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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심리학신문=편집부 ]
소개팅 앱에 가입하자마자 묻는 질문이 나이도, 직업도 아니다. '음식 취향은?', '여가 시간엔 주로 뭘 해?', '스트레스 받으면 어떻게 풀어?' 연애·일·음식·여가·사고방식 등 다섯 영역에 걸쳐 50개 문항에 먼저 답해야 상대를 만날 수 있는 앱이 20대 사이에서 빠르게 퍼지고 있다.
결혼 정보 업체 가연은 최근 20대 이용자들 사이에서 '단순 조건 검증을 넘어 시간과 감정을 아끼는 효율적인 만남'을 원하는 트렌드가 뚜렷해졌다고 밝혔다. 한때는 '첫눈에 반하는 것'이 낭만의 상징이었는데, 지금의 젊은 세대는 왜 만나기도 전에 먼저 '검증'부터 하려는 걸까.
심리학에서는 이 현상을 '예측 기반 접근 동기(Predictive Approach Motivation)'로 설명한다. 인간의 뇌는 불확실한 상황에서 에너지를 극도로 소비하는데, 특히 감정적 위험이 큰 상황일수록 사전에 정보를 수집해 손실을 최소화하려는 방향으로 움직인다. 연애는 그 자체로 감정 투자가 큰 영역이기 때문에, 뇌는 본능적으로 '먼저 알고 시작하자'는 전략을 선택한다.
대니얼 카너먼 프린스턴대 심리학과 명예교수의 연구에 따르면, 인간은 이득을 얻는 기쁨보다 손실을 피하는 안도감을 약 2배 더 강하게 느낀다. 이른바 '손실 회피(Loss Aversion)' 현상이다. 연애에 대입하면, '좋은 사람 만날 수 있다는 기대'보다 '또 상처받을지도 모른다는 공포'가 훨씬 더 크게 작동한다는 뜻이다.
결국 소개팅 전 일상 검증이란 낭만의 부재가 아니라, 반복된 감정 소모 끝에 뇌가 만들어낸 자기 보호 장치인 셈이다. 나쁜 것이 아니라, 지친 것이다.
50개 문항으로 비슷한 사람을 먼저 걸러내는 방식에는 심리학적 근거가 있다. '유사성-매력 효과(Similarity-Attraction Effect)'다. 도론 스미더먼 미국 텍사스대 심리학과 교수 연구팀이 2018년 성인 커플 1523쌍을 분석한 결과, 초기 관계 만족도의 약 43%는 가치관과 생활 방식의 유사성에서 비롯됐다. 특히 여가 활용 방식과 갈등 해소 방식이 비슷할수록 관계 지속 기간이 길었다.
그러나 여기에 중요한 반전이 있다. 같은 연구팀이 5년 후 추적 조사를 진행했더니, 초기 유사성이 높을수록 '기대 배신감'도 더 크게 나타났다. 서로 비슷하다고 믿었지만 실제로 함께 살아보니 달랐을 때의 충격이, 처음부터 다름을 인정하고 시작한 커플보다 더 컸던 것이다. '검증된 상대'라는 확신이 오히려 실망의 씨앗이 될 수 있다.
심리학자들은 이를 '이상화 후 환멸(Idealization-Disillusionment Cycle)'이라 부른다. 완벽히 검증했다는 믿음이 강할수록, 상대가 기대와 어긋났을 때 더 크게 흔들린다. 검증이 위로가 아니라 또 다른 위험이 될 수 있다는 뜻이다.
가연 조사에서 20대 이용자들이 '시간과 감정을 아끼는 효율적 만남'을 원한다고 답한 비율은 전체의 67.3%였다. 이 수치는 단순한 트렌드가 아니라 세대 전체의 감정 경제 변화를 보여준다. 심리학에서는 이를 '감정 자원 보호(Emotional Resource Conservation)'라고 부르는데, 관계에서 얻는 보상보다 소모가 클 것이 예측될 때 인간은 아예 시작 자체를 회피하려 한다.
김진세 연세대 의과대학 정신건강의학과 교수는 국내 강연에서 "현재 20대는 관계를 통한 성장보다 관계로 인한 소진을 먼저 경험한 세대"라고 분석한 바 있다. 부모의 이혼, SNS 속 과장된 연애 콘텐츠, 실연 후 무너지는 또래를 지켜본 경험이 누적되면서, 관계를 '위험 자산'으로 인식하게 됐다는 설명이다.
효율적 연애를 추구하는 것 자체가 문제는 아니다. 하지만 '안전이 확인된 관계'만 허용하다 보면, 예상치 못한 설렘이나 낯선 감정이 자라날 틈이 사라진다. 완전히 검증된 사람과의 만남은 편안하지만, 때로는 두근거림 없이 시작되는 관계이기도 하다.
아서 아론 미국 뉴욕주립대 스토니브룩 심리학과 명예교수의 '자기확장이론(Self-Expansion Theory)'에 따르면, 인간이 연애에서 얻는 가장 큰 성장은 예측하지 못했던 새로운 관점과 경험에서 비롯된다. 나와 완전히 다른 방식으로 사는 사람을 만났을 때, 자아가 확장된다는 것이다. 2022년 성인 남녀 842명을 대상으로 한 아론 교수팀의 연구에서는 가치관 유사성이 낮을수록 3년 후 개인의 자기성장 점수가 평균 28.4% 더 높게 나타났다.
검증은 현명한 선택이다. 하지만 50개 문항에 모두 일치하는 사람을 찾는 데만 집중하다 보면, 정작 나와 다르기 때문에 나를 넓혀줄 사람을 놓칠 수 있다. '안 맞는 부분'이 적은 사람이 아니라, '맞춰가고 싶은 마음'이 드는 사람을 찾는 것이 연애의 본질에 더 가깝다.
소개팅 앱의 문항들을 채우면서 '나는 어떤 사람인가'를 되짚어보는 건 분명히 의미 있는 일이다. 다만 그 답이 완벽히 맞는 상대를 거르는 필터가 되기보다, 나를 더 잘 알아가는 출발점이 되면 어떨까. 오늘 앱을 열기 전에 딱 한 가지만 스스로에게 물어보자. '나는 지금 상처가 두려운 건지, 아니면 정말 좋은 사람을 만나고 싶은 건지'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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