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부

[한국심리학신문=편집부 ]
하지도 않은 일을 '내가 했다'고 말하는 사람이 있다. 상식적으로는 이해가 안 된다. 억울하면 끝까지 싸우면 되는 것 아닌가. 그런데 전 세계 형사 사법 시스템에서 무죄가 밝혀진 사건의 상당수에는 놀라운 공통점이 있다. 피의자 스스로 '나는 범인이다'라고 자백했다는 것이다.
미국의 무죄 입증 단체 이노센스 프로젝트(Innocence Project)가 분석한 자료에 따르면, DNA 증거로 무죄가 확인된 사건 중 약 29%에서 피의자의 거짓 자백이 존재했다. 거짓 자백은 영화 속 이야기가 아니다. 그것은 지금 이 순간에도 누군가의 삶을 뒤바꾸고 있는 심리학적 현실이다.
왜 사람은 하지도 않은 일을 했다고 말할까. 그 답은 의지의 문제가 아니라 뇌의 작동 방식에 있다. 소울 카신 미국 존 제이 형사사법대학 심리학과 교수는 30년 넘게 거짓 자백을 연구해온 권위자다. 그는 수면 박탈, 밀폐 공간, 장시간 심문이라는 세 가지 조건이 겹치면 뇌의 전전두엽 기능이 급격히 저하된다고 설명한다. 이성적 판단과 자기 통제를 담당하는 바로 그 영역이다.
수면이 24시간 이상 박탈되면 인지 기능은 혈중 알코올 농도 0.1% 상태와 비슷해진다는 연구 결과도 있다. 판단력이 흐려진 뇌는 '지금 당장 이 상황을 끝내자'는 즉각적인 욕구에 쉽게 지배된다. 그 즉각적 해결책이 바로 자백이다. 미래의 법적 결과보다 지금 눈앞의 고통에서 벗어나는 것이 훨씬 더 크게 느껴지는 것이다.
여기에 심문자가 '증거가 다 있다'거나 '자백하면 가볍게 처리된다'는 식의 허위 정보를 제공하면 상황은 더욱 악화된다. 뇌는 이미 저하된 상태에서 거짓 정보를 사실로 받아들이기 시작하고, 일부 피의자는 실제로 자신이 그 일을 했을 수도 있다는 왜곡된 기억을 형성하기도 한다.
거짓 자백에는 크게 두 가지 유형이 있다. 첫 번째는 자발적 거짓 자백이다. 주목받고 싶은 심리, 처벌받아야 한다는 죄책감, 혹은 진짜 범인을 보호하려는 이타심에서 비롯된다. 실제로 1932년 미국을 떠들썩하게 만든 린드버그 아기 납치 사건에는 무려 200명이 넘는 사람들이 자신이 범인이라고 자백했다. 이들 대부분은 심리적으로 불안정하거나 관심 욕구가 강한 상태였다.
두 번째는 내면화된 거짓 자백으로, 훨씬 더 충격적이다. 지속적인 압박과 암시 속에서 피의자가 자신이 실제로 그 일을 했다고 스스로 믿어버리는 상태다. 엘리자베스 로프터스 캘리포니아대 어바인캠퍼스 심리학과 교수가 오랜 기억 연구에서 밝혀낸 것처럼, 인간의 기억은 녹화된 영상이 아니다. 기억은 외부 정보와 압력에 의해 끊임없이 재구성된다. 반복적으로 '당신이 했다'는 말을 들으면 뇌는 그 빈틈을 채우기 위해 존재하지 않는 기억을 만들어낸다.
특히 취약한 대상이 있다. 18세 미만 청소년, 지적 장애가 있는 사람, 그리고 경계성 성격 특성을 가진 사람들은 거짓 자백에 훨씬 높은 위험성을 보인다. 이노센스 프로젝트의 분석에서도 거짓 자백을 한 사람의 약 32%가 18세 미만이었다.
한국도 이 문제에서 자유롭지 않다. 한국형사·법무정책연구원이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국내 형사 사건에서 자백이 유죄 판결의 핵심 증거로 활용되는 비율은 다른 물적 증거에 비해 여전히 높은 편이다. 2019년 공개된 약촌오거리 살인사건처럼, 십수 년이 지나 무죄가 밝혀졌지만 그 기간 동안 당사자는 자신의 자백으로 인해 억울한 세월을 보내야 했다.
김경일 아주대 심리학과 교수는 '자백은 증거의 왕이 아니라 심리적 함정의 산물일 수 있다'고 경고한다. 심문 환경의 압박, 심문자의 태도, 그리고 피의자의 심리적 취약성이 결합될 때 거짓 자백이 탄생한다는 것이다. 수사 과정에 심리 전문가가 참여해 피의자의 상태를 평가하는 시스템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나오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이 모든 연구가 우리에게 전하는 메시지는 하나다. 극도의 스트레스 상황에서는 아무리 강한 사람도 이성적 판단이 흔들릴 수 있다는 것이다. 그것은 의지의 문제가 아니라 뇌의 생물학적 반응이다. 카신 교수는 심문 상황에서 가장 중요한 자기 보호 수단으로 '변호인 선임권의 즉각적 행사'를 꼽는다. 법적 조력을 받는 것이 죄가 있다는 신호가 아니라, 왜곡된 심리 압박으로부터 자신을 지키는 가장 이성적인 행동이라는 것이다.
일상에서도 이 원리는 적용된다. 직장에서 부당한 압박을 받을 때, 관계 속에서 하지 않은 일에 대한 책임을 강요받을 때 우리는 종종 '그냥 인정하고 끝내자'는 유혹을 느낀다. 그 순간 떠올려보자. 지금 내가 느끼는 압박이 나의 판단을 흐리고 있는 것은 아닌지. 잠깐 자리를 벗어나 숨을 고르고, 신뢰하는 사람에게 먼저 이야기를 꺼내는 것, 그것이 자신을 지키는 첫걸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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