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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심리학신문=편집부 ]
직장에 다니고, 월급을 받고, 혼자서도 충분히 살아갈 수 있는 나이인데 엄마 목소리가 듣고 싶어 하루에 두세 번씩 전화를 건다. 밥을 먹다가도, 퇴근길 지하철 안에서도, 무언가 힘들 때마다 제일 먼저 떠오르는 사람은 엄마다.
최근 대학생과 직장인 사이에서 '어미새 현상'이 새로운 문화 트렌드로 주목받고 있다. 취업을 해도 부모 곁에 머물고, 독립보다 함께함을 선택하는 Z세대의 이 행동이 과연 심리적 퇴행일까, 아니면 시대가 만들어낸 새로운 생존 방식일까.
어미새 현상은 성인이 된 자녀가 경제적 능력이 있음에도 부모와의 정서적·물리적 유대를 적극적으로 유지하거나 강화하려는 경향을 말한다. 단순히 집값이 비싸서 독립을 못 하는 현실적 문제와는 결이 다르다. 이들은 '굳이' 부모 곁을 택하고, 그 선택에 당당하다.
미국 퓨리서치센터가 2024년 발표한 보고서에 따르면, 18~29세 성인 중 부모와 함께 거주하는 비율이 2000년 대비 약 15%포인트 증가했으며, 이 중 절반 이상이 경제적 이유가 아닌 '정서적 편안함'을 주된 이유로 꼽았다. 국내에서도 통계청 2025년 사회조사 결과, 20대 미혼 자녀의 61.3%가 부모와 동거 중이며 이들 중 42.7%는 '함께 있는 게 좋아서'라고 답했다.
심리학에서는 이를 '안전 기지 이론(Secure Base Theory)'으로 설명한다. 존 볼비 영국 정신분석학자가 제안한 이 이론은 인간이 정서적 안전 기지를 확보할 때 비로소 세상을 향해 더 적극적으로 나아간다고 본다. 즉, 부모 곁에 머무는 것이 세상으로 뻗어 나가기 위한 발판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Z세대가 부모와의 밀착을 강화하는 배경에는 사회적 불안이 자리한다. 취업난, 주거 불안, 기후위기, 팬데믹 후유증까지 겹치면서 이들이 체감하는 미래의 불확실성은 그 어느 세대보다 크다. 제프리 아넷 클라크대학교 심리학과 교수는 18~29세를 '성인 진입기(Emerging Adulthood)'로 명명하며, 이 시기 젊은이들이 정체성 탐색과 불안 관리를 동시에 수행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불안이 높아질수록 인간은 애착 대상에게 더 가까이 다가가려 한다. 이는 진화적으로 프로그램된 반응이다. 로저 굴드 캘리포니아대학교 정신의학과 교수의 연구에 따르면, 외부 스트레스 수준이 높은 환경에서 자란 성인일수록 원가족과의 정서적 유대를 더 강하게 유지하려는 경향이 58.2%가량 높게 나타났다. Z세대가 유독 '엄마 친구'가 되고 싶어 하는 것은 이상한 일이 아니다.
여기에 SNS의 영향도 무시할 수 없다. '엄마랑 쇼핑', '아빠랑 여행' 콘텐츠가 수백만 조회수를 기록하고, 부모와의 일상을 공유하는 것이 오히려 '멋진 일'로 받아들여지는 분위기가 형성됐다. 부모와 친한 것이 부끄러운 일이 아니라 자랑할 만한 일이 된 시대다.
물론 모든 어미새 현상이 심리적으로 건강한 것은 아니다. 심리학에서는 '건강한 의존'과 '공생적 의존(Symbiotic Dependency)'을 구분한다. 건강한 의존은 부모와의 유대를 유지하면서도 스스로 결정하고 책임지는 능력이 함께 성장하는 상태다. 반면 공생적 의존은 부모 없이는 일상적 결정조차 어렵고, 분리 불안이 지나치게 높은 상태를 말한다.
캐런 블레어 퀸즈대학교 심리학과 조교수가 2023년 성인 자녀 820명을 대상으로 진행한 연구에서, 부모와 정서적 유대가 높은 집단은 자존감 지수와 대인관계 만족도가 각각 31.4%, 27.9% 높게 나타났다. 반면 부모의 의사결정에 지나치게 의존하는 집단은 오히려 자기효능감이 낮고 번아웃 위험이 2.1배 높았다. 핵심은 '거리'가 아니라 '자율성'이었다.
즉, 어미새 현상 자체가 문제가 아니다. 부모와 가까이 지내면서도 자신의 삶을 스스로 꾸려 나가고 있다면, 그것은 퇴행이 아니라 성숙한 형태의 애착이다. 문제는 부모와 물리적으로 붙어 있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선택하고 책임지는 능력이 자라고 있느냐다.
어미새 현상은 자녀만의 이야기가 아니다. 성인 자녀가 정서적으로 기댈 수 있는 부모가 되는 것도 쉽지 않은 일이다. 수잔 포워드 미국 임상심리학자는 저서 '독이 되는 부모'에서, 자녀가 성인이 된 후에도 통제하거나 죄책감을 심어 곁에 붙잡아 두려는 부모의 행동이 오히려 자녀의 자존감을 해친다고 경고했다. 진정한 어미새는 새끼가 날 수 있게 날갯짓을 가르치는 존재다.
Z세대의 어미새 현상을 마냥 걱정하거나 비판하기 전에, 우리가 먼저 물어야 할 것이 있다. '이 시대가 젊은이들에게 얼마나 안전한가?' 라는 질문이다. 집 한 채 마련하기도, 안정적인 직장 잡기도 쉽지 않은 현실에서 부모 곁에서 잠시 숨을 고르는 것은 나약함이 아니라 지혜일 수 있다.
오늘 엄마나 아빠에게 전화 한 통 해보는 건 어떨까. '밥은 먹었어?'라는 말 한마디가 주는 안정감이, 어쩌면 내일 세상으로 다시 나아갈 힘이 될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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