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부

[한국심리학신문=편집부 ]
열심히 뛰었는데 마지막 순간 결과가 뒤집혔다. 억울함과 분노가 한꺼번에 터진 그 찰나, 우리는 때때로 스스로도 예상하지 못한 행동을 해버린다. 잉글랜드의 에이스 주드 벨링엄이 경기 후 상대 선수의 뒤통수를 가격한 장면이 전 세계 팬들에게 큰 충격을 안겼다.
단순한 '비신사적 행동'으로 치부하기엔 뭔가 걸린다. 평소 냉철하다고 알려진 선수가 왜 하필 그 순간 이성을 잃었을까. 심리학은 이 질문에 꽤 설득력 있는 답을 내놓고 있다.
미국 컬럼비아대 심리학과 케빈 오크스너 교수팀이 2023년 발표한 연구에 따르면, 극도의 긴장 상태에서 갑작스러운 좌절을 경험할 때 뇌의 전전두피질 기능이 일시적으로 억제된다. 전전두피질은 충동을 조절하고 결과를 예측하는 '이성의 사령부'다. 이 기능이 꺼지는 순간, 뇌는 원시적인 감정 반응에 지배당한다.
벨링엄의 경우, 극도의 체력 소모와 아르헨티나 골로 인한 깊은 좌절감이 동시에 터지며 이른바 '감정 과부하' 상태에 빠졌을 가능성이 높다. 오크스너 교수는 이를 '감정 조절 실패 cascade'라고 부르며, 평소 자기통제 능력이 뛰어난 사람에게도 예외 없이 나타날 수 있다고 강조한다.
실제로 해당 연구에서는 평상시 충동 조절 점수가 상위 20%에 속하는 참가자들도 극도의 스트레스 상황에서는 충동적 반응을 보이는 비율이 67.3%에 달했다. '나는 절대 그러지 않을 것'이라는 자신감, 그 자체가 가장 위험한 착각이다.
1939년 미국 예일대 존 달라드 교수가 처음 제안한 '좌절-공격 가설(Frustration-Aggression Hypothesis)'은 지금도 스포츠 심리학의 핵심 이론으로 쓰인다. 목표 달성이 방해받을 때 인간은 공격적 충동을 느끼며, 그 충동은 반드시 어떤 형태로든 출구를 찾는다는 것이다. 중요한 건, 그 공격이 반드시 좌절의 원인에게 향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벨링엄이 가격한 상대는 골을 넣은 선수가 아니었다. 분노는 가장 가까이 있는, 혹은 가장 쉽게 표출할 수 있는 대상을 찾아 흘러간다. 이 현상을 '치환된 공격(displaced aggression)'이라고 부른다. 직장 상사에게 혼난 날 가족에게 괜히 짜증이 나는 것, 친구에게 서운한 마음을 엉뚱한 사람에게 푸는 것 모두 같은 원리다.
영국 엑스터대 스포츠심리학과 샘 젠킨스 박사는 2021년 연구에서 엘리트 선수 248명을 분석한 결과, 경기 막판 역전골을 허용한 선수들의 79.1%가 경기 종료 직후 10분 이내에 비정상적인 감정 표출 행동을 보였다고 밝혔다. 벨링엄의 행동은 예외적 '일탈'이 아니라, 극한 스포츠 환경에서 반복되는 심리적 패턴이었던 셈이다.
경기장 위의 이야기라고 남의 일처럼 보기엔 이르다. 극도로 지친 야근 후 파트너에게 날카롭게 쏘아붙인 적은 없었나. 열심히 준비한 프레젠테이션이 무너지던 그 순간, 동료에게 언성을 높인 경험은? 우리 모두의 일상에 벨링엄의 순간이 숨어 있다.
핵심은 '평소의 나'와 '극한 상황의 나'가 다를 수 있다는 사실을 인정하는 것이다. 자신이 감정 폭발에 면역이 있다고 믿는 사람일수록 오히려 실제 상황에서 더 크게 무너지는 경향이 있다. 심리학에서는 이를 '과신 효과(overconfidence effect)'라 부른다.
미국 스탠퍼드대 심리학과 제임스 그로스 교수는 감정 조절 능력을 키우는 가장 효과적인 방법으로 '재평가(reappraisal)' 기법을 제안한다. 좌절스러운 상황을 '공격받은 것'이 아닌 '배울 수 있는 사건'으로 인식을 바꾸는 훈련이다. 그로스 교수의 2022년 연구에서는 이 기법을 4주간 훈련한 집단이 그렇지 않은 집단보다 충동적 반응을 51.8% 줄이는 결과를 보였다.
감정이 폭발한 뒤 찾아오는 깊은 후회감도 심리학적으로 중요하다. 벨링엄 역시 경기 후 인터뷰에서 상대 선수에게 즉각 사과했다고 알려졌다. 이처럼 '행동 후 빠른 책임 인정'은 자기 조절 능력의 또 다른 증거다. 관계를 회복하는 데 있어 사과의 타이밍은 내용만큼이나 중요하다.
분노가 폭발하려는 순간을 인식하는 것이 첫 번째 기술이다. 심박수가 빨라지고 손이 떨리는 신체 신호를 감지했다면, 심호흡을 세 번 하고 5초만 기다리는 습관이 뇌의 전전두피질을 다시 활성화하는 데 실질적으로 도움이 된다고 그로스 교수는 조언한다. 오늘 마음속에 쌓인 좌절이 있다면, 혹시 지금 그 '5초'가 필요한 순간은 아닌지 한번 스스로에게 물어보는 것은 어떨까.
다른 곳에 퍼가실 때는 아래 고유 링크 주소를 출처로 사용해주세요.
http://www.psytimes.co.kr/news/view.php?idx=1280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