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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심리학신문=편집부 ]
퇴근하고 지친 몸을 소파에 눕히면서 자연스럽게 손이 가는 것이 있다. 드라마다. 현실에서는 꾹 참았던 말을 극 중 주인공이 시원하게 내뱉는 장면을 보며 속이 뻥 뚫리는 느낌, 한 번쯤 경험해 본 적 있지 않은가.
최근 AI로 제작된 드라마 '김부장'이 화제를 모으면서, 제작자 인터뷰에서 흥미로운 말이 나왔다. "대중은 드라마를 통해 현실의 답답함을 푼다"는 것이다. 단순한 제작자의 직감 같아 보이지만, 사실 이 말에는 꽤 깊은 심리학적 근거가 있다.
드라마 속 주인공이 상사에게 통쾌하게 한마디 날리는 장면을 보면서 쾌감을 느끼는 것은 단순한 감정이입이 아니다. 마르코 야코보니 미국 UCLA 신경과학과 교수의 연구에 따르면, 인간의 뇌에는 타인의 행동을 관찰할 때 마치 자신이 직접 그 행동을 하는 것처럼 반응하는 '거울 뉴런(mirror neuron)'이 존재한다. 남이 속 시원하게 말하는 장면을 보기만 해도, 내 뇌는 비슷한 만족 신호를 받는 셈이다.
이 과정에서 도파민도 함께 분비된다. 드라마 속 정의로운 결말이나 유쾌한 반전이 나올 때 시청자의 뇌는 실제 보상을 받은 것처럼 반응한다. 현실에서 억눌렸던 감정이 스크린을 통해 해소되는 구조다.
심리학에서는 이를 '대리 강화(vicarious reinforcement)'라고 부른다. 내가 직접 하지 않아도 다른 사람의 성공이나 쾌감을 목격하는 것만으로 심리적 보상을 얻는 현상이다. 직장에서 꾹 참았던 하루를 마치고 '김부장' 같은 캐릭터를 찾게 되는 것도, 뇌가 이 보상 회로를 열심히 찾고 있기 때문이다.
사실 드라마나 이야기를 통해 감정을 해소한다는 개념은 고대 그리스 철학자 아리스토텔레스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그는 비극을 감상함으로써 관객 내면에 쌓인 두려움과 연민이 정화된다는 '카타르시스(catharsis)' 이론을 제시했다. 현대 심리학은 이 고대 개념을 실증 연구로 뒷받침한다.
라몬 플로레스 미국 텍사스대 심리학과 부교수 연구팀이 2022년 성인 820명을 대상으로 진행한 연구에 따르면, 감정적으로 몰입했던 드라마나 영화를 시청한 후 응답자의 67.4%가 일상적 스트레스 수준이 유의미하게 낮아졌다고 보고했다. 특히 '직장 내 갈등'과 '사회적 불평등'을 소재로 한 콘텐츠에서 카타르시스 효과가 가장 강하게 나타났다.
흥미로운 점은 '해피엔딩'보다 '통쾌한 반전'이 있는 콘텐츠가 스트레스 해소에 더 효과적이었다는 것이다. 결국 보는 사람이 원하는 것은 단순한 행복한 결말이 아니라, 현실에서 이루지 못한 '정의 구현'의 대리 경험인 셈이다.
최근 흥행하는 드라마 콘텐츠에는 공통점이 있다. 주인공이 지나치게 비극적이지 않고, 유쾌하고 당당하다는 점이다. 바버라 프레드릭슨 미국 노스캐롤라이나대 심리학과 교수가 제시한 '긍정 정서 확장-구축 이론(Broaden-and-Build Theory)'에 따르면, 긍정적 감정을 경험할 때 인간의 인지 범위가 넓어지고 창의적 사고와 회복 탄력성이 높아진다.
즉, 유쾌한 주인공을 보며 웃고 에너지를 얻은 시청자는 단순히 기분이 좋아지는 데 그치지 않는다. 실제로 다음 날 현실 문제를 다루는 심리적 자원이 더 풍부해진다는 것이다. 콘텐츠 소비가 현실 도피가 아니라 일종의 '심리적 충전'이 될 수 있다는 근거다.
물론 무작정 드라마에 빠져드는 것이 능사는 아니다. 심리학자들은 하루 1~2시간의 '의도적 감상'은 스트레스 회복에 도움이 되지만, 수면을 줄이면서까지 몰아보기를 반복하면 오히려 피로 누적과 정서 불안정으로 이어질 수 있다고 경고한다.
당신이 퇴근 후 드라마에 손이 간다면, 그것은 나약함의 표시가 아니다. 뇌가 스스로 감정 균형을 회복하려는 자연스러운 신호다. 다만 조금 더 의식적으로 즐기면 효과가 달라진다. 시청 전 '오늘 어떤 감정을 풀고 싶은가'를 잠시 생각해 보는 것만으로도, 같은 드라마를 보더라도 얻어가는 심리적 회복감이 크게 달라진다고 프레드릭슨 교수는 설명한다.
오늘 하루 유독 답답하고 억울했던 순간이 있었는가. 그렇다면 오늘 저녁 드라마 한 편을 죄책감 없이 틀어도 좋다. 주인공이 통쾌하게 한마디 날리는 그 장면에서 마음껏 웃어도 괜찮다. 당신의 뇌는 지금 그 순간을 기다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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