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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심리학신문=편집부 ]
주말 오전, 갑자기 친구에게 문자가 온다. '오늘 광장시장 갈래?' 불과 5~10년 전만 해도 '시장'이라는 단어는 어머니 세대의 장보기 공간이었다. 그런데 요즘 20대 사이에서 전통시장은 인스타그램 핫플레이스가 됐고, 데이트 코스의 단골 메뉴가 됐다.
단순히 '레트로 감성'이 좋아서일까. 심리학자들은 이 현상을 단순한 트렌드 소비로 보지 않는다. 그 안에는 현대 젊은이들의 깊은 심리적 욕구가 숨어 있다는 것이다.
엠브레인 트렌드모니터가 지난해 2월 수도권 만 19~59세 1000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조사에서 20대는 전통시장 방문 이유로 '나들이·데이트'(26.8%)와 '음식과 주류를 즐기기 위한 방문'(22.4%)을 꼽았다. 단순히 장을 보러 가는 게 아니라, 경험을 소비하러 간다는 뜻이다.
심리학에서는 이를 '불확실성 보상 효과'로 설명한다. 그레그 번스 미국 에모리대 신경과학과 교수는 연구를 통해 예측 가능한 보상보다 예측 불가능한 보상이 뇌의 도파민 분비를 최대 40% 이상 높인다는 사실을 밝혀냈다. 마트의 정돈된 진열대와 달리 시장은 무엇이 나타날지 모른다. 골목을 돌면 처음 보는 할머니 떡집이 나타나고, 흥정하다 보면 덤이 생긴다. 그 예측 불가능성 자체가 뇌에게는 짜릿한 보상인 셈이다.
특히 디지털 환경에 익숙한 Z세대에게 이 효과는 더욱 강하게 작용한다. 알고리즘이 모든 것을 예측하고 추천해주는 온라인 세계와 정반대의 경험이기 때문이다. 시장은 알고리즘이 없는 공간이다.
사람 냄새, 기름 냄새, 흥정하는 목소리, 손으로 직접 만져보는 물건들. 전통시장은 오감이 동시에 자극되는 공간이다. 존 카밧진 미국 매사추세츠대 의대 명예교수가 제안한 '마음챙김(Mindfulness)' 개념에 따르면, 인간은 지금 이 순간에 완전히 집중할 때 스트레스 호르몬인 코르티솔 수치가 평균 23% 감소한다. 스마트폰 화면 속에 사는 현대인에게 시장의 오감 자극은 강제로 '지금 여기'에 집중하게 만드는 장치인 셈이다.
실제로 2023년 서울대 소비자학과 연구팀이 20~30대 312명을 대상으로 진행한 연구에서, 전통시장 방문 후 '현재 순간에 집중하는 느낌'을 경험했다는 응답이 51.8%에 달했다. 온라인 쇼핑 이후 같은 질문에 대한 긍정 응답(18.4%)보다 세 배 가까이 높은 수치였다. 몸이 공간 안에 있고, 손이 물건을 직접 만지고, 눈이 사람을 바라보는 경험. 그게 지금 세대에게 오히려 낯설고 귀한 것이 됐다.
시장 상인 할머니의 '많이 드가요' 한 마디. 처음 보는 사람인데도 마치 오래 알던 사이처럼 느껴지는 그 온도. 사회심리학에서는 이를 '느슨한 연대(Weak Ties)'의 힘으로 설명한다. 마크 그라노베터 미국 스탠퍼드대 사회학과 명예교수는 친밀한 관계보다 오히려 느슨한 관계가 개인에게 더 큰 심리적 활력을 준다는 연구 결과를 발표한 바 있다. 매일 만나는 친구나 가족과의 관계와 달리, 시장 상인과의 짧고 따뜻한 교류는 기대나 부담이 없다. 그래서 더 편하고, 더 회복적이다.
관계 피로가 극심한 시대다. SNS 속 인간관계는 '좋아요' 숫자로 환산되고, 직장 관계는 성과와 얽혀있다. 그 안에서 지친 젊은이들이 시장에서 찾는 것은 물건이 아니라 부담 없는 사람 냄새일지 모른다. 아무것도 증명하지 않아도 되고, 팔로우하지 않아도 되는 공간. 그것이 시장의 심리적 본질이다.
거기에 세대 간 경험의 공유라는 측면도 있다. '어미새 현상'이라 불리며 Z세대가 부모 세대의 감성을 적극적으로 받아들이는 최근 흐름과도 맞닿아 있다. 시장은 부모님이 살아온 시간의 냄새가 나는 곳이기도 하다.
물가는 오르고, 취업은 어렵고, 집은 멀다. 경제적 불안을 안고 사는 20~30대에게 전통시장은 '가성비 경험 공간'으로 기능한다. 5000원짜리 순대, 3000원짜리 호떡 하나로 충분히 행복하다. 심리학에서는 이를 '경험 소비의 역설'이라 부른다. 팀 캐서 미국 녹스대 심리학과 교수는 20년간의 연구를 통해 물질 소비보다 경험 소비가 삶의 만족도를 평균 33.1% 더 높인다는 사실을 증명했다. 값비싼 물건 하나보다 소박한 경험 여러 번이 더 오래, 더 깊게 기억에 남는다는 것이다.
전통시장은 그 경험 소비를 가장 저렴하게, 가장 진하게 제공하는 공간이다. 인스타그램에 올릴 사진도 건지고, 맛있는 것도 먹고, 사람 구경도 하고, 뭔가를 발견하는 설렘도 얻는다. 단돈 몇 천 원으로 오후 전체를 채울 수 있다. 지갑이 가벼운 시대일수록 시장의 심리적 가치는 더 빛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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