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툭하면 항의전화, 보상은 제자리"…증권사 애널리스트, 왜 ‘매도‘ 못 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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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심리학신문=편집부 ]


"툭하면 항의전화, 보상은 제자리"…증권사 애널리스트, 왜 '매도' 못 쓸까


새벽 네 시에 눈을 뜬다. 해외 지표를 확인하고, 기업 공시를 훑고, 보고서를 완성한다. 오후 장이 끝나도 쉬지 못한다. 집에 돌아오면 오후 여섯 시, 다시 잠들기까지 남은 시간은 서너 시간뿐이다. 증권사 애널리스트의 하루다.


그런데 이 치열한 직업인들이 정작 가장 중요한 단어 하나를 쓰지 못한다. '매도'다. 주가가 떨어질 것 같아도, 기업 실적이 부진해도 보고서에는 '매수'나 '중립'만 가득하다. 왜 전문가들은 자신의 분석대로 말하지 못하는 걸까. 심리학은 이 현상에 뚜렷한 답을 갖고 있다.



집단 항의가 뇌에 새기는 공포: 처벌 학습의 메커니즘


애널리스트가 매도 의견을 내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해당 종목을 보유한 개인투자자들이 인터넷 커뮤니티와 SNS를 중심으로 집단 항의에 나선다. 회사 대표번호로 항의 전화가 쏟아지고, 해당 애널리스트의 이름은 순식간에 '블랙리스트'처럼 온라인을 떠돈다. 심리학에서는 이를 '부정적 강화(negative reinforcement)'의 역설적 작용이라고 설명한다.


미국 스탠퍼드대 심리학과 브라이언 넛슨(Brian Knutson) 교수 연구팀은 2007년 fMRI 실험을 통해 사회적 처벌 위협이 실제 신체적 위협과 거의 동일한 뇌 부위, 즉 편도체(amygdala)를 활성화한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집단의 분노를 직접 경험한 애널리스트의 뇌는 '매도'라는 단어 자체를 위험 신호로 학습하게 된다.


한 번 항의 폭풍을 겪고 나면, 다음번 보고서를 쓸 때 손가락이 멈춘다. 이건 용기 부족의 문제가 아니다. 뇌가 이미 그 경험을 기억하고 있기 때문이다.



동조 압력과 '왕따' 공포: 집단 속에서 혼자 튀는 두려움


매도 의견을 내면 업계 내에서 '왕따' 취급을 받는다는 증언도 심심치 않게 나온다. 커버리지 기업의 IR 담당자에게 외면당하고, 동료 애널리스트들 사이에서도 '분위기 파악 못 하는 사람'으로 낙인찍힌다. 이는 솔로몬 애시(Solomon Asch) 펜실베이니아 스와스모어칼리지 심리학과 교수가 1951년 실시한 동조 실험으로 설명된다. 명백히 틀린 답이라도 집단이 동의하면 피험자의 37%가 그 답을 따랐다. 틀렸다는 걸 알면서도 집단을 거스르지 못한 것이다.


여기에 '정보 폭포(information cascade)' 현상도 겹친다. 앞선 애널리스트가 매수 의견을 내면, 뒤따르는 애널리스트는 자신의 분석보다 선행 정보에 의존하게 된다. 2019년 예일대 경제학자 비크람 네루(Vikram Naru) 연구팀이 국내외 증권사 보고서 4만여 건을 분석한 결과, 매도 의견 비율은 전체의 5% 미만에 불과했다. 경제 논리가 아니라 심리 논리가 보고서를 지배하고 있는 셈이다.


결국 애널리스트 개인의 문제가 아니다. 집단 속에서 혼자 다른 목소리를 내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지, 인간의 뇌는 수십만 년 전부터 알고 있었다.



자기검열의 심리학: '확증 편향'이 분석을 흐린다


매도 의견을 쓰지 못하는 또 다른 이유는 애널리스트 자신의 내면에 있다. 한 기업을 오랫동안 분석하다 보면 자연스럽게 그 기업에 대한 긍정적 시각이 굳어진다. 심리학에서는 이를 '확증 편향(confirmation bias)'이라고 부른다. 자신이 믿고 싶은 정보만 골라 받아들이고, 반증하는 신호는 무의식적으로 축소하는 경향이다.


옥스퍼드대 실험심리학과 명예교수 로빈 던바(Robin Dunbar)는 인간이 자신과 오래 관계를 맺은 대상에 대해 부정적 평가를 내리는 것 자체에 심리적 저항을 느낀다고 설명한다. 수년간 IR 담당자와 신뢰를 쌓아온 애널리스트가 갑자기 '이 회사 팔아라'고 쓰는 일은 단순한 직업적 판단을 넘어, 관계를 배신하는 것처럼 느껴지는 것이다. 인간적 유대가 전문적 판단을 흐리는 순간이다.


새벽부터 밤까지 일하면서도, 정작 가장 정직한 한 마디를 쓰지 못하는 아이러니. 이것이 애널리스트의 현실이다.



소신 발언이 이렇게 어려운 이유: 우리 모두의 이야기


사실 이 문제는 애널리스트만의 이야기가 아니다. 회의실에서 상사의 의견이 틀렸다고 생각하면서도 입을 다문 적 있지 않은가. 친구 모임에서 다수의 의견에 슬며시 동조했던 경험, 누구에게나 있다. 집단 속에서 혼자 튀는 것에 대한 공포는 직업을 가리지 않는다.


하버드대 경영대학원 에이미 에드먼슨(Amy Edmondson) 교수가 1999년부터 수행한 연구에 따르면, 구성원이 자유롭게 의견을 말할 수 있는 '심리적 안전감(psychological safety)'이 보장된 팀은 그렇지 않은 팀보다 오류 발견율이 43% 높았다. 소신 발언은 개인의 용기 문제가 아니라, 환경이 만들어주는 것이라는 뜻이다.


오늘 당신 주변에도 하고 싶은 말을 꾹 눌러 참고 있는 사람이 있을지 모른다. '틀릴 수도 있어'라고 말해줄 수 있는 분위기, 먼저 당신이 만들어 보는 건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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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사등록 2026-07-21 07:09: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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