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부

[한국심리학신문=편집부 ]
지난 29일, 한 온라인 커뮤니티에 짧은 글 하나가 올라왔다. '무주택자의 최후의 선택이었던 주식투자 실패로 궁지에 몰려있다'는 내용이었다. 반도체주가 연일 급락하며 투자 심리가 바닥까지 치닫던 바로 그 시점이었다. 그러나 불과 이틀 뒤, 증시는 급반등했다.
안타깝게도 그 글은 끝내 회수되지 않았다. 극도의 재정적 공황 상태에 놓인 사람이 왜 그 순간 모든 것을 포기하고 싶어지는가. 심리학은 이 질문에 명확한 답을 내놓고 있다.
노벨 경제학상 수상자인 대니얼 카너먼 미국 프린스턴대 심리학과 명예교수는 '손실 회피 이론'을 통해 인간이 같은 금액의 이익보다 손실을 약 2.5배 더 크게 느낀다는 사실을 밝혔다. 1000만 원을 버는 기쁨보다 1000만 원을 잃는 고통이 두 배 이상 강렬하다는 것이다. 코스피가 38일 만에 39% 급락한 최근의 장세에서, 개인 투자자들이 경험한 심리적 타격은 단순한 숫자 이상이었다.
더 심각한 문제는 손실이 뇌의 위협 감지 시스템을 직접 건드린다는 점이다. 사우샤나 렝 미국 예일대 신경과학과 교수팀이 2022년 발표한 연구에 따르면, 재정적 손실을 경험할 때 편도체가 활성화되는 패턴이 실존적 위협을 인지할 때의 반응과 거의 동일하게 나타났다. 뇌는 돈을 잃는 것을 생존의 위기로 받아들이는 것이다.
특히 '마지막 선택'으로 주식에 뛰어든 무주택자나 빚을 내어 투자한 사람들에게 손실은 단순한 재산 감소가 아니다. 그것은 미래 자체가 사라지는 감각으로 다가온다. 심리학에서는 이를 '재정적 외상(financial trauma)'이라고 부른다.
극도의 스트레스 상황에서 인간의 사고는 급격히 좁아진다. 매슈 허텐로처 미국 코넬대 심리학과 교수가 2016년 성인 248명을 대상으로 진행한 연구에서, 심각한 재정적 압박을 경험하는 사람들은 인지 능력이 평균 13포인트 저하되었고 문제 해결 능력이 현저히 떨어지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것이 바로 '터널 시야(tunnel vision)' 현상이다.
터널 시야 상태에 빠지면 사람은 현재의 고통만 보인다. '이틀 뒤 반등'이라는 가능성은 그 터널 안에서 완전히 보이지 않게 된다. 극단적인 선택을 고려하는 사람들이 '지금이 가장 최악'이라고 느끼는 것은 사실이지만, 동시에 그 판단 자체가 스트레스로 인해 왜곡된 상태라는 점을 외부에서 알려주는 사람이 없으면 스스로 깨닫기 어렵다.
더불어 손실 이후 나타나는 '매몰 비용 효과'도 상황을 악화시킨다. 이미 잃은 돈을 회복하려는 심리가 더 큰 위험을 감수하게 만들고, 연속적인 손실이 자기 효능감을 완전히 무너뜨린다. '나는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학습된 무기력이 자리를 잡으면, 상황을 벗어날 행동 자체를 떠올리지 못하게 된다.
주목할 점은 이 글이 온라인 커뮤니티에 올라왔다는 사실이다. 정신건강 연구자 존 조이너 미국 플로리다주립대 심리학과 교수는 극단적 선택에 앞서 온라인에 고통을 표출하는 행위가 '양가적 신호(ambivalent signal)'라고 설명한다. 완전히 포기한 상태라면 오히려 아무 말도 하지 않는 경우가 많다는 것이다. 즉, 글을 올리는 행위 자체가 '누군가 붙잡아 달라'는 무의식적 요청일 수 있다.
실제로 정부도 이 문제를 인식하고 있다. 보건복지부는 최근 자살 위험 대응 정책을 전방위로 확대하며 소셜미디어와 온라인 커뮤니티를 통한 조기 감지 시스템 강화를 추진 중이다. 하지만 현실에서 댓글로 달리는 '힘내세요'는 터널 속에 있는 사람에게 충분히 닿지 못할 때가 많다.
한국자살예방협회에 따르면 재정적 위기는 극단적 선택의 주요 위험 요인 중 하나로 꼽힌다. 주식 손실, 부채, 실직이 복합적으로 겹칠 때 위험도는 급격히 상승한다. 최근의 증시 폭락이 단순한 경제 뉴스가 아닌 이유가 여기에 있다.
재정적 손실로 무너진 사람에게 '다 잘될 거야'라는 말은 오히려 공감받지 못했다는 느낌을 줄 수 있다. 심리학자들은 대신 '지금 많이 힘들겠다'는 감정의 인정이 먼저여야 한다고 말한다. 고통을 해결해 주려 하기 전에, 그 고통이 실제로 존재한다는 것을 함께 인정해 주는 것이 터널 시야를 조금씩 여는 열쇠다.
만약 나 자신이 그 터널 안에 있다면, 지금 이 순간의 판단이 뇌가 극도의 스트레스 상태에서 내린 것임을 기억해주길 바란다. 주식은 이틀 만에 반등했다. 터널은 반드시 끝이 있다. 정신건강 위기상담 전화 1577-0199는 24시간 연결된다. 지금 당장 전화 한 통을 거는 것, 그것이 오늘 할 수 있는 가장 용감한 선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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