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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심리학신문=편집부 ]
어제까지 완벽하게 해내던 일이 오늘 갑자기 안 된다면 어떤 기분일까. 손이 굳고, 머릿속이 하얗게 비어 버리는 느낌. 프로 선수가 수천 번 반복해 온 동작을 무대 위에서 순간 잊어버리는 현상, 이른바 '입스(Yips)'가 또 한 명의 프로 선수를 무너뜨렸다.
한국프로야구 한화 이글스 마무리 투수 김서현이 극심한 제구 난조로 입스 증세를 보이고 있다는 보도가 잇따랐다. 스포츠 팬들은 안타까워하면서도 고개를 갸웃한다. '그렇게 잘 던지던 선수가 왜 갑자기?' 그 이유는 단순한 기술 문제가 아니라 뇌와 심리의 복잡한 합작품이다.
입스는 원래 골프 용어였다. 퍼팅 직전 손이 갑자기 떨리거나 굳어 버리는 현상을 가리키는 말이었는데, 이제는 야구, 농구, 수영, 심지어 연주자와 외과의사에게도 나타나는 '수행 불안의 극단적 형태'로 정의된다. 미국 메이요 클리닉은 입스를 가리켜 '자동화된 기술 동작을 방해하는 신경생리학적 반응'이라고 설명한다.
쉽게 말하면, 오랜 훈련으로 몸에 깊이 새긴 동작이 어느 순간 뇌의 과도한 개입으로 인해 오히려 망가지는 것이다. 처음 야구를 배울 때처럼 '공을 어떻게 잡지? 팔꿈치 각도는?' 하고 의식적으로 생각하게 되는 순간, 10년 넘게 쌓아 온 무의식적 루틴이 무너진다.
데이비드 카슨 미국 플로리다주립대 스포츠심리학과 교수는 입스를 '명시적 모니터링 이론(Explicit Monitoring Theory)'으로 설명한다. 평소 무의식적으로 처리되던 운동 동작을 의식이 지나치게 감시하기 시작하면, 자동화된 신경 회로가 오히려 방해를 받는다는 것이다.
입스의 핵심에는 '편도체 납치(Amygdala Hijack)'가 있다. 위협을 감지하면 즉각 반응하는 편도체가 실패에 대한 공포를 '생존 위협'으로 처리하고, 논리적 판단을 담당하는 전두엽 기능을 순간적으로 차단해 버린다. 실제로 2021년 독일 하이델베르크대 스포츠과학과 연구팀이 골프 선수 48명을 대상으로 한 뇌 영상 연구에서, 입스 증상이 있는 선수들은 퍼팅 직전 편도체 활성도가 정상 선수 대비 평균 62% 높게 나타났다.
더 잔인한 것은 '부정적 강화 루프'다. 한 번 실패하면 다음 시도 전부터 뇌가 '또 실패할 것'이라는 신호를 먼저 보내고, 그 예측이 몸을 긴장시키며 실제 실패로 이어진다. 실패가 실패를 부르는 악순환이 신경 회로에 각인되는 것이다. 김서현 선수처럼 마무리 투수는 마운드에 오를 때마다 그 순간의 압박이 극대화되기 때문에 입스에 더욱 취약하다.
카슨 교수는 이를 두고 '역설적 의도(Paradoxical Intention)'라고도 부른다. '절대 실수하면 안 된다'고 강하게 의식할수록 뇌는 오히려 실수 시나리오를 더 선명하게 그려낸다. 통제하려는 의지가 강할수록 통제력은 더 빨리 무너진다.
다행히도 입스를 극복한 선수들의 사례는 적지 않다. 미국 메이저리그의 스티브 블라스, 릭 앤키엘이 대표적이다. 이들의 공통점을 연구한 마크 보르쉬 미국 인디애나대 운동심리학과 교수는 2019년 논문에서 입스 극복 선수 23명을 분석한 결과 '재구조화된 주의 집중 전략'이 핵심이었다고 밝혔다. 동작 자체에 집중하는 게 아니라 호흡, 글러브 감촉, 타자의 눈처럼 외부의 구체적 대상에 주의를 돌리는 방식이다.
또 하나의 열쇠는 '자기 연민(Self-Compassion)'이다. 크리스틴 네프 미국 텍사스대 교육심리학과 교수의 연구에 따르면, 실수 후 자신을 가혹하게 비판하는 선수일수록 수행 불안이 지속되고 회복이 느린 반면, 실수를 자연스러운 과정으로 받아들이는 선수는 코르티솔 수치가 더 빠르게 정상화되는 것으로 나타났다. '잘해야 한다'는 압박을 내려놓는 것이 오히려 잘 던지는 지름길인 셈이다.
심리 기법 중에서는 '루틴 재설계'와 '마음챙김(Mindfulness)' 훈련이 효과적으로 검증돼 있다. 2022년 영국 스포츠의학저널에 실린 연구에서 입스를 경험한 운동선수 61명 중 8주간 마음챙김 기반 스트레스 감소 프로그램(MBSR)에 참여한 그룹은 수행 불안 지수가 41.3% 감소했고, 이 중 67%가 6개월 내 경기 복귀에 성공했다.
입스는 스포츠 선수만의 전유물이 아니다. 중요한 발표 앞에서 갑자기 말문이 막히거나, 수십 번 해온 운전인데 동승자가 생기면 핸들이 뻣뻣해지는 느낌, 평소엔 잘 치던 피아노가 연주회 무대에서 손가락이 굳어 버리는 경험, 이 모두가 입스의 일상 버전이다.
곽금주 서울대 심리학과 교수는 이런 현상을 두고 '수행 불안은 실력 부족의 증거가 아니라 오히려 그 일을 얼마나 중요하게 여기는지의 증거'라고 말한다. 즉, 입스는 실패자의 징표가 아니라 진심으로 잘하고 싶은 사람이 치르는 일시적인 마음의 비용인 것이다.
김서현 선수가 다시 마운드에 서는 날을 기다리며, 우리도 각자의 '입스' 앞에서 스스로에게 조금 더 다정해지는 것은 어떨까. '이번 한 번만 잘해야 해'라는 압박 대신, '오늘도 그냥 해보자'고 가볍게 내딛는 그 한 걸음이 굳어 있던 뇌를 다시 풀어주는 시작이 될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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