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부

[한국심리학신문=편집부 ]
열심히 공부하고, 스펙을 쌓고, 취업도 했다. 그런데 왜 이리도 막막할까. 일을 하면 할수록 내 집 마련은 더 멀어지는 것 같고, 결혼과 출산은 감히 상상조차 하기 어렵다. '이 나이에 내가 뭘 이루었나'라는 생각이 밤마다 찾아온다.
최근 동아일보 보도에 따르면 청년층의 27.8%가 '부동산 및 주거 불안정'을 우리 사회의 가장 큰 문제로 꼽았고, 일반 국민보다 미래를 더 비관적으로 바라보는 것으로 나타났다. '20년 뒤 한국이 지금보다 나쁠 것'이라는 응답도 청년층에서 두드러졌다. 단순한 불만이 아니다. 심리학은 이것을 '학습된 무력감'이라고 부른다.
마틴 셀리그먼 미국 펜실베이니아대 심리학과 교수는 1967년 실험에서 전기충격을 피할 수 없는 환경에 반복 노출된 개들이 탈출 기회가 생겨도 시도조차 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그는 이를 '학습된 무력감(learned helplessness)'이라 명명했다. 이후 수십 년간의 연구를 통해 이 현상이 인간에게도 동일하게 나타난다는 사실이 증명됐다.
문제는 반복적인 실패 경험이 아니라 '구조적으로 바꿀 수 없다'는 인식이 핵심이라는 점이다. 열심히 저축해도 집값 오르는 속도를 따라잡지 못하고, 좋은 직장에 들어가도 안정적인 미래가 보장되지 않는 경험이 반복되면 뇌는 점차 '해봤자 소용없다'는 회로를 강화한다. 이것이 냉소와 무기력으로 굳어지는 것이다.
셀리그먼 교수팀이 2019년 성인 2400명을 대상으로 진행한 연구에서 학습된 무력감을 경험한 집단은 그렇지 않은 집단보다 우울증 발병 확률이 2.3배 높았고, 새로운 도전을 시도하는 빈도는 41.5% 낮은 것으로 나타났다. 지금 많은 청년들이 겪고 있는 감정의 정체가 바로 이것이다.
레온 페스팅거 미국 스탠퍼드대 심리학과 교수가 1954년 제안한 '사회비교이론'에 따르면 인간은 자신의 상태를 평가할 때 자연스럽게 타인과 비교한다. 문제는 SNS 환경이 이 비교 대상을 무한대로 넓혀놓았다는 것이다. 예전에는 동네 친구나 직장 동료와 비교했다면, 지금은 같은 나이에 강남 아파트를 산 누군가, 30대에 법인을 차린 누군가와 매일 자신을 비교하게 된다.
에이미 오르벤 영국 옥스퍼드대 실험심리학과 연구원팀이 2022년 발표한 연구에서 하루 3시간 이상 SNS를 사용하는 청년층은 그렇지 않은 집단보다 '미래에 대한 비관적 전망'을 가질 확률이 33.7% 높았다. 특히 '상향 비교', 즉 자신보다 잘나가는 타인과 끊임없이 비교할수록 자존감은 낮아지고 무력감은 커졌다. 지금 내 삶이 나쁜 게 아닌데도 나쁘게 느껴지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더 무서운 것은 이 비교가 의식적으로 이루어지지 않는다는 점이다. 릴스 한 편, 인스타그램 스토리 하나를 스치듯 봤을 뿐인데 뇌는 이미 '저 사람 대비 나는 뒤처졌다'는 신호를 처리하고 있다. 무의식적 상향 비교가 누적될수록 만성적인 불안과 미래 비관으로 이어지는 것이다.
심리학에서 '내적 통제 소재(internal locus of control)'란 내가 노력하면 결과를 바꿀 수 있다는 믿음을 의미한다. 반대로 '외적 통제 소재'는 세상이 나를 좌우한다는 인식이다. 줄리안 로터 미국 코네티컷대 심리학과 교수의 연구에 따르면 내적 통제 소재가 높은 사람일수록 심리적 안녕감이 높고, 역경 앞에서도 포기하지 않는 경향이 강했다.
그런데 집값은 내가 저축하는 속도보다 빠르게 오르고, 취업 문은 스펙과 관계없이 좁아지며, 경기 침체는 개인의 노력과 무관하게 찾아오는 현실에서 청년들의 내적 통제 소재는 점점 약해지고 있다. '어차피 금수저가 아니면 안 돼', '노력해도 구조가 막아놓잖아'라는 생각이 퍼지는 것은 단순한 패배주의가 아니라, 반복된 경험이 만들어낸 합리적 결론처럼 느껴지기 때문이다.
캐롤 드웩 미국 스탠퍼드대 심리학과 교수는 이런 상태에 놓인 사람들에게 '성장 마인드셋'이 필요하다고 강조하지만, 동시에 그 마인드셋이 작동하려면 최소한의 구조적 가능성이 뒷받침되어야 한다고 덧붙인다. 개인의 심리적 회복력만으로는 사회적 벽을 넘을 수 없다는 것을 연구자들도 인정하고 있다.
심리학자들이 공통적으로 권하는 첫 번째 처방은 '통제 가능한 것'과 '통제 불가능한 것'을 분리하는 연습이다. 집값 전체를 내가 바꿀 수는 없지만, 오늘 점심 메뉴, 이번 주 운동 횟수, 이달 저축 목표처럼 내가 결정하고 실행할 수 있는 작은 영역을 의식적으로 늘려가는 것이 무력감을 조금씩 해소하는 데 도움이 된다. 아주 작은 성취 경험이 쌓여 내적 통제 소재를 되살리는 밑거름이 된다.
또 하나, SNS에서의 '상향 비교'를 알아차리는 훈련도 필요하다. 피드를 보다가 갑자기 가슴이 답답해진다면, 그것은 내가 부족해서가 아니라 뇌가 자동으로 비교 작업을 수행하고 있다는 신호다. 오늘 하루 SNS 사용을 한 시간 줄이고, 대신 나보다 조금 먼저 비슷한 어려움을 통과한 주변 사람의 이야기에 귀 기울여 보는 것은 어떨까. 20년 뒤를 걱정하기 전에, 오늘의 나를 조금 더 다정하게 바라보는 것이 먼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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