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경민
[한국심리학신문=이경민 ]

*사진 출처: 인스타그램
‘좋아한다’라는 말은 어렵다
너무나 근사한 영화를 관람했거나 가슴 벅찬 여행지에 발을 디뎠을 때, 마음속에서 솟구치는 거대한 감정을 마주하곤 한다. 그러나 이 강렬한 감각을 타인에게 설명하려 할 때 우리는 종종 언어의 한계를 느낀다. ‘좋다’라는 평범한 단어는 그 순간의 감동을 담아내기에 지나치게 상투적으로 다가오기 때문이다. 하늘을 나는 기분이라거나 마음이 몽글몽글해진다는 비유를 빌려와도, 어딘지 모르게 내 진심을 온전히 표현하지 못했다는 아쉬움이 남는다.
영화 인사이드 아웃을 살펴보면 인간이 느끼는 수많은 감정 중 흔히 긍정적이라고 분류되는 성분은 기쁨이 하나뿐이다. 소심이, 까칠이, 버럭이, 슬픔이 등 나머지 캐릭터들은 모두 부정적인 감정을 대변한다. 이는 심리학에서 말하는 부정 편향과도 깊은 관련이 있다. 인류는 진화 과정에서 생존을 위협하는 위험 요소를 촘촘하고 민감하게 알아차려야 했기에 부정적인 감정을 세분화하는 방향으로 발달했다. 반면 생존에 당장 위협이 되지 않는 긍정적인 감정은 그만큼 미세하게 분리하여 인지할 필요성이 적었던 셈이다.
애초에 왜 좋아하는 감정을 언어화해야 할까?
그렇다면 근본적인 의문이 생긴다. 생존의 도구로서 민감하게 다듬어지지 않은 이 긍정의 감정을 왜 우리는 굳이 서툴게나마 언어로 표현하려 애써야 할까. 인류가 21세기를 살아가는 지금도 긍정 감정을 굳이 쪼개어 인지할 생물학적 필요성은 크지 않아 보인다. ‘언어라는 틀에 가두지 않고, 그저 마음속에 찾아온 강렬한 순간의 희열을 그대로 간직하는 것만으로는 부족한 것일까’라는 생각이 들 법도 하다.
좋아하는 감정은 쉽게 흔들린다
그러나 영원할 것 같은 긍정의 마음은 생각보다 쉽게 형태를 잃는다. 영원히 변치 않고 무언가를 아끼겠다고 결심하더라도 현실에서는 이를 유지하기가 무척 어렵다. 예컨대 열렬히 동경하던 아티스트가 대중의 기대와 전혀 다른 모습을 보여줄 때 그간의 애정에는 균열이 가기 마련이다. 굳이 커다란 사건이나 실망스러운 계기가 없더라도 흐르는 시간 속에서 좋아하는 마음이 자연스럽게 바래지기도 한다. 어린 시절 그토록 열광했던 만화 캐릭터가 성인이 된 후에는 시큰둥하게 느껴지거나, 사춘기 시절 밤새워 듣던 음악이 사회인이 된 뒤에는 멀게만 느껴지는 경험은 누구에게나 흔하다.
이처럼 언젠가 찾아올지 모르는 감정의 퇴색을 대비하기 위해서라도 좋아하는 마음을 언어의 형태로 차곡차곡 기록해 둘 필요가 있다. 그렇게 축적된 문장들은 먼 훗날 스스로의 가치관과 인생의 궤적을 증명하는 소중한 자산이 된다. 마음에 머물던 감각을 선명한 언어로 보존해 둔 이들은 자신이 지닌 애정의 깊이를 의심하지 않는다. 그리고 자신의 좋아하는 마음을 신뢰하는 태도는 곧 스스로의 안목과 가치관을 신뢰하는 단단한 자존감으로 이어질 수 있다고 생각한다. 자신이 좋아하는 것들이 어느 정도 자신을 구성하고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감정이 가장 생생하게 살아 숨 쉬는 순간에 이를 문장으로 붙잡아서 마음을 언어화할수록 나 자신을 바라보는 시선 또한 한층 또렷해진다.
의외로 훈련을 통해 가능하다
다행히도 감정을 세밀한 단어로 포착하는 일은 훈련을 통해 충분히 달성할 수 있다. 대학 시절 처음으로 문학 글쓰기 동아리에 들어가 타인의 작품에 대한 감상을 나눌 때 무척이나 애를 먹었던 기억이 있다. 부원의 시가 더할 나위 없이 훌륭하다는 것은 직관적으로 느껴지는데, 정확히 어느 대목이 왜 좋았는지를 말로 풀어서 설명하기가 너무나 까다로웠기 때문이다. 당시 고민을 털어놓자 친구는 시간이 흐르고 연습이 쌓이면 자연스럽게 늘어날 것이라고 해주었다. 과연 그것이 가능할 지 의구심이 들었지만, 실제로 경험해 보니 감상을 표현하는 능력은 확연히 성장했다.
좋아하는 것을 구체적으로, 자신만의 언어로 표현하는 핵심 중에 하나는 ‘세분화’라고 생각한다. 덩어리가 아니라 ‘뭐가’ 좋았는지, ‘왜’ 좋았는지 알기 위해서는 그 순간을 세분화해서 이야기할 줄 알아야 한다.
그리고 감정을 세분화하여 표현하려면 먼저 대상을 명확하게 알아보는 법을 배워야 한다. 뮤지컬로 예를 들자면, 아무런 배경지식 없이 뮤지컬을 관람하는 것과 음향, 조명, 배우들이 극을 완성하기 위해 치열하게 고민한 흔적을 조금이라도 인지한 상태에서 관람하는 것은 완전히 다른 경험을 선사한다. 무대를 구성하는 다양한 요소를 이해하고 나면 무조건 좋았다는 일차원적 감상에서 벗어날 수 있다. 오늘의 연출 중 조명이 어떤 분위기를 자아내서 좋았는지, 혹은 배우가 배역을 어떻게 해석했기에 감동적이었는지를 조각조각 쪼개어 바라보게 된다. 비로소 ‘좋다’라는 모호한 표현을 나만의 시선과 나만의 언어로 구체화하는 순간이다.
좋아한다는 것, 귀한 마음
문득 과거에 게임에 푹 빠져 지내던 시절 적어 내려갔던 일기장을 다시 읽어본 적이 있다. 그곳에는 단순히 좋아한다거나 최고라는 식의 뻔한 감탄사가 남발되어 있지 않았다. 대신 치열하게 플레이하고 기뻐했던 구체적인 흔적들이 고스란히 적혀 있었다. 비록 지금은 그 게임을 하지 않더라도, 그 기록을 통해 나라는 사람을 형성하고 있는 어떤 본질적인 조각과 선명한 감각을 다시금 만끽할 수 있었다.
지금 마음을 쏟고 있는 수많은 대상에게도 언젠가는 담담해지는 날이 찾아올지 모른다. 그렇기에 현재 찾아온 좋아함이라는 귀한 감정을 결코 가볍게 넘기지 않고 소중히 여겨야 한다. 생생한 마음들을 부지런히 언어로 붙잡아 둘 때, 비로소 이것들이 촘촘히 모여 지금의 나를 견고하게 이루고 있다는 실감을 얻게 될 것이다.
*참고 문헌
1) 하상응 (2023), 서강대학교 정치심리학 강의 내용, 개인 수강 기록에 근거함
2) 미야케 카호 (2025), <덕후의 글쓰기>, 더페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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