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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심리학신문=편집부 ]
식사 자리에서도 자꾸 손이 휴대폰으로 간다. 코스피 지수를 확인하고, 뉴스 알림을 누르고, 다시 주식 앱을 열어본다. 밥맛도 없고, 잠도 잘 못 잔다. 주변에서 '너무 예민한 것 아니냐'고 하지만, 그 말조차 짜증스럽다.
동아일보가 최근 보도한 '주식 반토막에 집값 2억 뛰었다…한국인 우울증 역대 최대' 기사에는 이런 일상이 고스란히 담겨 있었다. 그런데 전문가들은 말한다. 지금 많은 사람들이 느끼는 이 감정은 단순한 스트레스가 아니라, 뇌가 실제로 망가지는 신호일 수 있다고.
왜 주식이 떨어지면 이렇게 온몸이 반응할까. 단순히 돈을 잃어서가 아니다. 심리학에서는 이를 '통제감 상실(loss of control)'로 설명한다. 앤서니 디킨슨 영국 케임브리지대 심리학과 명예교수의 연구에 따르면, 인간의 뇌는 예측 가능한 손실보다 예측 불가능한 결과에 훨씬 강하게 반응한다. 코스피가 38일 만에 39% 급락하는 상황처럼 '언제 어디서 멈출지 모르는' 변동성이야말로 뇌에 가장 강력한 스트레스를 준다.
곽금주 서울대 심리학과 교수는 동아일보 인터뷰에서 '주식·부동산 가격과 정책이 급격하게 바뀌고 이를 통제할 수 없다고 느끼는 상황이 심리적 압박을 극대화한다'고 설명했다. 실제로 이런 상황이 지속되면 뇌의 편도체(amygdala)가 지속적으로 활성화되면서 만성 불안 상태가 된다.
더 무서운 건 이 상태가 인지 기능까지 갉아먹는다는 점이다. 2022년 미국 심리학회(APA) 보고서에 따르면, 재정적 스트레스를 장기간 받은 성인은 그렇지 않은 집단보다 기억력과 의사결정 능력이 평균 21.3% 저하됐다. 불안할수록 더 나쁜 투자 결정을 내리는 악순환이 만들어지는 것이다.
노벨 경제학상을 받은 심리학자 대니얼 카너먼 프린스턴대 심리학과 명예교수는 '전망이론(Prospect Theory)'을 통해 이 현상을 설명했다. 인간은 같은 금액이라도 이익을 얻을 때의 기쁨보다 손실을 입을 때의 고통을 약 2.5배 더 크게 느낀다. 1000만 원을 벌었을 때 느끼는 만족감보다, 1000만 원을 잃었을 때의 고통이 훨씬 강렬하다는 것이다.
이 '손실 회피 편향(loss aversion)'은 폭락장에서 더욱 극단적으로 작동한다. 자산이 절반 토막 났을 때 사람들이 느끼는 심리적 고통은 단순히 돈을 잃은 것을 넘어, 미래에 대한 불안, 자존감 훼손, 사회적 비교까지 뒤섞인 복합적인 감정이다. '나만 손해 보는 건 아닐까'라는 사회 비교 심리도 고통을 증폭시킨다.
특히 집값 상승과 주식 폭락이 동시에 일어나는 상황은 심리적으로 더 잔인하다. 주식으로 잃은 돈과 오른 집값 사이의 '격차'가 박탈감을 폭발적으로 키우기 때문이다. 심리학에서는 이를 '상대적 박탈감(relative deprivation)'이라고 부른다.
건강보험심사평가원 자료에 따르면 2025년 우울증으로 진료를 받은 환자 수는 역대 최고를 기록했다. 전문가들은 이 중 상당 부분이 재정적 스트레스와 관련이 있다고 본다. 주식 손실이나 집값 급등처럼 경제적 불안이 지속될 때 나타나는 증상을 심리학에서는 '재정 트라우마(financial trauma)'라고 부른다. 단순한 스트레스가 아니라, 트라우마에 가까운 심리적 손상이라는 것이다.
재정 트라우마의 특징은 일반적인 우울증과 조금 다르게 나타난다. 수시로 주식 앱이나 부동산 시세를 확인하는 강박적 행동, 투자 관련 대화에서 느끼는 과도한 불안과 회피, 미래 계획을 세우는 것 자체가 무의미하게 느껴지는 무력감이 대표적인 신호다. '이 정도쯤이야'라고 넘기기 쉽지만, 이런 증상이 2주 이상 이어진다면 전문가와 상담을 고려해야 한다.
로버트 레이히 미국 코넬대 의과대학 임상심리학과 교수는 저서에서 '재정적 걱정이 다른 생산적인 생각을 밀어내는 상태가 되면, 그것은 이미 임상적 개입이 필요한 수준'이라고 강조했다. 돈 걱정이 머릿속에서 떠나지 않는다면, 그건 의지력의 문제가 아니라 뇌가 보내는 신호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심리학자들이 공통적으로 권하는 첫 번째 방법은 '정보 노출 제한'이다. 주식 앱 확인 횟수를 하루 2회로 제한하는 것만으로도 불안 수준이 유의미하게 낮아진다는 연구 결과가 있다. 2023년 영국 바스대 심리학과 연구팀이 성인 412명을 대상으로 진행한 실험에서, 재정 관련 뉴스 소비를 하루 30분 이내로 줄인 그룹은 4주 후 불안 지수가 평균 27.4% 감소했다.
두 번째는 '통제 가능한 것'에 집중하는 것이다. 지금 당장 주가를 올릴 수는 없지만, 오늘 저녁 산책을 나가거나 잠을 7시간 자는 것은 할 수 있다. 심리학에서는 이를 '자기 효능감 회복(self-efficacy restoration)'이라고 한다. 작은 것을 해냈다는 감각이 쌓이면, 통제감이 천천히 되살아난다.
지금 이 글을 읽는 당신이 휴대폰을 내려놓고, 잠시 창문 밖을 바라보는 것부터 시작해보는 건 어떨까. 시장은 오르내리지만, 당신의 하루는 지금 이 순간에도 흐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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