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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심리학신문=편집부 ]
성공한 조상의 이야기는 자랑스럽게 꺼내 들고, 부끄러운 과거는 '나와는 무관하다'고 선을 긋고 싶은 마음. 누구나 한 번쯤 느껴본 이중적인 감정이다. 그런데 이 심리가 연예계에서 대규모로 폭발했다.
배우 하영의 증조부 친일 의혹이 불거진 것도, 따지고 보면 출발점은 예능 프로그램에서 스스로 '4대째 의사 집안'임을 자랑한 순간이었다. 조상의 후광은 누리면서 조상의 과오는 외면하려는 태도에 대중이 분노한 것이다. 심리학은 이 불편한 이중성을 어떻게 설명할까.
심리학에서 '후광효과(Halo Effect)'는 한 가지 긍정적인 특성이 전체 평가를 좌우하는 인지 편향이다. 에드워드 손다이크 미국 컬럼비아대 심리학과 교수가 1920년 처음 개념화한 이래, 수많은 연구에서 반복 확인된 강력한 심리 현상이다. 연예인이 '명문가 출신', '의사 집안', '독립운동가 후손'을 언급하는 순간, 이 후광이 자신에게도 덧씌워진다고 기대하는 것이다.
실제로 미국 코넬대 심리학과 연구팀이 2019년 성인 800명을 대상으로 진행한 실험에서, 가문의 배경이 긍정적으로 소개된 인물은 그렇지 않은 인물보다 신뢰도 평가에서 평균 34.7% 높은 점수를 받았다. 유명세를 얻기 위해 치열하게 경쟁해야 하는 연예계에서 '집안 마케팅'이 끊이지 않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문제는 이 전략이 양날의 검이라는 사실이다. 조상의 후광을 적극적으로 활용한 순간, 대중은 그 가문 전체를 들여다볼 권리가 생겼다고 느끼기 시작한다. 스스로 불을 지핀 셈이다.
심리학자 베노이트 모닌 미국 스탠퍼드대 심리학과 교수와 데일 밀러 교수가 2001년 제안한 '도덕적 면허 효과(Moral Licensing Effect)'는 흥미로운 통찰을 제공한다. 사람은 과거에 도덕적으로 좋은 일을 했다고 느낄 때, 이후의 비도덕적 행동을 스스로 허용하는 경향이 있다는 이론이다. 연예계 집안 마케팅도 비슷한 구조로 작동한다. '독립운동가 후손'이라는 자랑은 암묵적으로 '나는 도덕적으로 검증된 집안 출신'이라는 면허를 스스로 발급하는 행위로 읽힌다.
그런데 대중은 여기서 극도로 예민해진다. 조상의 도덕적 후광을 전략적으로 활용한 인물이 정작 도덕적 결함이 드러났을 때의 실망감은 일반적인 경우보다 훨씬 크다. 2022년 미국심리학회(APA) 학술지에 게재된 연구에 따르면, 도덕적 우월성을 내세운 집단이나 인물이 위선적 행동을 할 때 대중의 분노 강도는 그렇지 않은 경우보다 평균 2.3배 높게 나타났다.
하영 사태에서 대중의 분노가 유독 거셌던 이유도 바로 이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다. 스스로 '가문'을 마케팅 도구로 사용한 순간, 대중은 그 가문 전체를 도덕적 잣대로 평가할 준비가 돼 있었던 것이다.
인간은 본능적으로 자신에게 유리한 정보는 자아와 연결하고, 불리한 정보는 자신과 분리하려는 경향을 갖는다. 심리학에서는 이를 '자기중심 편향(Self-serving Bias)'이라 부른다. 조상의 성취는 '우리 집안의 자랑'으로 내면화하면서도, 조상의 과오에 대해서는 '나는 태어나지도 않았다'며 거리를 두는 심리가 전형적인 자기중심 편향의 발현이다.
사람들이 이 편향에 분노하는 이유도 심리학적으로 명확하다. 로이 바우마이스터 미국 플로리다주립대 심리학과 교수의 연구에 따르면, 사람은 타인의 이중성을 자신의 이중성보다 훨씬 쉽게, 그리고 강렬하게 인식하도록 설계돼 있다. '이익은 챙기고 책임은 회피한다'는 패턴을 감지하는 순간, 뇌는 이를 불공정한 상황으로 즉각 처리하고 감정적 반응을 활성화한다.
연예계 집안 마케팅 논란이 매번 반복되는 것도 이 이중성의 구조가 바뀌지 않기 때문이다. 가문의 좋은 면만 골라 활용하는 전략은 단기적으로 이미지를 높일 수 있지만, 대중의 불공정 감지 본능을 자극하는 위험을 언제나 내포하고 있다.
흥미로운 점은 이번 논란에서 많은 사람들이 '후손에게 책임을 물어선 안 된다'는 연좌제 반대 입장을 유지하면서도 동시에 하영에게 분노를 표출했다는 사실이다. 이 표면적 모순을 심리학은 '위선 혐오(Hypocrite Aversion)'로 설명한다. 대중이 분노한 대상은 친일 후손이라는 사실 자체가 아니라, 조상의 긍정적 유산은 적극적으로 내세우면서 부정적 유산에는 침묵하는 이중적 태도였다는 것이다.
캐나다 브리티시컬럼비아대 사회심리학과 제시카 트레이시 교수의 연구는 인간이 '자기 이익을 위해 도덕적 기준을 선택적으로 적용하는 사람'을 가장 강하게 처벌하려는 본능을 갖고 있음을 보여준다. 이는 진화적으로 집단 내 무임승차자를 걸러내는 메커니즘에서 비롯된 것으로 해석된다.
결국 이번 논란은 단순한 친일 후손 문제를 넘어, 우리 모두가 갖고 있는 '좋은 것만 취하고 싶은 마음'을 대중 앞에서 너무 적나라하게 드러낸 사건이기도 하다. 가문이든, 학벌이든, 직장이든 내게 유리한 정체성만 전략적으로 활용하고 싶은 욕망은 누구에게나 있다. 다만 그것이 공적인 무대에서 반복될 때, 대중은 본능적으로 그 이중성을 감지하고 반응한다는 것을 이번 사태는 다시 한번 보여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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