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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심리학신문=편집부 ]
회식 자리에서 '한 잔만 하고 가자'는 말이 점점 설득력을 잃어가고 있다. 예전엔 술을 안 마시면 분위기를 망치는 사람 취급을 받았는데, 요즘은 오히려 '나 요즘 안 마셔'라는 말이 자연스럽게 통한다. 도대체 무슨 일이 생긴 걸까.
한국 사회에서 음주는 오랫동안 친목과 신뢰의 상징이었다. 술잔을 함께 기울이는 행위 자체가 관계를 맺는 하나의 의식이었다. 그런데 지금, 그 공식이 빠르게 흔들리고 있다.
2024년 보건복지부 국민건강영양조사에 따르면 국내 월간 음주율은 2019년 60.8%에서 2023년 54.1%로 약 6.7%포인트 줄었다. 특히 20~30대 젊은 층의 음주율 감소폭이 두드러졌다. 술자리를 피하는 것이 단순한 건강 관리가 아니라 하나의 문화적 선택이 된 것이다.
심리학적으로 이 변화는 '위험 인식 전환'으로 설명할 수 있다. 클로드 스틸 미국 스탠퍼드대 심리학과 명예교수가 제안한 자기 확인 이론에 따르면, 사람들은 자신의 핵심 가치가 위협받을 때 그 위협을 최소화하는 방향으로 행동을 바꾼다. '나는 건강하고 자기 관리를 잘하는 사람'이라는 자아상이 강해질수록, 술은 그 자아를 위협하는 요소가 된다.
과거에는 음주가 사회적 연결의 수단이었다면, 지금은 오히려 자기 정체성을 훼손하는 신호로 읽히기 시작한 셈이다.
음주운전 사고, 취중 성범죄, 공인의 만취 스캔들이 반복되면서 대중의 음주 관용 심리도 눈에 띄게 달라졌다. 한국형사·법무정책연구원이 2023년 성인 2000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조사에서 응답자의 71.3%가 '음주 상태라도 범죄 행위에 대한 처벌을 감경해서는 안 된다'고 답했다. 10년 전 같은 조사에서 이 비율은 48.6%에 불과했다.
심리학에서는 이를 '귀인 양식의 변화'로 분석한다. 귀인 이론은 사람이 어떤 행동의 원인을 어디에 두느냐를 다루는 개념이다. 과거에는 '술이 시켰다'는 외부 귀인이 용인됐지만, 지금은 '술을 마신 선택도 그 사람의 책임'이라는 내부 귀인이 사회 전반에 자리를 잡고 있다. 음주 자체가 더 이상 면죄부로 기능하지 않는다는 인식이 확산된 것이다.
이 변화는 연예계를 비롯한 공인 사회에서 가장 극적으로 드러난다. 취중 실수를 '인간적인 면모'로 봐주던 시선은 빠르게 사라지고 있다.
최근 MZ세대 사이에서 확산 중인 '소버 큐리어스(Sober Curious)' 트렌드는 단순한 금주가 아니다. '굳이 마실 필요가 없으면 안 마신다'는 태도다. 영국 행동경제학자 루비 워링턴이 2018년 동명의 저서에서 처음 제안한 이 개념은, 음주를 선택지의 하나로 두되 적극적으로 거부할 권리를 주장한다.
이 현상의 심리적 핵심은 '자율성 욕구'다. 에드워드 데시 미국 로체스터대 심리학과 명예교수의 자기결정이론에 따르면, 인간은 외부 압력에 의한 행동보다 스스로 선택한 행동에서 훨씬 큰 만족감과 자존감을 얻는다. '안 마셔도 되는 자리'가 아니라 '안 마시기로 선택한 자리'라는 인식의 전환이 이 세대에게 큰 호응을 얻고 있는 이유다.
술을 마시지 않는 것이 더 이상 소극적인 거절이 아니라, 자신을 표현하는 방식이 된 것이다.
그렇다면 술이 빠진 자리에서 관계는 어떻게 맺어질까. 로빈 던바 영국 옥스퍼드대 실험심리학과 명예교수의 연구에 따르면 인간의 사회적 유대는 공유된 경험, 웃음, 신체적 동조 행동을 통해 강화된다. 술이 이 세 가지를 한꺼번에 촉진했던 것은 사실이지만, 그것이 반드시 술이어야 할 이유는 없다.
실제로 술 없이 진행하는 러닝 크루, 독서 모임, 새벽 등산 모임이 20~30대 사이에서 폭발적으로 늘고 있다. 이러한 활동들도 공유된 경험과 신체 동조 행동을 만들어낸다는 점에서 뇌과학적으로 술자리와 유사한 유대감 형성 효과를 낸다. 2022년 영국 옥스퍼드 사회진화연구소가 성인 400명을 대상으로 진행한 실험에서, 함께 운동한 그룹과 함께 음주한 그룹의 친밀감 상승 폭은 통계적으로 유의미한 차이가 없었다.
연결의 도구가 술에서 다른 무언가로 이동하고 있을 뿐, 사람과 사람 사이의 온기에 대한 필요는 사라지지 않은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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