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부

[한국심리학신문=편집부 ]
아침마다 허리가 뻐근하게 시작된다. 점심을 먹고 나면 무릎이 욱신거린다. 괜찮겠지 싶어 참고 또 참다 보면 어느새 몸이 비명을 지른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이건 나이 탓이겠지'라고 스스로를 다독이며 하루를 버티는 사람이 너무나 많다.
최근 국가데이터처가 발표한 통계에 따르면 업무상 질병 환자 10명 중 9명이 50세 이상인 것으로 나타났다. 단순히 몸이 약해지는 문제가 아니다. 왜 중장년 노동자들은 아픈 몸을 알면서도 계속 일하고, 참고 또 버티는 것일까. 그 이면에는 놀랍도록 복잡한 심리가 숨어 있다.
심리학에서는 이를 '자기침묵(self-silencing)' 현상으로 설명한다. 자신의 고통이나 필요를 억누르고 외부의 기대에 맞추는 행동 패턴이다. 제이나 다나 잭 미국 브렌다이스대 심리학과 교수는 자기침묵이 장기적으로 우울감과 신체 건강 악화를 동시에 유발한다는 연구 결과를 발표했다. 특히 '내가 약하다는 소리 듣기 싫다'는 감정이 가장 강력한 침묵의 방아쇠라고 분석했다.
50대 이상 중장년 노동자에게 이 현상은 더욱 두드러진다. 수십 년간 '이 정도는 참아야 일꾼이지'라는 직장 문화 속에서 살아온 세대이기 때문이다. 몸의 신호를 무시하는 것이 습관이 되고, 결국 그 습관이 자아 정체성의 일부로 굳어버린다.
국가데이터처 집계에 따르면 고령층 취업자가 꾸준히 증가하면서 단순노무직, 건설업, 간병인 등 신체 부담이 큰 직종에 집중되는 경향이 강하다. 박종식 한국노동연구원 연구위원은 이러한 직종 집중이 업무상 질병 발생률을 끌어올리는 핵심 구조적 요인이라고 지적한다.
아파도 병원을 가지 못하는 데는 경제적 이유만 있는 것이 아니다. 심리학에서 말하는 '프레젠티즘(presenteeism)', 즉 몸이 아프면서도 직장에 출근해 일하는 현상이 중장년층에서 특히 강하게 나타난다. 게리 쿠퍼 영국 맨체스터대 조직심리학과 교수는 프레젠티즘이 결근보다 기업 생산성을 더 크게 떨어뜨리며, 당사자의 건강 회복도 현저히 늦춘다는 연구를 2022년 발표했다. 영국 성인 노동자 2400명을 대상으로 한 이 연구에서 50대 이상 노동자의 61.3%가 아픈 상태로 출근한 경험이 있다고 답했다.
왜 이렇게까지 버티는 것일까. '내가 빠지면 동료에게 짐이 된다'는 죄책감, '이 나이에 쉬면 해고될 수 있다'는 불안감이 복합적으로 작용한다. 심리학 용어로는 이를 '인지된 대체 불가능성(perceived irreplaceability)'의 역설이라고 부른다. 정작 자신을 대체하기 쉬운 위치에 있다고 느낄수록, 아이러니하게도 더 필사적으로 자리를 지키려 한다.
여기에 '노화에 대한 낙인(age stigma)'이 더해진다. 미국심리학회(APA)가 2023년 발표한 보고서에 따르면, 직장 내 연령 차별을 경험한 노동자는 그렇지 않은 노동자보다 건강 이상 신호를 37% 더 늦게 보고하는 경향이 있었다. '나이 들어 아프다는 소리 하면 다 끝이야'라는 두려움이 몸의 신호를 묻어버리는 것이다.
신체 고통을 지속적으로 억압하면 심리적 소진, 즉 번아웃으로 이어지는 경우가 많다. 크리스티나 마슬락 미국 UC버클리 심리학과 명예교수가 제안한 번아웃 모델에 따르면, 신체적 고통을 반복적으로 참는 과정에서 정서적 탈진이 가속화된다. 2024년 한국산업안전보건연구원이 국내 제조업 종사자 1200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업무상 근골격계 질환을 앓고 있는 노동자의 48.7%가 중등도 이상의 우울 증상을 함께 경험하고 있었다.
몸이 아프면 뇌도 함께 고통받는다. 만성 통증은 전전두엽 피질의 활동을 억제해 판단력과 감정 조절 능력을 떨어뜨린다. 스스로 '요즘 왜 이렇게 예민하지', '짜증이 늘었나'라고 느낀다면, 그것이 단순한 성격 문제가 아니라 몸이 보내는 절박한 구조 신호일 수 있다.
심리학자들은 '자기 자신을 한 명의 부하직원처럼 대하라'고 조언한다. 내 팀원이 같은 증상을 호소하면 당장 병원에 가라고 할 것이면서, 정작 자신에게는 '조금 더 버텨봐'라고 말하는 모순에서 벗어나야 한다는 것이다. 자기 연민(self-compassion) 연구의 권위자인 크리스틴 네프 미국 텍사스대 교육심리학과 교수는 자기 자신에게 친구에게 하듯 따뜻하게 말하는 훈련이 신체 건강 신호를 더 빠르게 인식하게 만든다는 연구 결과를 발표했다.
오늘 퇴근길에 딱 한 가지만 해보자. 몸에서 가장 아프거나 불편한 곳에 손을 얹고 '오늘도 고생했다'고 말해주는 것이다. 거창한 다짐이 아니어도 된다. 작은 자기 인식의 습관이 쌓일 때, 비로소 몸이 먼저 무너지기 전에 자신을 지킬 수 있는 힘이 생긴다. 당신의 몸은 지금 이 순간에도 당신의 말을 기다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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