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테러 막으려다 압사하겠다"…안전 위해 만든 규제, 왜 더 불안할까?
기사 메일전송
기사수정


[한국심리학신문=편집부 ]


"테러 막으려다 압사하겠다"…안전 위해 만든 규제, 왜 더 불안할까?


줄을 섰다. 끝이 보이지 않는 줄이었다. 지하철을 타려고 나선 건데, 보안 검색대 앞에 수백 명이 빼곡히 들어서 있었다. '이러다 지각하겠다'는 생각보다 먼저 든 감정은 묘한 불안이었다. 테러를 막겠다고 만든 공간이, 오히려 더 숨막히게 느껴지는 이 역설은 어디서 오는 걸까.


최근 중국 선전 지하철에서 보안 검색 규정이 강화된 뒤, 시민들이 길게 줄을 서야 하는 상황이 인터넷에 퍼지며 '테러 막으려다 압사하겠다'는 말이 쏟아졌다. 안전을 위한 조치가 오히려 불안과 분노를 키운 셈이다. 심리학자들은 이 현상을 단순한 불편 호소로 보지 않는다.



통제감 박탈: 불안은 위험 자체보다 '내가 어쩔 수 없다'는 느낌에서 온다


심리학에서 '통제감(sense of control)'은 인간의 정신 건강과 직결되는 핵심 욕구다. 엘렌 랭거 미국 하버드대 심리학과 교수는 1977년 연구에서, 자신의 환경을 스스로 통제할 수 있다고 느끼는 사람일수록 스트레스 수치가 낮고 실제 신체 건강 지표도 좋다는 사실을 밝혀냈다. 반대로 통제감을 잃으면 작은 자극에도 불안과 분노가 증폭된다.


보안 검색대 앞에 서는 상황은 통제감을 한 번에 여러 겹 빼앗는다. 언제 출발할지, 얼마나 걸릴지, 내 짐이 어떻게 다뤄질지를 내가 결정할 수 없게 된다. 이때 뇌의 편도체는 실제 위험이 없는 상황에서도 경보를 울리기 시작한다. '위험한 게 아니라 통제할 수 없는 것'이 불안의 진짜 원인인 셈이다.


재니스 켈트너 미국 UC버클리 심리학과 교수 연구팀이 2003년 발표한 연구에 따르면, 자신에게 선택권이 없다고 느끼는 집단은 그렇지 않은 집단에 비해 같은 대기 시간을 평균 40% 더 길게 인식했다. 줄이 실제로 더 긴 게 아니라, 통제감이 없을 때 시간이 더 느리게 흐른다고 느끼는 것이다.



반발심리: '나를 의심하냐'는 감정이 안전 조치를 적으로 만든다


보안 검색이 불러일으키는 또 다른 심리적 반응은 '심리적 저항(psychological reactance)'이다. 잭 브렘 미국 플로리다대 심리학과 교수가 1966년 처음 제안한 이 이론에 따르면, 사람은 자신의 자유나 자율성이 외부로부터 제한된다고 느낄 때 그 제한에 강하게 반발하는 본능적 경향이 있다. 내가 잘못한 게 없는데 검색을 받아야 한다는 상황은, 마치 '당신을 잠재적 범죄자로 본다'는 메시지처럼 느껴질 수 있다.


이 감정은 단순한 억울함이 아니다. 자아 존중감(self-esteem)과 직결된 반응이다. 특히 평소 '나는 규범을 잘 지키는 사람'이라는 정체성이 강한 사람일수록 보안 검색에 더 강한 불쾌감을 느끼는 경향이 있다. '내가 왜?'라는 반문이 자동으로 튀어나오는 이유다.


여기에 군중 효과까지 더해진다. 수백 명이 함께 줄을 서는 장면은 개인의 불안을 집단적 분노로 빠르게 전환시킨다. 사회심리학자 르봉이 오래전 지적했듯, 군중 속에서는 감정이 전염되고 증폭된다. 한 사람의 '이건 말이 안 돼'라는 중얼거림이 순식간에 수백 명의 공감을 얻는 것, 선전 지하철 사진이 순식간에 인터넷을 뒤덮은 것도 같은 원리다.



안전 역설: 더 철저할수록 더 무섭게 느껴지는 이유


안전 조치가 강화될수록 역설적으로 시민이 더 불안해지는 현상을 심리학에서는 '현저성 효과(salience effect)'로 설명한다. 검색대, 보안 요원, 긴 줄 같은 가시적인 장치들이 오히려 '여기가 위험한 곳이구나'라는 신호를 뇌에 보낸다는 것이다. 브루스 슈나이어 미국 하버드 케네디스쿨 보안 전문가는 이를 '보안 극장(security theater)'이라 부르며, 실질적 안전보다 눈에 보이는 안전 퍼포먼스가 때로 역효과를 낸다고 지적했다.


2009년 국제 학술지 '위험 분석(Risk Analysis)'에 실린 연구에서, 공항 보안이 강화된 이후 탑승객의 불안 수준을 조사한 결과 보안 장치를 많이 목격할수록 오히려 '무언가 심각한 위협이 있다'고 느끼는 비율이 23% 높아졌다. 안심시키려고 만든 장치가 불안을 심는 아이러니다.


물론 보안 조치 자체가 나쁜 것은 아니다. 문제는 그것이 '어떻게' 도입되느냐에 있다. 사람들에게 충분한 설명 없이 갑자기 강화된 검문은 통제감 박탈과 반발심을 동시에 자극한다. 반면 같은 강도의 보안이라도 이유와 기간을 사전에 안내받은 시민은 훨씬 낮은 불안과 불만을 보인다는 연구 결과가 있다.



나의 불안은 나약함이 아니다: 이 감정을 다루는 법


예상치 못한 통제 상황에서 불안과 짜증이 밀려오는 건 지극히 정상적인 반응이다. 뇌가 제대로 작동하고 있다는 증거이기도 하다. 다만 그 감정에 압도되지 않으려면 의식적으로 '지금 내가 통제할 수 있는 것'에 집중하는 연습이 도움이 된다. 어느 줄에 설지, 어떻게 짐을 미리 정리할지 같은 작은 선택권을 스스로 찾는 것만으로도 통제감은 부분적으로 회복된다.


오늘 혹시 줄이 길어서, 혹은 뜻밖의 제약에 걸려서 속이 끓었다면 그 감정은 당신이 예민한 게 아니라 당신의 뇌가 당연한 일을 한 것이다. 잠깐 심호흡하고, 내가 지금 할 수 있는 가장 작은 선택 하나를 찾아보는 건 어떨까. 그 작은 선택이, 생각보다 훨씬 큰 안도감을 줄 것이다.


TAG
0
기사수정

다른 곳에 퍼가실 때는 아래 고유 링크 주소를 출처로 사용해주세요.

http://www.psytimes.co.kr/news/view.php?idx=12827
  • 기사등록 2026-07-23 07:13:58
기자프로필
프로필이미지
나도 한마디
※ 로그인 후 의견을 등록하시면, 자신의 의견을 관리하실 수 있습니다. 0/1000
모바일 버전 바로가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