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부

[한국심리학신문=편집부 ]
유튜브나 틱톡을 보다가 나도 모르게 피식 웃은 적 있는가. 누군가를 비웃거나 특정 집단을 조롱하는 영상인데도 '그냥 웃긴 거잖아'라고 혼자 납득하고 넘겼다면, 당신은 이미 혐오 콘텐츠의 심리적 구조 안에 들어와 있는 것이다.
혐오는 더 이상 어두운 뒷골목의 언어가 아니다. 숏폼 영상, 커뮤니티 밈, 유머 게시판 속에 스며든 혐오는 '웃음'이라는 포장지를 두르고 매일 수천만 명의 피드에 등장한다. 왜 우리는 나쁜 줄 알면서도 웃는 걸까. 심리학은 이 불편한 질문에 꽤 냉정한 답을 내놓는다.
심리학에는 '우월성 이론(Superiority Theory)'이라는 개념이 있다. 17세기 철학자 토머스 홉스가 처음 체계화한 이 이론은, 인간이 타인의 실수나 결함을 목격했을 때 자신이 더 낫다는 느낌을 받으며 웃음이 유발된다고 설명한다. 조롱과 희화화가 웃음을 만들어내는 기제는 바로 이 '순간적 우월감'에 있다.
피터 맥그로 미국 콜로라도대 심리학과 교수는 2010년 발표한 '양성 위반 이론(Benign Violation Theory)' 연구에서 유머가 성립하는 조건을 분석했다. 그는 '규범이나 도덕이 침범당하지만 동시에 심각하지 않게 느껴질 때' 웃음이 터진다고 밝혔다. 혐오 콘텐츠가 '그냥 웃긴 거'로 소비되는 이유가 바로 여기 있다. 피해자와 거리가 멀수록, 가해 집단과 내가 가까울수록 그 침범은 '가볍게' 느껴진다.
문제는 이 쾌감이 반복될수록 역치가 높아진다는 것이다. 처음에는 가벼운 비하 표현에도 불편함을 느끼던 사람이 점점 더 강도 높은 혐오 콘텐츠를 자연스럽게 소비하게 된다. 뇌의 보상 회로가 조롱에서 오는 웃음을 '보상'으로 학습하는 탈감작(Desensitization) 현상이 일어나기 때문이다.
윌리엄 브래디 미국 예일대 심리학과 연구원이 2017년 SNS 게시물 약 56만 건을 분석한 연구에 따르면, 도덕적 감정이나 집단 정체성을 자극하는 단어가 포함된 게시물은 리트윗 수가 평균 20% 더 높았다. 플랫폼의 알고리즘은 감정 반응이 강한 콘텐츠를 더 많이 노출시키도록 설계돼 있고, 혐오와 분노는 그 조건을 가장 잘 충족하는 감정이다.
헨리 타지펠 전 영국 브리스톨대 사회심리학과 교수가 제안한 '사회 정체성 이론(Social Identity Theory)'도 혐오 콘텐츠의 확산을 설명하는 데 핵심적이다. 사람은 자신이 속한 내집단(in-group)에 대한 긍정적 인식을 유지하기 위해 외집단(out-group)을 폄하하려는 심리적 경향이 있다. 혐오 콘텐츠에 좋아요를 누르고 공유하는 행위는 단순한 공감이 아니라 '나는 저 집단이 아니다'라는 정체성 확인 의식과 같다.
더 골치 아픈 것은 이 과정이 대부분 무의식적으로 일어난다는 점이다. 조나단 하이트 미국 뉴욕대 스턴경영대학원 교수는 저서 '바른 마음(The Righteous Mind)'에서 인간의 도덕적 판단은 직관이 먼저이고 이성은 그 뒤를 뒤따른다고 설명했다. 혐오 콘텐츠가 '풍자'나 '표현의 자유'로 합리화되는 순간이 바로 이 과정이다.
혐오 콘텐츠가 퍼지는 또 다른 동력은 '방관자 효과(Bystander Effect)'의 온라인 버전이다. 댓글창에 수천 명이 함께 웃고 있다는 사실 자체가 '이 정도는 괜찮다'는 사회적 허가처럼 작동한다. 심리학에서는 이를 다원적 무지(Pluralistic Ignorance)라고 부른다. 혼자라면 불편했을 콘텐츠도 다수가 반응하면 개인의 불쾌감이 희석되고, 침묵은 곧 동조로 해석된다.
2022년 미국 퓨 리서치 센터가 성인 5079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조사에서 응답자의 41%가 온라인에서 괴롭힘이나 혐오 표현을 목격했을 때 개입하지 않은 경험이 있다고 답했다. 이유로는 '상황이 더 나빠질 것 같아서(38%)'와 '나 혼자 뭘 해봤자(31%)'가 가장 많았다. 혐오 콘텐츠의 피해는 개인에게 가해지지만, 그것을 가능하게 하는 구조는 침묵하는 다수가 만들어낸다.
중요한 것은 이 '구경'이 무해하지 않다는 점이다. 나오미 아이젠버거 미국 UCLA 심리학과 교수의 연구에 따르면, 혐오 표현에 지속적으로 노출된 대상 집단은 사회적 배제와 동일한 수준의 심리적 고통을 경험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웃음이 소비되는 동안 누군가는 실제로 다치고 있는 것이다.
다행히도 뇌는 학습한 것을 다시 학습할 수 있다. 마음챙김 기반 인지치료(MBCT)를 연구해온 존 티즈데일 전 영국 의학연구협의회 인지신경과학부 연구원은 반복적 노출이 감정 반응 패턴을 형성하지만, 의식적 주의(attention) 훈련을 통해 이를 바꿀 수 있다고 설명했다. 즉, 혐오 콘텐츠에 무감각해졌다면, 의도적인 노출 조절로 민감성을 회복할 수 있다는 뜻이다.
오늘 당장 어렵지 않은 것부터 시작해볼 수 있다. 피식 웃고 나서 '이게 누구를 향한 웃음이었지?'라고 한 번만 물어보는 것이다. 불편함이 느껴졌는데도 넘긴 콘텐츠가 있다면 '관심 없음' 버튼 하나를 누르는 것도 충분하다. 내 피드는 내가 보내는 반응으로 조금씩 달라지고, 그렇게 달라진 피드는 내 감각을 조금씩 되살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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