닝'으로 넘어가지 말아야 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한 번 웃음거리로 소비된 혐오는 다음번에는 더 낮은 심리적 저항으로 반복된다. 심리학에서 이를 '도덕적 탈감각화(moral desensitization)'라고 부른다. 반복 노출될수록 혐오 표현을 혐오로 인식하는 민감도가 떨어지는 것이다.



어른들이 먼저 해야 할 것: 공감의 언어를 가르치는 법


전문가들은 처벌보다 교육이 먼저라고 입을 모은다. 미국 하버드대 교육대학원의 리처드 웨이스보드 교수 연구팀이 2023년 청소년 5000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연구에서는, 공감 능력 훈련 프로그램에 6주 참여한 청소년 집단이 혐오 표현 사용 빈도를 38.2% 줄였다. 공감은 타고나는 것이 아니라 연습으로 키울 수 있다는 증거다.


어른들이 먼저 일상 속 작은 혐오 표현에 반응하는 것도 중요하다. '별것 아닌 농담'으로 흘려듣는 어른의 침묵이 청소년에게는 암묵적 허용으로 읽힌다. 오늘 가족과 식탁에서, 혹은 직장 동료와의 대화에서 무심코 등장하는 지역 농담에 부드럽게 '그 말이 누군가에게 상처가 될 수 있다'고 한 마디 꺼내보는 것은 어떨까. 혐오의 연쇄를 끊는 건 거창한 선언이 아니라, 바로 그 작은 한 마디에서 시작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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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사등록 2026-07-05 07:01: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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