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부

[한국심리학신문=편집부 ]
책 한 권을 손에 쥐었다. 첫 페이지를 펼치는데 어느새 손가락이 스마트폰 화면을 향해 움직인다. '잠깐만, 딱 한 편만 보고'라고 다짐했건만 눈을 떴을 때는 한 시간이 훌쩍 지나 있다. 책상 위 책은 그대로 뒤집어진 채 놓여 있고, 나는 릴스 속 낯선 강아지 영상에 눈을 빼앗기고 있다.
한때 책을 좋아했던 사람들이 이구동성으로 하는 말이 있다. '예전엔 잘 읽었는데, 요즘은 두 페이지도 못 버티겠어.' 의지가 약해진 걸까, 아니면 뭔가 다른 이유가 있는 걸까. 심리학과 신경과학은 이것이 단순한 게으름의 문제가 아님을 말하고 있다.
글로리아 마크 미국 캘리포니아대 어바인캠퍼스 정보학과 교수는 2004년부터 20년 넘게 디지털 기기가 주의 집중에 미치는 영향을 추적해왔다. 그의 연구에 따르면 2004년 평균 2분 30초였던 화면당 집중 지속 시간이 2023년에는 단 47초로 줄어들었다. 20년 사이에 우리의 집중력이 세 분의 일 토막이 난 셈이다.
이는 단순한 습관의 변화가 아니다. 뇌는 자주 쓰는 회로를 강화하고, 잘 쓰지 않는 회로는 약화시킨다. 신경과학에서는 이를 '신경 가소성(neuroplasticity)'이라고 부른다. 짧고 자극적인 영상을 반복적으로 소비할수록 뇌는 그 패턴에 최적화되고, 느리고 깊게 읽는 방식에는 점점 더 불편함을 느끼게 된다.
문학소녀가 IT 회사에 취직한 뒤 책을 잃어버린 경험을 담은 책 '이번 주말도 릴스만 보다 끝났네'가 독자들의 폭발적인 공감을 얻고 있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이 현상은 특정 개인의 의지력 문제가 아니라, 지금 이 시대를 살아가는 수많은 사람이 공유하는 뇌의 변화다.
릴스나 쇼츠를 볼 때 뇌에서는 도파민이 분비된다. 도파민은 쾌감 그 자체가 아니라 '보상에 대한 기대'를 촉진하는 물질이다. 켄트 베리지 미국 미시간대 심리학과 교수는 도파민 시스템이 '원하는 것(wanting)'을 끊임없이 추구하게 만들며, 실제 '좋아하는 것(liking)'과는 별개로 작동한다고 설명한다. 즉, 릴스를 보면서 딱히 즐겁지 않아도 계속 넘기게 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소셜미디어 알고리즘은 이 도파민 회로를 정교하게 이용한다. 영상이 끝나는 순간 다음 영상이 자동으로 재생되고, 예측 불가능한 보상이 반복되면서 뇌는 슬롯머신 앞에 앉은 것처럼 손가락을 멈추지 못한다. 이런 상태에서 독서는 비교 자체가 불가능하다. 책은 도파민을 천천히, 조금씩 올리는 방식으로 작동하기 때문이다.
반면 깊은 독서는 전전두엽 피질을 활성화하고, 공감 능력과 비판적 사고를 담당하는 회로를 강화한다. 메리언 울프 미국 터프츠대 심리학과 교수는 '독서하는 뇌(Proust and the Squid)'에서 깊은 독서가 단순한 정보 습득이 아니라 뇌 전체를 고도로 활성화하는 복잡한 인지 활동이라고 강조했다. 우리가 독서를 잃으면 잃어버리는 것은 정보가 아니라 사고의 깊이다.
다행스러운 것은 신경 가소성이 양방향으로 작동한다는 사실이다. 짧은 자극에 길들여진 뇌도 꾸준한 훈련을 통해 다시 깊은 집중 상태로 돌아올 수 있다. 실제로 메리언 울프 교수 본인도 오랜 디지털 기기 사용 이후 헤르만 헤세의 소설을 읽는 데 심각한 어려움을 겪었고, 이를 극복하기 위해 의도적인 '깊은 읽기 훈련'을 시작했다고 고백한 바 있다.
심리학에서는 이를 '주의력 회복 이론(Attention Restoration Theory)'의 관점에서 설명한다. 레이첼 카플란 미국 미시간대 환경심리학과 명예교수의 연구에 따르면, 인간의 주의력에는 의도적으로 사용하는 '지시적 주의(directed attention)'와 자연스럽게 회복되는 '자연 주의(involuntary attention)' 두 종류가 있으며, 깊은 독서는 지시적 주의를 단련하는 가장 효과적인 훈련 중 하나다.
처음부터 한 시간씩 읽으려 하면 뇌가 버틴다. 오늘은 딱 10분만, 스마트폰을 다른 방에 두고 책 한 챕터만 읽어보는 것으로 시작해보자. 뇌는 생각보다 빠르게 적응한다. 당신이 한때 책 속에서 느꼈던 그 고요하고 깊은 몰입감, 아직 사라진 게 아니라 그저 잠들어 있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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