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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심리학신문=편집부 ]
30년을 함께 살았는데 이제 와서 헤어진다고? 주변에서 그런 말을 들을 때마다 묘한 감정이 드는 사람이 많다. 안타깝기도 하고, 한편으로는 '나라면 어떻게 했을까' 하는 생각도 스친다.
미국 CNN이 최근 한국과 일본의 황혼이혼 증가 현상을 집중 조명하며 '실패가 아닌 새로운 출발'이라고 표현했다. 수십 년을 함께한 부부가 노년에 이르러 이별을 선택하는 이유, 심리학은 그 안에서 무엇을 발견했을까.
통계청에 따르면 2023년 기준 혼인 지속 기간 20년 이상인 부부의 이혼 건수는 전체 이혼의 37.1%를 차지했다. 10년 전만 해도 25%대였던 수치가 빠르게 올라가고 있다. 단순히 참을성이 줄었다는 이야기가 아니다.
로라 카스텐슨 미국 스탠퍼드대 심리학과 교수는 '사회정서적 선택이론'을 통해 이 현상을 설명한다. 사람은 남은 시간이 많다고 느낄 때는 새로운 관계를 넓히려 하지만, 시간이 유한하다고 인식하는 순간부터는 의미 있는 관계에만 집중하려는 동기가 강해진다는 이론이다. 수명이 늘면서 60대 이후에도 20~30년이라는 긴 시간이 남게 됐고, 그 시간을 어떻게 보낼지 진지하게 고민하는 사람들이 많아졌다.
결국 황혼이혼을 결심하는 많은 사람들은 관계에 지쳐서가 아니라, 남은 삶을 더 주체적으로 살고 싶다는 욕구에서 출발하는 경우가 적지 않다. 심리학자들은 이를 '자기결정성 회복'이라는 개념으로 설명한다.
많은 황혼이혼이 자녀의 독립과 맞닿아 있다. 아이들이 성인이 되고 집을 떠나는 순간, 부부는 어쩌면 처음으로 오롯이 두 사람만의 관계를 마주한다. 윌리엄 도허티 미국 미네소타대 가족사회과학과 교수는 이 시기를 '빈둥지 증후군 이후의 관계 재평가 단계'라고 부른다. 아이라는 공동의 목표가 사라진 자리에서 우리가 진짜 서로를 좋아하는지 묻게 된다는 것이다.
특히 여성의 황혼이혼 결심에는 경제적 독립이 중요한 배경으로 작용한다. 국민건강보험공단의 2022년 자료에 따르면 황혼이혼을 청구한 당사자의 58.3%가 여성이었다. 사회생활 경험이 있고 노후 자산이 일정 부분 확보된 여성일수록 관계 지속 여부를 스스로 선택할 수 있다는 자신감이 커진다고 전문가들은 분석한다.
심리학에서는 이를 '학습된 무력감의 탈피'로 해석하기도 한다. 오랜 시간 관계에서 자신의 목소리를 내지 못하던 사람이 어느 순간 '이제는 달라질 수 있다'는 자각에 이르는 과정이다.
황혼이혼이 무조건 행복을 보장하지는 않는다. 실제로 이혼 이후 노년기 삶의 만족도는 개인차가 크다. 데브라 웨이스버그 미국 조지워싱턴대 심리학과 교수팀이 2019년 60세 이상 이혼 경험자 847명을 대상으로 진행한 연구에서는, 이혼 후 사회적 관계망을 새롭게 구축한 집단은 삶의 만족도가 이혼 전보다 평균 22% 높아진 반면, 고립된 채 지낸 집단은 우울 증상이 이혼 전보다 31% 악화됐다.
결국 황혼이혼 이후의 삶을 결정하는 핵심 변수는 '관계의 재구성' 능력이다. 배우자라는 단 하나의 관계에 의존하던 삶에서 벗어나, 친구·취미·지역사회 등 다양한 연결망을 스스로 만들어낼 수 있는 사람일수록 이혼 이후의 삶이 풍요로워진다는 것이다.
반면 황혼이혼을 고려하기 전에 전문적인 부부상담을 받아보는 것도 중요하다고 전문가들은 강조한다. 한국건강가정진흥원에 따르면 부부상담을 6회 이상 받은 중장년 부부의 관계 개선율은 64.7%에 달했다. 이혼이 해답인지, 아니면 관계 재정립이 가능한지 충분히 탐색하는 시간이 필요하다.
황혼이혼을 꿈꾸는 사람이든, 오랜 관계를 지속하고 싶은 사람이든 심리학이 공통으로 권하는 것이 있다. 바로 '나는 지금 무엇을 원하는가'라는 질문을 스스로에게 던져보는 것이다. 관계의 방향을 결정하기 전에, 자신의 필요와 감정을 먼저 이해하는 것이 출발점이라고 전문가들은 말한다.
배우자와 오래 살다 보면 상대의 감정보다 내 감정이 더 낯설어지는 순간이 온다. 오늘 저녁, 일기 한 줄이라도 좋다. '요즘 나는 무엇이 불편하고, 무엇이 행복한가'를 솔직하게 적어보는 것이 어떨까. 그 작은 질문이 당신의 다음 선택을 훨씬 선명하게 만들어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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