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부

[한국심리학신문=편집부 ]
경찰서 취조실. 형광등 불빛 아래 몇 시간째 반복되는 질문. 피곤하고 두렵고 무섭다. 아무것도 한 게 없는데, 어느 순간 '그냥 했다고 하면 이 상황이 끝날 텐데'라는 생각이 스친다. 황당하게 들릴 수 있지만, 실제로 억울하게 누명을 쓴 사람들의 상당수가 바로 이 순간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도 않은 죄를 자백하는 사람들이 있다. '강요받지 않고서야 그런 일이 가능하겠어?'라고 생각하기 쉽지만, 심리학은 전혀 다른 이야기를 한다. 무고한 사람이 스스로 자백하게 만드는 메커니즘이 우리 뇌 속에 이미 내장돼 있다는 것이다.
심리학자들은 허위 자백을 크게 세 유형으로 분류한다. 자발적 허위 자백, 순응적 허위 자백, 그리고 내면화된 허위 자백이다. 가장 위험한 것은 세 번째다. 내면화된 허위 자백은 본인 스스로 '내가 정말 했을 수도 있다'고 믿어버리는 상태다. 단순한 거짓말이 아니라 기억 자체가 왜곡되는 것이다.
사울 카신 미국 뉴욕 존제이 형사사법대학 심리학과 교수는 30년 넘게 허위 자백을 연구해 온 세계적 권위자다. 그는 2012년 논문에서 미국 내 DNA 증거로 무죄가 확인된 사건의 약 25%에서 피의자의 자백이 포함돼 있었다는 분석 결과를 발표했다. 억울하게 유죄를 선고받은 사람 네 명 중 한 명은 스스로 '했다'고 말했다는 뜻이다.
카신 교수는 이를 두고 '자백은 증거의 왕이기도 하지만, 가장 위험한 증거이기도 하다'고 경고했다. 배심원이나 판사조차 자백 앞에서는 다른 증거를 의심하는 경향을 보이기 때문이다.
장시간 수면 박탈, 반복 질문, 심리적 압박은 뇌의 전두엽 기능을 급격히 떨어뜨린다. 전두엽은 논리적 판단과 자기 통제를 담당하는 영역이다. 엘리자베스 로프터스 미국 어바인 캘리포니아대학교 심리학과 명예교수가 수십 년에 걸쳐 밝혀낸 '기억의 오류 가능성' 연구에 따르면, 사람의 기억은 VHS 테이프처럼 녹화된 사실이 아니라 매번 재구성되는 불완전한 서사다.
로프터스 교수 연구팀이 성인 참가자 70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실험에서는, 존재하지 않는 과거 사건에 대한 암시적 질문을 반복하자 참가자의 약 37%가 해당 사건이 실제로 있었다고 '기억'했다. 단순히 '그랬을 수도 있지 않냐'는 식의 반복 유도가 기억을 새로 만들어낼 수 있다는 것이다.
극도로 스트레스를 받는 상황에서는 이 현상이 더 심해진다. 코르티솔 수치가 치솟으면 해마의 기억 저장 기능이 흔들리고, 뇌는 '지금 이 고통을 끝내는 것'을 최우선으로 삼는다. 자백이라는 선택지가 탈출구처럼 보이기 시작하는 것이다.
1960년대 스탠리 밀그램 예일대학교 사회심리학자의 복종 실험은 충격적인 결과를 남겼다. 권위 있는 실험자의 지시에 따라 실험 참가자의 65%가 상대방에게 위험한 수준의 전기 충격을 가하는 버튼을 눌렀다. 이 실험이 증명한 것은 단 하나다. 권위와 압박 앞에서 인간은 자신의 도덕적 판단마저 내려놓는다는 사실이다.
취조실은 바로 이 원리가 극대화된 공간이다. 수갑, 제복, 폐쇄된 공간, 전문 훈련을 받은 수사관. 이 모든 요소가 심리적 권력의 불균형을 만들어낸다. 여기에 '사실대로 말하면 선처해주겠다'는 식의 유인책이 더해지면, 인간의 순응 본능은 생존 본능처럼 작동하기 시작한다.
리처드 리오 미국 샌프란시스코대학교 법학과 교수는 허위 자백을 유발하는 취조 기법에 관한 2009년 연구에서 '심리적으로 강압적인 취조 환경에서 무고한 사람은 오히려 유죄인 사람보다 더 쉽게 무너질 수 있다'고 밝혔다. 실제로 유죄인 사람은 자백의 결과를 알기 때문에 버티지만, 억울한 사람은 '사실이 밝혀지면 당연히 풀려나겠지'라는 믿음 하나로 일단 굴복하는 경향이 있다는 것이다.
허위 자백은 취조실 밖에도 존재한다. '네가 그랬잖아'라고 몰아붙이는 부모 앞에서 아이가 고개를 끄덕이는 것, 상사에게 반복적으로 지적을 받다가 '제가 잘못했습니다'를 반사적으로 내뱉는 것, 오래 다툰 연인에게 지쳐서 '그래, 내 잘못이야'라고 말하는 것. 규모와 맥락은 다르지만, 심리학적 메커니즘은 동일하다.
이를 심리학에서는 '인지 부하 이론'으로 설명한다. 뇌가 처리해야 할 정보가 너무 많아지면, 가장 에너지가 덜 드는 선택을 하려는 경향이 생긴다. 갈등과 압박이 이어지는 상황에서 '그냥 인정하는 것'이 에너지 소비가 가장 적은 선택처럼 느껴지는 것이다.
나는 억울한 상황에서 얼마나 버틸 수 있을까. 심리학은 이것이 개인의 의지력이나 성격의 문제가 아니라고 말한다. 충분한 시간과 압박이 주어지면 누구든 무너질 수 있다. 오히려 자신이 절대 그럴 리 없다고 확신하는 사람이 더 취약할 수 있다. 그 확신이 방어막을 허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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