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부

[한국심리학신문=편집부 ]
누군가 팔짱을 꼈다. 그게 전부였다. 그런데 온라인은 순식간에 들끓었고, 한 사람의 이미지는 며칠 만에 산산조각 났다. 아이브 장원영의 이른바 '팔짱 사건', 손담비의 호텔 해프닝, 아이유의 인스타그램 논란까지. 최근 연예계에서는 아무리 봐도 이해하기 어려운 공격들이 끊이지 않는다.
이른바 '억지 까기', 줄여서 '억까'다. 아무 잘못도 없는 행동을 악의적으로 해석하고 집단적으로 몰아세우는 이 현상, 도대체 왜 벌어지는 걸까. 심리학자들은 이 안에서 꽤 복잡한 인간의 본성을 발견한다.
억까의 가장 깊은 뿌리는 '도덕적 우월감(moral superiority)'에서 찾을 수 있다. 미국 스탠퍼드대 심리학과 크리스틴 네프 교수의 연구에 따르면, 사람들은 타인의 결점을 지적할 때 자신의 자존감이 일시적으로 상승하는 경험을 한다. 타인을 끌어내림으로써 자신이 올라서는 느낌, 심리학에서는 이를 '하향 사회비교(downward social comparison)'라고 부른다.
문제는 이 쾌감이 짧고 강렬하다는 점이다. 마치 당분이 많은 음식처럼 금세 허기가 찾아오고, 또 다른 먹잇감을 찾게 된다. 2022년 미국 심리학회(APA) 저널에 실린 연구에서는 온라인에서 타인을 비난하는 행위가 뇌의 보상 회로를 자극해 반복 행동을 유도한다는 사실이 확인됐다. 비난이 '습관'이 되는 이유다.
특히 유명인은 이 구도에서 더욱 취약하다. 평범한 사람보다 훨씬 높은 곳에 있다고 여겨지기 때문에, 그를 끌어내릴 때의 심리적 보상감은 배가된다. '저 사람도 별거 없네'라는 확인이 주는 안도감인 셈이다.
개인의 심리만으로는 억까 현상의 규모를 설명하기 어렵다. 여기서 중요한 개념이 '집단 극단화(group polarization)'다. 폴란드 출신 사회심리학자 세르주 모스코비치가 1969년 처음 정의한 이 개념은, 비슷한 생각을 가진 사람들이 모이면 개인의 의견보다 훨씬 더 극단적인 방향으로 집단의 결론이 쏠린다는 것을 설명한다.
온라인 커뮤니티와 SNS는 이 집단 극단화의 완벽한 배양지다. 영국 런던정경대(LSE) 사회심리학과 클리퍼드 스토트 교수 연구팀이 2021년 소셜미디어 이용자 2400명을 분석한 결과, 부정적 감정을 담은 게시물은 긍정적 게시물보다 2.3배 빠르게 확산되는 것으로 나타났다. 분노와 혐오는 바이럴의 연료가 된다.
혼자였다면 절대 내뱉지 않았을 말을, 수천 명이 같은 방향을 향해 달려갈 때는 자연스럽게 내뱉게 된다. 이때 작동하는 또 다른 기제가 '책임 분산(diffusion of responsibility)'이다. '다 같이 하는 거니까 나 하나쯤은 괜찮겠지'라는 심리가 집단 공격의 문턱을 한없이 낮춘다.
화면 앞에 앉아 있을 때 우리의 뇌는 조금 다르게 작동한다. 심리학자 존 서러 미국 뉴욕주립대 스토니브룩 캠퍼스 교수는 이를 '온라인 탈억제 효과(online disinhibition effect)'로 설명했다. 익명성과 비대면이라는 조건이 갖춰지면, 평소라면 사회적 규범이 눌러놓았을 공격성이 표면으로 올라온다는 것이다.
여기에 '탈개인화(deindividuation)' 현상까지 더해진다. 집단 속에 녹아들면 개인의 정체성이 흐릿해지고, 그 집단의 감정과 행동이 곧 자신의 것처럼 느껴진다. 2023년 서울대 심리학과 곽금주 교수 연구팀이 국내 SNS 이용자 800명을 대상으로 진행한 조사에서, 응답자의 61.4%가 온라인에서 부정적 여론에 동조한 경험이 있다고 답했다. 그중 42.7%는 '혼자였다면 하지 않았을 것'이라고 했다.
억까의 피해자인 유명인은 수만 명의 눈앞에서 인격이 해체되는 경험을 한다. 그러나 공격하는 쪽은 그것이 실제 사람에게 가해지는 상처라는 사실을 실감하지 못한다. 화면이라는 거리가 공감 능력을 차단하는 것이다.
억까를 유발하는 감정 중 가장 솔직하게 인정받지 못하는 것이 있다. 바로 '악성 시기심(malicious envy)'이다. 독일 쾰른대 심리학과 니콜라스 뮤라트 교수 연구팀은 2021년 연구에서 시기심을 두 가지로 나눴다. 상대의 성공을 보며 나도 노력하고 싶어지는 '양성 시기심(benign envy)'과, 상대가 그 자리에 있으면 안 된다는 생각에서 비롯된 '악성 시기심'이다. 억까는 전형적으로 후자에서 출발한다.
연구팀이 성인 520명을 대상으로 실험한 결과, 악성 시기심을 강하게 느낀 집단은 상대에 대한 부정적 정보를 의도적으로 찾아 확산시키는 행동을 2.8배 더 많이 보였다. '저 사람이 잘되면 내가 상대적으로 작아지는 것 같다'는 위협감이 공격의 방아쇠를 당기는 셈이다. 특히 자신과 닮은 점이 있거나 비슷한 나이대, 비슷한 환경에 있다고 느끼는 대상일수록 이 시기심은 더 강렬하게 작동한다.
결국 억까는 '저 사람이 나쁜 사람이어야 내 불안이 해소된다'는 무의식적 소망에서 비롯되는 경우가 많다. 상대방의 도덕적 결함을 발견했을 때 느끼는 안도감, 그것이 억까 가담자들이 진짜로 찾고 있는 것일지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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