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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심리학신문=편집부 ]
배재고 야구부 선수들이 5·18 민주화운동을 조롱하는 응원 구호를 외쳤다는 소식이 전해졌을 때, 많은 사람이 먼저 이런 질문을 던졌다. '저 아이들은 대체 어떤 아이들이기에?' 그런데 심리학은 전혀 다른 방향을 가리킨다. '그 아이들이 어떤 상황에 있었는가?'라고.
결국 배재고 야구부 선수 36명 전원이 광주를 직접 찾아 공식 사과를 했고, 5·18 민주묘지를 함께 참배했다. 사태는 일단 봉합됐지만, 이번 사건이 남긴 심리학적 질문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왜 멀쩡한 개인들이 모이면 예상치 못한 집단 행동이 나타나는 걸까.
심리학에는 '몰개성화(deindividuation)'라는 개념이 있다. 집단 안에 속하게 되면 개인의 자아 인식이 흐려지고, 평소라면 하지 않을 행동을 거리낌 없이 하게 되는 현상이다. 1969년 필립 짐바르도 미국 스탠퍼드대 심리학과 교수가 체계화한 이 이론은 오늘날에도 집단 행동을 이해하는 핵심 틀로 쓰인다.
짐바르도 교수는 실험에서 익명성이 보장될수록, 그리고 집단의 흥분 상태가 높아질수록 개인의 도덕적 자기 검열이 현저히 낮아진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경기장이라는 공간, 팀원들로 가득 찬 덕아웃, 경쟁의 열기는 몰개성화가 일어나기에 거의 완벽한 조건이다.
즉 문제의 구호를 외친 선수들 중 상당수는 그 구호의 역사적 의미를 깊이 생각할 겨를도 없이, 그저 '팀이 함께 외치는 것'에 동참했을 가능성이 높다. 이것이 그들의 행동을 정당화하지는 않지만, 왜 그런 일이 벌어졌는지를 이해하는 데는 중요한 실마리가 된다.
솔로몬 애시 미국 스와스모어대 심리학과 교수는 1951년 고전적인 동조 실험을 통해 충격적인 사실을 밝혀냈다. 명백히 틀린 답이라도 다수가 그 답을 선택하면 실험 참가자의 75%가 최소 한 번은 틀린 답에 동조했다. 혼자였다면 절대 하지 않을 선택을 집단 압력 앞에서는 하고 만 것이다.
운동부는 이 동조 압력이 유독 강하게 작동하는 환경이다. 선후배 위계, 팀 단결이라는 가치, 경기 승패를 함께 나누는 운명 공동체적 분위기가 맞물린다. 2019년 미국 심리학회(APA) 저널에 실린 연구에 따르면, 팀 스포츠 참가 청소년은 개인 종목 선수보다 집단 압력에 동조하는 비율이 평균 38% 높게 나타났다.
설령 구호가 불편하게 느껴졌더라도, 혼자 '안 하겠다'고 나서는 일은 십 대 선수에게는 사실상 팀 전체와 맞서는 것과 같다. 심리학자들은 이를 '규범적 사회 영향(normative social influence)'이라고 부른다. 소속감을 잃지 않으려는 욕구가 옳고 그름의 판단보다 앞서는 순간이다.
청소년기의 뇌는 성인의 뇌와 구조적으로 다르게 작동한다. 로런스 스타인버그 미국 템플대 심리학과 교수의 연구에 따르면, 전두엽 피질, 즉 충동 억제와 결과 예측을 담당하는 부위는 25세 전후까지도 완전히 발달하지 않는다. 반면 또래 집단의 시선에 반응하는 보상 회로는 청소년기에 오히려 과도하게 활성화된다.
스타인버그 교수팀이 2007년 진행한 연구에서 청소년들은 또래가 지켜볼 때 위험한 행동을 선택하는 비율이 혼자일 때보다 2배 이상 높아졌다. 성인에게서는 이런 차이가 거의 나타나지 않았다. 경기장 한복판, 팀원들이 일제히 구호를 외치는 그 순간, 십 대의 뇌는 '이게 맞는가'보다 '나도 같이해야 한다'는 신호를 훨씬 강하게 받는다.
이것이 이번 사건을 바라볼 때 '나쁜 아이들'이라는 프레임보다 '어떤 환경이 이런 일을 가능하게 했는가'라는 질문이 더 중요한 이유다. 선수들 개인의 도덕성 문제로만 환원하면, 다음에 또 같은 일이 반복될 수밖에 없다.
이번 사건을 두고 야구계에서는 '주동자 이외의 선수들에게까지 6개월 출전 정지를 내리는 것은 과도하다'는 목소리가 나왔다. 심리학적 관점에서 보면 이 논쟁은 단순히 징계 수위의 문제가 아니다. 집단 처벌은 단기적으로 억지력을 갖지만, 실제 인식 변화를 만들어 내지는 못한다는 연구 결과가 있다.
앨버트 반두라 미국 스탠퍼드대 심리학과 교수가 오랜 연구를 통해 정립한 사회학습이론에 따르면, 행동의 변화는 처벌보다 올바른 모델링과 반성적 경험을 통해 더 효과적으로 이뤄진다. 배재고 선수들이 광주를 직접 찾아 5·18 민주묘지를 참배한 것은 그래서 의미 있다. 직접적인 경험과 공감이 뇌에 새로운 회로를 만들기 때문이다.
스포츠 현장의 인성 교육이 단순한 규칙 암기가 아니라, 집단 압력 속에서도 개인이 '아니'라고 말할 수 있는 심리적 근육을 키우는 방향으로 나아가야 하는 이유가 여기 있다. 우리 아이가 팀의 열기 속에서도 스스로 생각할 수 있기를 바란다면, 오늘 저녁 아이에게 한 번쯤 물어봐도 좋겠다. '네가 불편함을 느꼈을 때, 주변에 말할 수 있을 것 같아?'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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