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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심리학신문=편집부 ]
회식 자리에서 음료수를 시켜도 아무도 눈치를 주지 않는다. 주말 저녁, 친구들과 카페에 앉아 논알코올 맥주를 홀짝이는 건 이제 낯선 풍경이 아니다. 언제부턴가 '한 잔 해야 어른'이라는 공식이 조용히 무너지고 있다.
NH농협은행이 올해 1월 발표한 트렌드 보고서에 따르면 2025년 기준 20대의 주점 소비 금액은 전년 대비 20.9% 줄었다. 영국에서도 Z세대를 중심으로 술집이 문을 닫고 있다는 외신 보도가 잇따른다. 도대체 왜, 이 세대는 술을 이렇게까지 멀리하는 걸까.
심리학에서 음주는 오랫동안 '사회적 윤활유'로 설명돼 왔다. 알코올이 불안을 낮추고 낯선 사람과의 거리감을 줄여 소속감을 높인다는 것이다. 그런데 Z세대는 이 방정식을 거부하고 있다. 이들에게 술자리는 소속감을 주는 공간이 아니라, 오히려 통제력을 잃는 공간으로 인식된다.
클로드 스틸 미국 스탠퍼드대 심리학과 명예교수의 연구에 따르면, 자기 개념이 뚜렷하고 자존감이 높은 개인일수록 집단 압력에 의한 음주를 거부하는 경향이 강하다. Z세대는 SNS를 통해 '내가 누구인지'를 끊임없이 표현하고 정의해온 세대다. 자기 정체성이 어느 세대보다 선명한 만큼, 음주로 자아 통제력이 흐려지는 상황 자체를 위협으로 느끼는 것이다.
실제로 한 연구 대상자는 '술을 줄일수록 몸 상태가 좋아진다는 것을 느꼈다'고 말했다. 단순한 건강 트렌드가 아니라, 자기 신체와 감각에 대한 주도권을 되찾으려는 심리적 욕구가 반영된 선택이다.
알코올이 뇌의 보상회로를 자극해 도파민을 분비시킨다는 건 잘 알려진 사실이다. 그런데 Z세대의 일상에는 이미 도파민을 자극하는 경쟁자가 넘쳐난다. 숏폼 영상, 게임, 맛집 탐방, 덕질, 운동까지. 굳이 불쾌한 숙취를 감수하며 알코올에서 쾌감을 찾을 이유가 줄어든 셈이다.
켄트 베리지 미국 미시간대 심리학과 교수는 '원하기(wanting)'와 '좋아하기(liking)'를 구분하면서, 중독적 행동은 실제 즐거움보다 갈망 자체를 강화한다고 설명했다. Z세대는 자신이 진짜 '좋아하는' 것과 단순히 습관적으로 '원하게 된' 것을 냉철하게 구분하는 경향이 있다. 술이 주는 즐거움이 실제보다 과대평가돼 있다는 걸, 데이터와 콘텐츠를 통해 일찍부터 학습한 세대이기도 하다.
여기에 코로나19 팬데믹의 영향도 빼놓을 수 없다. 2020년부터 수년간 집에서 혼자 시간을 보내며 '혼자서도 충분히 즐거울 수 있다'는 경험을 쌓았다. 굳이 타인과 어울리기 위해 술이라는 매개가 필요하지 않다는 사실을 몸으로 배운 것이다.
과거에는 '술 잘 마시는 사람'이 사회적으로 유능하고 어울리기 좋은 사람으로 여겨졌다. 지금은 정반대다. 헬스장을 다니고, 수면 질을 관리하고, 장건강을 챙기는 것이 또래 집단 안에서 '자기관리를 잘하는 사람'의 상징이 됐다. 음주 거부는 더 이상 소심한 행동이 아니라 자기 효능감(self-efficacy)의 표현으로 재정의되고 있는 것이다.
알버트 반두라 미국 스탠퍼드대 심리학과 교수가 제시한 자기 효능감 이론에 따르면, 인간은 자신이 어떤 결과를 스스로 통제할 수 있다고 믿을 때 더 높은 만족감을 느낀다. 음주를 거부하는 행동은 단순한 금욕이 아니라, '내 몸과 시간을 내가 결정한다'는 강한 자기 효능감의 발현이다. 소셜미디어에서 논알코올 음료 리뷰와 '소버 큐리어스(Sober Curious, 술 없는 삶을 탐색하는 트렌드)' 콘텐츠가 폭발적으로 늘어나는 것도 이 심리와 맞닿아 있다.
흥미로운 점은 이들이 술을 '악'으로 규정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내 몸에 맞지 않아서', '다음 날 컨디션이 중요해서'라는 개인적 이유를 든다. 도덕적 판단이 아닌 실용적 선택으로 음주 여부를 결정하는 것, 이것이 Z세대 절주 문화의 핵심이다.
술자리 문화가 약해지면서 걱정하는 목소리도 있다. '어떻게 사람들과 친해지냐'는 것이다. 그런데 Z세대는 이미 술 없이 관계를 쌓는 방법을 찾아냈다. 취향 기반 모임, 러닝 크루, 독서 클럽, 방탈출 그룹. 공통의 활동을 통해 연결되는 방식이 술자리를 빠르게 대체하고 있다.
로빈 던바 영국 옥스퍼드대 실험심리학과 명예교수는 인간이 진정한 유대감을 쌓으려면 함께하는 신체적 경험이 필요하다고 설명했다. 중요한 건 '술'이 아니라 '함께하는 경험' 자체였던 셈이다. 달리기를 같이 하고, 수업을 같이 듣고, 게임을 같이 하는 것도 뇌에서는 충분한 사회적 유대로 처리된다.
당신도 모임 자리에서 '한 잔쯤은 해야 하나' 고민한 적이 있다면, 오늘부터는 조금 다르게 생각해도 좋다. 논알코올 음료를 손에 들고도 충분히 웃고, 이야기하고, 연결될 수 있다. Z세대가 이미 증명하고 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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