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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심리학신문=편집부 ]
억울한 일을 당했는데 아무 말도 못 했던 순간이 있는가. '말해봤자 더 힘들어질 것 같아서', '누가 믿어줄까 싶어서', 그렇게 꾹 누르고 살았던 기억 말이다. 그 침묵이 때로는 10년이 되기도 한다.
가수 지나가 최근 개인 SNS에 긴 글을 올려 약 10년 전 논란을 정면으로 돌파하겠다고 선언했다. '오랫동안 침묵했다'는 그 첫 마디는, 단순한 연예계 해명 글이 아니다. 심리학자들은 이 장면에서 '침묵의 심리학'을 읽는다.
억울한 상황에서도 말을 못 하는 건 의지가 약해서가 아니다. 미국 하버드대 심리학과 다이애나 타이스 교수 연구팀이 2019년 성인 874명을 대상으로 진행한 연구에 따르면, 사회적 위협을 감지했을 때 인간의 뇌 편도체는 즉각 '동결 반응(freeze response)'을 활성화한다. 이는 도망치거나 싸우는 반응과 똑같이 자동으로 작동하는 생존 본능이다.
특히 자신의 말이 믿어지지 않을 것이라는 예측이 앞설 때, 뇌는 발화 자체를 차단한다. 심리학에서는 이를 '선제적 침묵(anticipatory silence)'이라 부른다. 말하기 전에 이미 '어차피 소용없다'는 결론에 도달하는 것이다.
지나처럼 공인의 경우, 이 침묵은 더 복잡해진다. 개인의 감정 문제가 여론이라는 거대한 변수와 충돌하기 때문이다. 침묵하면 '인정한 것'처럼 보이고, 말을 꺼내면 '자기 홍보'라는 비판이 돌아온다. 이 이중 구속(double bind) 상황이 침묵을 10년씩 길게 만든다.
억울한 감정을 오래 억누르면 심리적으로 어떤 일이 생길까. 제임스 페네베이커 미국 텍사스대 심리학과 교수는 1980년대부터 40년간 '비밀 억압'이 심리·신체 건강에 미치는 영향을 연구해왔다. 그의 연구에 따르면, 정서적으로 중요한 사건을 억압한 사람들은 그렇지 않은 사람에 비해 면역 기능이 평균 23% 저하됐고, 우울·불안 증상을 보일 확률이 2.1배 높았다.
더 흥미로운 것은 '억압의 역설'이다. 생각하지 않으려 애쓸수록 오히려 그 기억은 더 자주 떠오른다. 하버드대 대니얼 웨그너 교수가 밝혀낸 '사고 억제 반동 효과(rebound effect)'다. '흰 곰을 떠올리지 마세요'라고 하면 흰 곰 생각이 끊이지 않듯, 억울한 기억을 억누를수록 그 기억은 더 선명하게 살아남는다.
결국 10년의 침묵은 10년의 소진이기도 하다. 지나의 '오랫동안 침묵했다'는 고백은, 그 긴 시간 동안 얼마나 많은 심리적 에너지를 소모했는지를 짐작하게 한다.
오랜 침묵 끝에 말을 꺼내게 만드는 심리적 계기는 무엇일까. 캐나다 브리티시컬럼비아대 심리학과 마크 볼드윈 교수는 침묵이 깨지는 시점에 대해 세 가지 조건을 제시한다. 첫째, '이제 잃을 게 없다'는 인식의 전환. 둘째, 침묵이 자신을 더 깊이 가두고 있다는 자각. 셋째, 충분한 심리적 안전감의 확보다.
지나가 SNS에 '안 도망'이라고 쓴 것은 단순한 결기가 아니다. 심리학적으로는 '자기 개방(self-disclosure)'의 결단이다. 자기 개방은 두려움을 수반하지만, 동시에 억압으로부터의 해방이기도 하다. 페네베이커 교수의 연구에 따르면, 억압했던 감정을 글로 표현한 참가자들은 표현 직후 일시적인 고통을 느꼈지만, 4주 뒤에는 심리적 안녕감이 유의미하게 상승했다.
우리가 지나의 선언을 단순한 '연예인 해명'으로만 볼 수 없는 이유가 여기 있다. 그것은 오래 눌렸던 사람이 스스로 숨통을 트는 과정이기 때문이다.
지나의 이야기는 연예계만의 것이 아니다. 직장에서 부당한 대우를 받고도 말 못 한 사람, 관계에서 상처를 입고도 웃어넘겼던 사람, 억울한 소문에 해명하고 싶었지만 '그냥 지나가겠지' 했던 사람. 우리 모두에게 크고 작은 침묵의 서랍이 하나씩 있다.
심리학은 침묵을 무조건 나쁘다고 하지 않는다. 때로 침묵은 현명한 전략이다. 그러나 그 침묵이 나를 갉아먹고 있다면, 작은 자기 개방부터 시작해볼 것을 권한다. 믿을 수 있는 한 사람에게, 혹은 아무도 보지 않는 노트에, 그 억울했던 순간을 꺼내 써보는 것이다. 말하지 못했던 그 말을 이제 꺼내도 된다. 10년이 지났더라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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