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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심리학신문=편집부 ]
한때 전 세계가 그를 '기적의 인간'이라 불렀다. 두 다리를 잃고도 올림픽 트랙을 달린 오스카 피스토리우스. 그러나 2013년 밸런타인데이 새벽, 그는 여자친구 리바 스틴캠프를 총 4발로 쏘아 숨지게 했다. 13년 복역 끝에 출소한 그의 근황이 전해지며 다시 한번 세상이 술렁이고 있다.
우리는 왜 누군가를 영웅으로 만들어 놓고, 그 영웅이 무너졌을 때 그토록 충격을 받는 걸까. 피스토리우스 사건은 단순한 범죄 사건이 아니다. 우리 뇌가 '영웅'을 어떻게 인식하고, 그 인식이 어떻게 판단을 왜곡시키는지를 보여주는 심리학 교과서 같은 사례다.
피스토리우스가 법정에 서던 2013년, 세계 여론은 두 쪽으로 갈렸다. 일부는 그를 여전히 동정했다. '저렇게 대단한 사람이 설마'라는 반응이었다. 이 반응의 정체를 심리학에서는 '후광효과(Halo Effect)'라고 부른다. 한 사람의 긍정적인 면이 다른 모든 영역의 판단까지 물들이는 인지 편향이다.
에드워드 손다이크 미국 컬럼비아대 교육심리학과 교수가 1920년 처음 제시한 이 개념은, 이후 수십 차례 실험으로 검증됐다. 2015년 미국 프린스턴대 알렉산더 토도로프 심리학과 교수 연구팀이 성인 1200명을 대상으로 진행한 실험에서는 사람들이 단 0.1초 만에 타인의 얼굴을 보고 신뢰도와 유능함을 판단하며, 외모가 매력적이거나 사회적 명성이 높을수록 도덕성까지 높게 평가하는 경향이 무려 73.4%에 달했다.
피스토리우스는 후광효과의 조건을 모두 갖추고 있었다. 장애 극복, 국제 무대에서의 성취, 미디어가 만들어낸 '인간 승리'의 서사. 이 모든 것이 뇌의 판단 회로를 흐리게 만든 것이다.
심리학자들은 우리가 영웅을 숭배할 때 뇌에서 독특한 작동 방식이 나타난다고 설명한다. 스콧 배런 코헨 영국 케임브리지대 발달심리병리학과 교수의 연구에 따르면, 사람들은 자신이 존경하는 인물의 행동을 평가할 때 편도체 반응이 약해지면서 도덕적 판단 기능이 일시적으로 둔화된다. 쉽게 말해, 좋아하는 사람의 잘못을 뇌가 의도적으로 축소시킨다는 것이다.
이 현상은 '도덕적 면죄부(Moral Licensing)'와도 연결된다. 누군가 과거에 충분히 선한 일을 했다고 여겨지면, 이후의 나쁜 행동도 '그럴 만한 이유가 있겠지'라고 합리화하게 된다. 피스토리우스의 팬들이 재판 내내 법정 밖에서 응원을 보낸 것, 일부 언론이 피해자 스틴캠프보다 그의 심리 상태에 더 많은 지면을 할애한 것, 이 모두가 도덕적 면죄부가 사회 전체에 작동한 결과다.
이 편향은 비단 유명인에게만 적용되지 않는다. 주변의 '능력 있고 좋은 사람'이 누군가에게 상처를 줬을 때, 우리는 종종 피해자보다 가해자의 편을 먼저 드는 자신을 발견한다. 그것이 후광효과와 도덕적 면죄부가 일상에서 작동하는 방식이다.
피스토리우스 사건이 세상을 그토록 충격에 빠뜨린 이유는, 단순히 '유명인의 범죄'이기 때문만은 아니다. 우리 뇌가 그에게 투자한 감정의 양이 어마어마했기 때문이다. 조나단 헤이트 미국 뉴욕대 스턴경영대학원 심리학과 교수는 사람들이 영웅 서사에 도덕적 경외감(Moral Elevation)을 느낄 때, 뇌의 보상 회로가 강하게 활성화된다고 설명한다. 이 감정은 마치 사랑에 빠지는 것과 유사한 신경 반응을 일으킨다.
그리고 그 영웅이 무너지면? 반대급부의 배신감도 그만큼 강렬하다. 2022년 미국 캘리포니아대 로스앤젤레스(UCLA) 심리학과 매튜 리버먼 교수 연구팀이 성인 850명을 대상으로 진행한 뇌 영상 연구에서는, 존경하던 인물의 도덕적 실패를 접했을 때 사회적 고통을 담당하는 뇌 부위인 배측 전방대상피질이 신체적 통증과 동일한 수준으로 반응한다는 사실이 확인됐다. 영웅의 추락은 말 그대로 '아프다'.
피스토리우스를 응원했던 수많은 팬이 그 이후 경험한 혼란, 분노, 수치심도 이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다. 그들은 그를 잃은 것이 아니라, 그에게 투영한 '자신이 믿고 싶었던 세계'를 잃은 것이다.
피스토리우스 사건은 우리에게 불편한 질문을 던진다. '나는 누구를 영웅으로 만들고 있는가?' 그리고 '그 사람의 잘못 앞에서도 나는 공정하게 판단할 수 있는가?' 심리학에서는 이런 편향을 줄이기 위해 '탈후광화(De-haLOing)'라는 개념을 제안한다. 존경하는 대상을 한 가지 면이 아닌 여러 면에서 입체적으로 바라보는 훈련이다.
실제로 인지행동치료(CBT) 분야 연구에서는 특정 인물에 대한 이상화(idealization)를 줄이는 것만으로도 실망과 배신감으로 인한 심리적 충격이 평균 41.3% 감소한다는 결과가 나오기도 했다. 누군가를 좋아하되, 그를 '완벽한 존재'로 만들지 않는 것. 그것이 영웅 숭배가 가져오는 심리적 함정에서 자신을 지키는 방법이다.
문득 당신의 마음속 '영웅'이 떠오른다면, 오늘 그 사람의 평범하고 불완전한 면을 한 번쯤 떠올려 보는 건 어떨까. 완벽하지 않아도 여전히 존경할 수 있고, 그편이 훨씬 건강한 관계의 시작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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