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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심리학신문=편집부 ]
피곤한 날 문득 '숲에 가고 싶다'는 생각이 드는 건 단순한 기분 탓이 아니다. 나무 사이를 걷고, 흙냄새를 맡고, 새소리를 듣는 것만으로도 머릿속이 조용해지는 느낌. 그 감각은 꽤 오래간다.
최근 고립과 외로움이 심각한 사회 문제로 떠오르면서, 산림청은 숲을 정신건강을 지키는 공공자산으로 적극 활용하겠다고 밝혔다. 그런데 실제로 숲은 우리 마음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 걸까. 심리학과 신경과학은 그 답을 꽤 구체적으로 알고 있다.
미국 미시간대학교 심리학과 레이철 카플란 명예교수와 스티븐 카플란 명예교수 부부는 1989년 '주의회복이론(Attention Restoration Theory)'을 제안했다. 핵심은 간단하다. 도시에서 우리가 쓰는 집중력은 의도적으로 애써야 하는 '직접적 주의'인데, 이게 소진되면 피로와 짜증, 우울이 밀려온다는 것이다.
반면 숲이나 자연 속에서는 '매혹(fascination)'이라는 상태가 일어난다. 흔들리는 나뭇잎, 졸졸 흐르는 물소리처럼 힘들이지 않아도 저절로 시선이 머무는 자극들이다. 이 상태에서는 소진된 뇌가 쉬면서 스스로 회복한다. 애쓰지 않아도 집중력이 채워지는 셈이다.
카플란 교수 부부의 연구에 따르면, 자연 환경에 90분 이상 노출된 집단은 도시 환경 집단에 비해 반추적 사고, 즉 같은 걱정을 반복하는 뇌 활동이 유의미하게 감소했다. 2015년 스탠퍼드대학교 그레고리 브랫먼 연구팀이 성인 38명을 대상으로 진행한 실험에서도 자연 속 산책 후 전전두엽 안쪽에 위치한 '반추 관련 부위' 활성도가 도시 산책 집단보다 낮았다.
숲에서 나는 독특한 향기의 정체는 피톤치드다. 나무가 해충과 세균을 막기 위해 분비하는 방어 물질인데, 사람에게는 오히려 이롭게 작용한다. 일본 지바대학교 의학부 미야자키 요시후미 교수 연구팀은 2009년 성인 420명을 대상으로 전국 35개 숲에서 실험을 진행했다. 그 결과 숲 속 산책을 한 집단은 도시 산책 집단과 비교해 코르티솔 수치가 평균 12.4% 낮았고, 교감신경 활동은 7.0% 감소했으며, 자기보고식 불안 점수도 뚜렷하게 낮아졌다.
코르티솔은 스트레스 호르몬이다. 이것이 만성적으로 높으면 수면 장애, 면역력 저하, 우울감으로 이어진다. 숲이 단순히 '기분 좋은 곳'이 아니라 신체 수준에서 스트레스 반응 자체를 낮춰주는 환경이라는 뜻이다.
특히 피톤치드의 주성분인 알파피넨은 후각을 통해 편도체, 즉 뇌의 공포와 불안 처리 중추에 직접 작용한다고 알려져 있다. 향기가 감정에 영향을 주는 가장 빠른 통로가 후각이기 때문이다. 나무 냄새를 맡는 순간 마음이 가라앉는 느낌, 그건 기분 탓이 아니라 실제로 뇌에서 일어나는 일이다.
산림치유는 혼자만의 회복에 그치지 않는다. 영국 에식스대학교 줄스 프리티 교수 연구팀이 2010년 발표한 연구에 따르면, 자연 속에서 함께 걷는 집단 활동은 자존감을 59.8% 향상시켰고, 우울감을 71.8% 감소시키는 데 기여했다. 이를 '그린 엑서사이즈(Green Exercise)'라고 부른다.
혼자 걷는 것도 좋지만, 누군가와 함께 숲을 걸을 때 심리적 효과는 배가된다. 공통된 감각 경험, 즉 같은 바람을 맞고 같은 길을 걷는 일은 굳이 말을 많이 하지 않아도 연결감을 만들어낸다. 오히려 도시의 카페나 식당보다 훨씬 자연스럽게 속 이야기가 나오는 경우가 많다. 심리 상담 현장에서도 실내 면담 대신 함께 걸으며 진행하는 '워킹 세라피(Walking Therapy)'가 주목받는 이유가 여기 있다.
산림청은 현재 전국에 치유의 숲 27개소, 산림치유 프로그램 운영 기관 100여 곳을 운영하고 있다. 우울감이나 번아웃을 경험하는 직장인, 사회적 고립감을 느끼는 중장년층을 대상으로 한 프로그램도 확대되는 추세다.
거창한 등산이 아니어도 된다. 신경과학자들은 하루 20분, 나무가 있는 공원을 천천히 걷는 것만으로도 코르티솔 수치를 낮추고 기분을 개선하는 효과가 나타난다고 말한다. 2019년 미국 미시간대학교 메리 캐럴 헌터 교수 연구팀이 성인 36명을 대상으로 진행한 연구에서, 주 3회 20~30분 자연 속 산책을 8주간 이어간 집단의 코르티솔 농도는 이전보다 21.3% 감소했다.
스마트폰을 주머니에 넣고, 이어폰을 빼고, 그냥 걷는 것. 오늘 점심시간에 회사 근처 가로수길을 한 바퀴 돌아보는 것만으로도 시작이다. 머릿속이 너무 시끄러운 날, 숲은 아무 말도 하지 않고 가장 조용하게 우리 곁에 있어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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