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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심리학신문=편집부 ]
눈은 감겼는데 머릿속은 쉬지 않는다. 내일 회의 생각, 오늘 했던 말 한마디, 아직 처리 못 한 업무들이 어둠 속에서도 줄지어 밀려온다. '이러다 또 새벽 두 시가 되겠구나' 싶은 그 불안한 감각, 당신만 겪는 일이 아니다.
최근 출간된 '우리는 왜 잠을 자야 할까'를 비롯해 수면에 관한 관심이 뜨겁다. 2026년 현재 '슬립맥싱(Sleep Maxing)'이라는 신조어가 생길 만큼 잠을 최적화하려는 열풍이 거세지만, 역설적으로 제대로 잠들지 못하는 사람들도 함께 늘고 있다. 왜 우리는 자려고 할수록 더 깨어 있는 걸까.
수면 문제의 핵심은 생각보다 훨씬 심리적이다. 앨리슨 하비 미국 버클리대 심리학과 교수는 2002년부터 이어온 연구에서 불면증 환자의 80% 이상이 '수면에 대한 과도한 걱정과 부정적 인지'를 공통적으로 가지고 있다는 사실을 밝혔다. 잠이 안 오는 것 자체보다, '또 못 자면 어떡하지'라는 생각이 각성 상태를 더욱 강화한다는 것이다.
이를 심리학에서는 '수면 관련 인지적 과각성(Cognitive Hyperarousal)'이라고 부른다. 쉽게 말하면, 잠에 대해 지나치게 신경 쓸수록 뇌가 오히려 경계 모드로 전환된다는 의미다. 운전을 배울 때 핸들을 너무 꽉 쥐면 오히려 흔들리는 것처럼, 잠을 억지로 잡으려 할수록 잠은 달아나 버린다.
국민건강보험공단이 2024년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국내 수면장애 진료 인원은 109만 명을 넘어섰다. 불과 5년 전에 비해 31.2% 증가한 수치다. 수면 문제가 더 이상 일부의 문제가 아닌, 사회 전체의 문제가 된 셈이다.
매슈 워커 영국 UC버클리 신경과학·심리학과 교수는 저서와 수십 편의 논문을 통해 수면 부족이 뇌에 미치는 파괴적 영향을 경고해왔다. 그의 연구에 따르면 하루 6시간 미만으로 잠을 자는 사람은 충분히 수면을 취한 사람보다 집중력이 최대 40% 감소하고, 부정적 감정에 훨씬 민감하게 반응한다. 무엇보다 무서운 것은, 당사자가 자신의 인지 저하를 스스로 잘 인식하지 못한다는 사실이다.
수면 부족은 감정 조절 능력도 무너뜨린다. 워커 교수팀이 성인 200명을 대상으로 진행한 실험에서, 수면이 부족한 집단은 그렇지 않은 집단에 비해 분노와 불안 반응이 평균 60% 더 강하게 나타났다. 잠을 못 잔 다음 날 별것 아닌 일에 짜증이 폭발하거나, 사소한 실수에 지나치게 자책하게 되는 건 의지 문제가 아니라 뇌의 문제인 셈이다.
더 나아가 장기적인 수면 부족은 우울증, 불안장애와 강하게 연결된다. 한국수면학회가 2023년 성인 1200명을 대상으로 진행한 조사에서 수면의 질이 낮다고 응답한 그룹의 51.8%가 중등도 이상의 우울 증상을 함께 보고했다. 잠이 마음을 지키는 가장 기본적인 방어선이라는 말이 과장이 아니다.
최근 SNS를 중심으로 확산된 슬립맥싱 트렌드는 수면 추적 앱, 고가의 매트리스, 멜라토닌 보충제, 수면 루틴 공유 등 잠을 철저히 관리하고 최적화하려는 흐름이다. 언뜻 좋아 보이지만, 심리학자들은 이 열풍에 숨은 역설을 경고한다.
클린턴 로텐버그 미국 노스웨스턴대 심리학과 교수는 수면에 지나치게 집착하는 현상을 '직소모니아(Orthosomnia)'라고 명명했다. 완벽한 수면을 강박적으로 추구하다 오히려 불안이 높아지고 수면의 질이 떨어지는 현상이다. 수면 데이터를 매일 확인하고 수치가 나쁘게 나오면 다음 날 더 긴장하는 악순환이 대표적인 예다.
결국 잠을 잘 자려면 역설적이게도 잠에 대한 집착을 내려놓는 것이 먼저다. 수면 전문 심리치료에서 가장 효과적인 방법으로 꼽히는 인지행동치료(CBT-I)도 수면에 대한 잘못된 믿음과 불안을 교정하는 데 초점을 맞춘다. '오늘 좀 못 자도 괜찮다'는 심리적 허용이, 아이러니하게도 더 깊은 잠으로 가는 문을 열어준다.
수면 전문가들이 한목소리로 권하는 방법은 거창하지 않다. 잠들기 전 30분, 스마트폰을 내려놓고 오늘 하루 잘 마무리된 일 세 가지를 떠올려 보는 것만으로도 각성된 뇌를 진정시키는 데 도움이 된다. 하버드 의대 수면의학과 연구팀은 2022년 발표한 논문에서 잠들기 전 긍정적 회상을 습관화한 집단이 그렇지 않은 집단보다 수면 잠복 시간이 평균 14분 단축됐다고 밝혔다.
또 침대는 오직 수면을 위한 공간으로만 사용하는 것이 중요하다. 침대에서 유튜브를 보고, 문자를 보내고, 업무 메일을 확인하면 뇌는 침대를 각성의 공간으로 학습한다. 작은 습관 하나가 수년간 쌓인 불면의 패턴을 바꾸는 출발점이 될 수 있다.
오늘 밤, 완벽하게 자려는 마음을 내려놓는 것부터 시작해보는 건 어떨까. '꼭 여덟 시간을 채워야 해'가 아니라 '그냥 편하게 누워 있자'는 생각 하나가, 당신의 뇌에게 가장 필요한 허락일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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