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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심리학신문=편집부 ]
퇴근 후 불을 켜도 집이 왠지 더 어두운 날이 있다. 핸드폰 알림은 쉴 새 없이 울리는데, 정작 진심으로 '힘들다'고 말할 사람은 떠오르지 않는다. 나만 이런 걸까.
이제 외로움은 감정의 문제가 아니다. AI 돌봄 서비스, 반려로봇, 공동 주거 플랫폼까지, 외로움을 해소하기 위한 시장이 수조 원 규모로 성장하고 있다. 우리 사회는 왜 이토록 외로워졌을까.
동아일보 스페셜리포트 '외로움 시장'에 따르면, AI 돌봄 서비스부터 공동구독, 코리빙(co-living)까지 외로움을 완화하기 위한 산업이 빠르게 커지고 있다. 전다현 서울대 소비트렌드분석센터 연구위원은 '최근 외로움 관련 기술은 단순 대화를 넘어 이용자 상태를 감지하고 정서적으로 반응하는 방향으로 진화하고 있다'고 분석했다.
이 현상은 한국만의 이야기가 아니다. 영국은 2018년 세계 최초로 외로움부 장관직을 신설했고, 미국의 공중보건 총감 비벡 머시는 2023년 외로움을 공중보건 위기로 공식 선언했다. 외로움이 흡연만큼 건강을 위협한다는 경고가 나온 지도 오래됐다.
왜 이렇게 됐을까. 심리학자들은 현대사회의 구조적 변화에서 그 답을 찾는다. 1인 가구 증가, 디지털 소통의 확산, 경쟁 중심의 사회 분위기가 겹치며 물리적으로는 연결돼 있지만 정서적으로는 고립된 상태, 이른바 '연결된 고독'이 일상이 됐다는 것이다.
존 카치오포 전 미국 시카고대 심리학과 교수는 30년 넘게 외로움을 연구한 세계적 권위자다. 그는 외로움을 '사회적 배고픔'이라고 정의했다. 배고픔이 음식을 찾도록 뇌에 신호를 보내듯, 외로움은 사회적 연결을 찾도록 경보를 울리는 생존 메커니즘이라는 것이다.
실제로 외로움을 느낄 때 뇌의 반응은 물리적 고통과 놀랍도록 유사하다. 2013년 나오미 아이젠버거 미국 UCLA 심리학과 교수 연구팀이 fMRI 촬영을 통해 확인한 결과, 사회적 배제를 경험할 때 활성화되는 뇌 영역이 신체적 통증을 처리하는 영역과 거의 일치했다. 쉽게 말해, 따돌림을 당하거나 소외감을 느끼는 것은 뇌 입장에서 진짜 아픈 것이다.
더 심각한 것은 외로움이 장기화될 때다. 2015년 브리검영대 줄리안 홀트-런스태드 심리학과 교수가 성인 308만 명의 데이터를 분석한 메타 연구에서, 사회적 고립은 사망 위험을 26% 높이는 것으로 나타났다. 하루 15개비 흡연과 맞먹는 수치다.
GS샵이 선보인 반려로봇 케미프렌즈, AI 챗봇 돌봄 서비스 등은 분명 외로운 사람들에게 위안을 준다. 그런데 심리학은 이 지점에서 중요한 질문을 던진다. 과연 AI와의 상호작용이 진짜 연결을 대체할 수 있을까.
셰리 터클 미국 MIT 과학기술사회학과 교수는 저서 '외로이 함께(Alone Together)'에서 '우리는 기술을 통해 연결되어 있다는 착각을 하지만, 사실은 더 깊은 고독 속으로 빠져들고 있다'고 경고했다. 로봇이나 AI는 우리의 취약함을 진심으로 받아들이지 않는다. 진짜 연결에서 핵심인 상호 취약성이 없기 때문이다.
물론 AI 돌봄이 전혀 효과가 없다는 뜻은 아니다. 특히 거동이 불편한 노인이나 사회적 관계 형성이 어려운 이들에게 단기적 위안은 분명 존재한다. 하지만 연구자들은 AI 연결이 진짜 인간관계를 대체하는 방향으로 흐를 때 오히려 외로움이 심화될 수 있다고 우려한다.
로빈 던바 영국 옥스퍼드대 실험심리학과 명예교수는 인간이 안정적으로 유지할 수 있는 친밀한 관계는 평균 5명 내외라고 밝혔다. 이 '핵심 5명'과의 관계가 탄탄한 사람은 외로움에 훨씬 강한 면역력을 보였다. 팔로워 수천 명이 아니라, 진짜 나를 아는 단 몇 명이 중요하다는 것이다.
수십만 원짜리 AI 돌봄 구독이나 반려로봇 구매 전에, 오늘 우리가 할 수 있는 가장 작은 시작이 있다. 오래 연락하지 못했던 얼굴이 문득 떠오른다면, '잘 지내? 생각나서'라는 짧은 메시지 하나를 먼저 보내보는 것은 어떨까. 외로움 시장이 아무리 커져도 결국 그 빈자리를 채우는 것은 사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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